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작다. 걸어서 돌아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길은 왕복2차선 국도. 굳이 골목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가 골목에 기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머물고 있다. ‘풍년방앗간’에서는 떡을 찌는지 고소한 냄새가 번져
나온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은 빨갛게 물들었다. 돌담 아래에는 입을 벌린 밤송이가 쌓여 있다. 백반집인 ‘육번집’에서는 구수한 밥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발걸음은 절로 가게 속으로 향한다.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내력을 들어보는 일도 재미있다. ‘백운 약방’은 동네
사랑방이다. 주민들은 ‘박카스’ 병을 따며 올해 농사와 시집∙장가 간 자식들 이야기를 나눈다. 약방 건너편에는 ‘원촌 정육점’과 ‘합동중기’
간판이 붙어있다. 아주머니가 정육점을, 아들이 중기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육번집’이라는 간판도 재미있다. “30년 전쯤 가게 문을 열었을 때 전화번호가 6번이었어. 그때 전화기가 그
뭐야, 그래, ‘딸딸이’ 전화기였어. 손잡이 잡고 이렇게 빙빙 돌리는 거.” 식당 주인인 김재순 할머니는 손으로 전화기를 돌리는 모양을 흉내
낸다. “그때만 해도 간판 없이 장사를 했는데 사람들이 ‘6번집’이라고들 불러서 그냥 이렇게 간판을 붙인 거지. 육번집 옆에는 ‘대광철물’이
있다. 그 옆은 ‘대광만물상회’. 대광철물 주인의 매형이 운영하는데 거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맞은편에 있는 ‘백운 농기계수리센터’ 역시
대광만물상회로부터 경운기 수리 일을 물려받은 양남용씨가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간판 없이 장사를 해오다가 2007년에 간판을 달았다. “경운기도
고치고 고무신도 때워요”라며 웃는 양씨의 얼굴에는 시골 사람 특유의 다정함이 묻어난다.
여느 골목이 그렇듯 원촌마을에도 오래된 이발관이 있다. 이름도 재미있다. ‘가보세 이발관’. 이발관 의자며 가위,
거울 등 소품에서 70년대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이발관이 문을 연 지는 33년이 됐다고 한다. 주인 문판준씨는 전주에서 이발관을 하다 고향인
원촌마을로 돌아왔다. “서울만 안 가봤지. 전국 다 돌아봤어.” 이발관에는 그날 따라 손님이 많았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많네요” 하니 “오늘이 면민의 날 잔치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기 학교로 가봐요. 거기서 잔치 벌어지고
있으니까.” 초등학교 운동장은 떠들썩했다. 무대에서는 서커스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천막 아래 마을주민들이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사진 찍으러 왔나 보네. 멀리서 왔는데 이거 먹고 해요.” 아주머니들이 여기저기서 음식을 내밀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카메라를 내려 놓고 아주머니들이 내주시는 떡이며 수육, 사이다를 먹었다. 넉넉하고 정겹고 다정한 마을, 원촌마을에서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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