모두들 LG의 상승세가 얼마나 갈지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현재 LG는 7승 4패로 2위에 자리하고 있다. 꼴찌 후보 1순위였던 팀이 예상을 뒤엎는 중이다. 그만큼 반전 요소가 다양하다. 우려했던 센터라인이 오지환·서동욱 키스톤 콤비의 부쩍 향상된 수비력과 함께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리그 최약체로 꼽혔던 선발진도 이승우 같은 깜짝 선발 투수의 등장과 김광삼, 정재복 등 베테랑의 호투로 경쟁력을 갖춰간다. 의문부호였던 4번 타자 자리에서는 정성훈이 커리어 최고의 타격감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불펜이다. 지금까지 LG는 7회 이후 역전패가 단 한 차례도 없을 만큼 경기 후반 리드를 끝까지 지켜낸다. 물론 지난 시즌초에도 LG 불펜은 나쁘지 않았다. 신인 임찬규와 베테랑 좌완 이상열, 사이드암 김선규 등이 자기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필승조가 한정되어 있었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셋 모두 과부하에 걸리며 흔들렸다. 시즌 중반 송신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한희가 필승조에서 활약했지만 이미 팀 전체적으로 페넌트레이스에서 치고 올라갈 기세를 잃어버렸다.
올 시즌은 불펜 운용 방향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일단 양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에 그만큼 투수들의 체력소모를 최소화하고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불펜이 움직이고 있다. LG 불펜은 마무리투수 리즈를 제외한 2개 조로 나뉘어있다. 다른 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리조와 패전조가 아니다. 2개조 모두 승리조다. 1조당 우완투수 2명·좌완투수 1명 내지 좌완투수 2명·우완투수 1명으로 이뤄진다.
봉중근이 합류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아직 완전치는 않다. 예정대로 다음 주 봉중근이 합류한다고 가정한다면 우규민·류택현·이상열이 1조, 유원상·한희·봉중근이 2조로 구성될 수 있다. 오늘 1조가 던지면 다음날에는 1조 투수들은 휴식, 2조가 던져 1조의 연투를 막는다. 리드하고 있는 경우 9회는 리즈가 책임지기 때문에 선발 투수가 조기강판 되지만 않는다면 불펜 투수 3명이 4이닝 정도를 소화한다. 이렇게 불펜투수 어깨에 가장 큰 짐을 놓는 연투를 방지하고 자신의 등판 타이밍을 계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LG 불펜이 질적 향상이 병행된 양적 팽창을 이룬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시작은 전지훈련 방식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작년 전지훈련에서 LG는 그 어느 팀보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했다. 투수들도 각자 하루에 할당된 투구수가 있었고 재활에 임하고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이 할당량을 채워야했다. 거기에 1군 엔트리에 들기 위한 경쟁이 가미되면서 투수들 모두 빠르게 페이스를 끌어올렸고 그 부작용은 시즌 중반부터 나타났다.
올해 전지훈련에서는 개인훈련량을 가중시키기 보다는 팀플레이와 자율훈련에 치중했고 불펜 투구수도 작년보다 확연히 줄였다. 전지훈련 당시 한 베테랑 투수는 “작년과는 달리 나 자신에 맞춰 페이스를 올릴 수 있게 돼서 좋다. 사실 신예급이 아닌 이상 자기 컨디션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무리하지 않고 과부하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베테랑 투수 역시 “지난해 전지훈련과 비교하면 정해진 훈련량은 적지만 스스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자율훈련량은 예전보다 많다. 지금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훈련양이 결과와 비례한다면 모든 팀들이 극도로 많은 훈련을 소화할 것이다”며 “물론 자율훈련을 시기상조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10년 전에도 자율훈련을 두고 시기상조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일본도 훈련량이 곧 결과를 좌우한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들 역시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결국엔 지금의 자율훈련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올해 전지훈련 방식에 만족감을 보였다.
올해 전지훈련에서 우규민이나 한희 같은 투수들은 좀처럼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다. 또한 봉중근은 수술 후 재활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 이들을 무리시키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올 시즌 보직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했다. 덕분에 이들은 서둘러 페이스를 올리지 않으면서 각자의 일정에 맞게 훈련했다. 우규민과 한희, 유원상 모두 지금이 체력적으로는 완벽하지만 가장 좋은 구위를 보이려면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입을 모은다. 시즌 개막전에 맞춰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게 아닌, 보다 넓게 바라보고 전지훈련에 임한 게 올 시즌 불펜진의 깊이를 만들었다.
물론 시즌이 진행되면 컨디션 저하나 부상으로 인한 이탈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난 11경기로 앞으로의 122경기를 전망하는 것은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불펜의 핵심인 마무리 투수 리즈에 대한 의문부호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 LG 불펜은 그 어느 때보다 체계적으로 미리 구성을 해왔다. 김기태 감독은 리즈를 두고 “7, 8세이브 정도를 올릴 때까지가 고비가 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고비만 넘긴다면 안정감을 찾아 믿을 수 있는 마무리 투수가 되리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취임식에서 김 감독은 “야구에서 후반이 가장 중요하다. 7, 8, 9회에 강한 팀을 만들겠다”고 공언, 전지훈련부터 불펜 향상을 꾀했고 리즈를 마무리에 놓는 초강수를 행했다. 올 시즌 LG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불펜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지 주목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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