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오름(1324m)은 백록담 아래에 자리했다. 제주도 내 386개의 오름 중에서 가장 높은 오름이다. 이
오름은 정상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다. ‘작은 백록담’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비밀스러운 호수가 분화구 속에 숨겨져 있다. 사라오름이 일반에
개방된 것은 2010년 가을.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오름 40개 가운데 처음으로 개방된
것이다. | |
사라오름은 성판악에서 백록담을 오르는 등산로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사라오름 입구 이정표에서 사라오름까지의
거리는 600m. 이런 이유로 사라오름을 찾는 대부분의 탐방객은 오름에 들렸다 백록담으로 길을
재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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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다져진 등산로를 따라 걷는 등산객들.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울퉁불퉁한 돌길이지만
겨울에는 눈이 다져져 걷기 편하다.
사라오름은 과거에 제주도의 명당으로 소문나 이곳에 묘를 쓰려고 주검을 지고 오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채 탐방객을 맞는다. 특히, 봄~가을도 좋지만 겨울의 설국도 빼놓을 수 없다. 호숫가를 따라 펼쳐지는 은빛 상고대와
맑은 날 마주하는 백록담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설령 백록담을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을 만큼 특별한 조망을 뽐낸다.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하는 탐방로가 사라오름 가는
길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하는 탐방로는
바위와 자갈이 많고, 활엽수림이 시야를 가리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등산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코스 중 하나다.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다. 특히, 상고대가 곱게 피어나는 겨울에 인기가 높다.
트레킹은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한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화장실과 물을 성판악휴게소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 매표소에서 5.2km 거리의 사라악샘까지 물을 구할 수 없다. 이마저도 겨울에는 얼어붙는다. 성판악휴게소를 출발하면 곧장 숲길이다.
겨우내 쌓이고 쌓인 눈 사이로 난 길은 봅슬레이 트랙을 닮았다. 등산객의 무수한 발길에 곱게 다져진 눈의 높이가 무릎을 훌쩍 넘는다. 아이젠이
꼭 필요한 길이지만, 눈을 밟을 때 느껴지는 푹신한 기운이 즐겁다. 본래 성판악 탐방로는 돌길로 악명이 높다. 입구 매표소에도 ‘돌길이 위험하니
구두나 슬리퍼는 착용 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다. 울퉁불퉁한 돌길 위로 눈이 다져져 이처럼 편한 길이
된다.
홋카이도 부럽지
않은 삼나무숲 터널
성판악휴게소에서
2km 거리에 있는 구름다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숲길이 계속된다. 졸참나무․때죽나무․단풍나무․구상나무 등이 빼곡하게 어우러졌다.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피어난 눈꽃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한여름에는 숲이 하늘을 덮어 터널을 만들 만큼 울창하다. 시야가 가려 답답한 감은 있지만,
청량한 느낌이 좋다.
한겨울 이 숲의 주인은 까마귀다. 까마귀의 울음과 날갯짓을 하며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등산로를 따라 도열한 나무 사이로 산죽과 키 작은 나무가 눈에 파묻혀 겨우 고개만 내밀고 있다. 산죽의 푸른 잎은 그렇게 눈 속에 묻힌 채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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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의 호수 북쪽으로 난 탐방로를 따라 전망대로 향하는 등산객 너머로 상고대가 활짝 피어난 숲이
펼쳐졌다.
등산로는 작은 언덕과 완만한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삼나무 군락지로 이어진다. 성판악휴게소를 출발한지 1시간,
해발 1,000m 지점에 위치한 삼나무 군락지에 서면 탄성이 절로나온다. 아무리 숨이 가쁜 사람도 사진기를 꺼내 들고 얼굴이 환해진다. 하늘로
곧게 뻗은 시원한 삼나무가 눈을 뒤집어 쓴 채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모습은 홋카이도 부럽지 않을 만큼 멋지다.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속밭대피소가 나온다. 화장실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사라오름길에
있는 유일한 화장실이다. 휴게소를 지난 길은 조금 더 경사를 이루며 사라오름 입구로 안내한다. 사라오름 입구부터 구간은 짧지만 경사가 심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백록담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라오름 오를지 고민하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하늘 호수
사라오름
입구에서 전망대까지는 600m, 왕복 40분이 걸린다. 길은 모두 나무데크로 만들어졌다. 모래흙으로 이루어진 오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겨울에는 이 데크마저도 눈이 쌓여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눈길이다. 다행히 데크 손잡이가 눈밭 위에 나와 있어 길을 안내한다. 사라오름으로
오르는 길부터 본격적인 고산지대의 풍경과 만난다. 바람에 시달려 키가 자라지 못한 작은 나무들, 그리고 바람에 떠밀려온 구름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만든 상고대가 장관이다. 상고대는 햇살이 비추면 은구슬처럼 반짝이다.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르면서 나뭇가지를 피하느라 잔뜩 숙였던 고개가 뻣뻣해질 때쯤이면 오름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에 서면 백록담을 제외하고 한라산에서 가장 높은 산정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눈이 쌓인 호수는 하얀 운동장처럼 보인다. 호수에 물이 가득할
때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호수의 둘레는 약 250m. 축구장만한 크기다.
길은 호수 왼쪽을 가로질러 반대편 전망대로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왼쪽 멀리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가운데로 서귀포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한라산 정상이 솟아 있다. 태고의 숲 너머로 펼쳐지는 산과 바람, 이국적인 제주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 환상적인 풍경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지대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조망을 방해할 때가 많다. 맑은 날을
만나려면 평소에 공덕을 쌓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일기예보를 잘 듣고 좋은 날을 골라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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