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천경자 화백은 한국의 대표하는 한국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꽃과 여인을 소재로 인간 내면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1946년 광주여고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로 동경, 상파울로 등에서 수 십 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졌던 천경자 화백은 '황금의 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화려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은관문화훈장 등 굵직한 상을 받은 바 있다.
화가이면서도 스케치여행을 위해 지구를 몇 바퀴나 돌면서 쓴 해외여행기와 수필, 자서전 등 글로도 필명을 날렸다. 《유성이 가는 곳》, 《언덕 위의 양옥집》, 《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탱고가 흐르는 황혼》,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꽃과 색채와 바람》, 《나의 소녀시절》, 《남태평양에 가다》, 등 펴낸 수필집은 대부분 자서전 형태로 어린 시절 고향이었던 고흥에서의 추억, 그리고 결혼 이후 고단했던 삶을 회고하고 있다.
천경자 화백이 태어난 곳은 팔영산 아래 고흥군 점암면 성주마을이다. 호적상에는 고흥읍 호형리(동촌마을)로 기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고흥동보통학교(현재 초등학교)를 나와 광주공립여고보(현재 전남여고)를 다녔다. 당시 고흥군에서 6명이 입학시험을 치러 3명만이 합격할 정도로 진학이 만만찮은 학교였다. 전남여고에 진학하기 전까지 고흥에서 성장했고 또 결혼도 당시 동촌마을 생가에서 했다. 결혼 직후 전남여고 교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사실상 고향을 떠났다. 이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천경자 화백은 그림과 글을 통해 그 누구보다 고향을 사랑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 고흥의 대표적인 예술인 중의 한 사람으로 고흥 사람들의 자랑이 되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전시관은 고흥종합문화회관 1층에 있다. 결혼 이후 고향을 떠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했던 천경자 화백이지만 고흥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이 고향에 둥지를 틀었다. 전시관 안에는 직접 드로잉한 작품 드로잉 55점과 채색판화 11점이 전시되어 있다. | | 전남 고흥군 고흥읍 호형리 991번지 소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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