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청주, 이상학 기자] 빛나는 역투였다. 그러나 '마의 80' 고지에서 무너졌다. '코리안특급' 박찬호(39)의 능력치를 최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한계 투구수에 한화의 고민이 담겨있다.
박찬호는 지난 18일 청주 LG전에서 6⅓이닝 5피안타 1볼넷 6탈삼진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그러나 패전투수라기에는 6회까지 투구가 너무 완벽했다. 흠잡을 데 없는 피칭이었지만 결국 7회 이후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투구수 80개 이후 구위가 떨어진 모습이 역력했다.
▲ 박찬호의 한계 투구수는 80개?
6회까지 박찬호는 기대이상이었다. 직구-컷패스트볼-투심패스트볼을 중심으로 LG 타자들을 힘으로 제압했다. 1회 145km, 2회 148km, 3회 147km, 4회 147km, 5회 146km, 6회 146km로 직구 최고 구속을 찍었다. 변종 직구 계열의 투심 패스트볼도 4회와 6회 총 4차례 145km까지 나왔다. 이날 145km 이상 강속구만 23개나 될 정도로 볼끝에 힘이 넘쳤다. LG 타자들은 공격적으로 승부한 박찬호의 힘과 기백에 눌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6회부터 직구 비율이 줄었다. 5회까지 68개의 공 중에서 26개를 직구로 던지며 38.2%의 비율이었지만 6회 이후 던진 25개 공 중에서 직구는 단 3개로 12.0%에 불과했다. 데뷔전이었던 지난 12일 청주 두산전에서도 박찬호는 5회까지 직구 비율이 38.8%였지만 6회 이후에는 13.3%로 줄었다. 두산전에서 박찬호가 7회 1사 1·2루에서 한 번에 마운드를 내려간 것도 "볼끝에 힘이 떨어졌다"는 포수 신경현의 냉철한 조언 때문이었다.
한대화 감독도 "투구수가 관건이다. 100개까지 던져주면 좋겠지만 그때까지 구위가 유지되어야 한다. 투구수 관리가 중유하다"고 했다. 그러나 투구수 80개 이후 박찬호의 힘은 떨어졌다. 스피드와 구위 뿐만 아니라 탄착군이 스트라이크존 바깥에 형성될 정도로 공 자체가 뜨거나 날리는 게 많았다. 7회 83구째 이진영에게 던진 초구 141km 투심은 바깥쪽 높게 들어갔고 그 다음 던진 84구째 132km 커터는 몸쪽 높게 치기 좋게 형성돼 2루타로 연결됐다.
정성훈에게 던진 초구이자 이날 경기 85구째 공은
의심의 여지 없는 실투. 몸쪽을 노린 142km 투심 패스트볼이 몸쪽-가운데 사이로 몰렸다. 높은 공에 강점이 있는 정성훈이 놓치지 않고 투런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후속 이병규(7번)를 서클체인지업 2개로 2루 땅볼 처리했지만 그마저도 정타였다. 오지환을 상대로 던진 6개의 공 중에서
스트라이크존 통과한 공은 단 1개뿐이었다. 결과는 볼넷. 힘이 떨어지면 컨트롤도 흔들리게 되어있다.
▲ 한화 벤치의
고민은
'투구수 80개를 넘긴 뒤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박찬호의 생각은 단호했다.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체력적으로 괜찮았다". 프라이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두산전에서도 박찬호는 92개 공을 던지고 내려온 것에 대해 "체력적으로 충분히
자신있었다"며 아쉬움 감추지 못했다. LG전에서 역전 홈런 맞은 뒤 정민철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한 번 더 기회주는 쪽으로 갔다. 당시
불펜에서는 마일영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러나 박찬호를 교체할 수 없었던 한화 벤치 고민은 결국 마운드 문제와 맞물려있는
부분이다. 한화는 17일 경기에서 선발 양훈이 4이닝 만에 강판된 다음 마일영-김혁민-송신영-바티스타까지 이기는 경기에 나오는 투수들을
총동원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의 여파가 박찬호의 등판까지 미쳤다. 전날 경기에서 선발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거나 불펜의 여유 자원이 풍부했다면
박찬호의 교체 타이밍을 더 빨리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1점차라는 급박한 상황도 한화 벤치로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자칫 박찬호의 승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수교체 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결과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두산전에서 7회
1사 1·2루에서 정민철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박찬호로부터 공을 넘겨받을 수 있었던 것도 5점차 리드라는 상황적인 여유가 뒷받침됐기에
빠르고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고, 박찬호도 아쉬움 속에서 수긍을 할 수 있었다.
타선이 제 때 점수를 내주지 못한 게 결과적으로
박찬호와 벤치에게 큰 부담이 됐다. 박찬호는 자신의 한계 투구수 속에서 최선의 길이 공격적인 투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박찬호 본인이나 그를
직접 상대한 정성훈도 "공격적인 투구"라고 입을 모았다. 박찬호의 가슴은 인정하지 않지만 한계 투구수가 다가오기 전 빠르게 공격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 부담을 덜어줄 불펜의 뒷받침과 타선의 지원이 필요하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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