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맛집이야기/여행을그리다

골목이야기 -부산 감천동 태극도 마을

SMALL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레고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감천고개에 서면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지붕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꼭 닮았다. 누군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레고 블록 같기도 하다. 마을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감천고개 꼭대기에 있는 감정초등학교 주변. 아미동성당 앞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면 푸르고 붉은색 지붕과 노랑, 분홍의 물탱크가 어울려 기하학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마치 솜씨 좋은 건축가가 오랜 세월 공들여 만들어놓은 것 같다. 오와 열을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들어 선 집들. 마치 성냥갑들이 모여 있는 그 풍경이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집을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대충 짐작만으로 수백 채는 넘을 것 같다.




  • 1 옹기종기 모여있는 태극도마을의 건물은 조형적 긴장감이 넘쳐난다.
  • 2 노란 바지를 입은 아이가 초록색 벽과 어울려 다채로운 색감을 빚어냈다.
  • 3 옥녀봉길에서 만난 장면. 푸른 벽과 노랗고 검은 가드레일이 경쾌하게 어울렸다.
  • 4 태극도마을은 구획정비가 잘 되어 있다. 좁은 골목길 역시 모두 이어져 있다.

 

 

 

태극교도들이 몰려들면서 형성

태극도마을의 유래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하구청이 펴낸 <사하구지>는 태극도마을을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신흥종교인태극도를 믿는 사람들이 4,000여 명 모여 집단촌을 이룬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온 태극교도들이 몰려들면서 판자집 800여 호가 지어졌다. 이후 1958년 충북 괴산 등지에서 온 태극교도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판잣집 골격을 그대로 둔 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것을 제외하면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다. 1980년대에는 주민들이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1만 명 남짓 살아간다. 골목의 얼개는 간단하다. 옥녀봉 중턱을 ‘옥녀봉길’이 가로지른다. 그 아래로 ‘태극길 시리즈’가 펼쳐진다. 골목을 돌아보는 여정은 아미동성당 건너편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시작해 옥녀봉을 따라 가다 태극길로 진입해 태극길 시리즈를 돌아본 후 다시 아미동성당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만약 골목 사진을 찍고 싶다면, 정류장을 전망대 삼아도 될 듯 하다. 전경을 촬영한 후 옥녀봉길을 따라 골목을 내려오며 세부 장면을 촬영하면 된다.

 

태극도마을의 주 골목길은 태극1~11길이다. 길 번호를 따라 골목을 차례로 돌아본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맘 편할 듯. 길은 미로처럼 얽히고 얽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냥 헤맨다고 생각하고 걷는 것이 좋다. 골목은 비좁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다. 좁은 골목마다 장독이며 화분, 빨래건조대가 나와 있다. 몸을 옆으로 틀어야 겨우 통과할 만한 곳도 많다.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분명 길인 곳도 많다. 산비탈에 들어선 탓인지 경사도 가파르고 계단도 부지기수다. 몇 걸음만 떼도 숨이 목까지 차 오른다. 태극도마을의 압권은 다채로운 지붕과 벽, 문과 창문의 모양이다. 색감의 변화와 대비도 뚜렷하다. 그런 탓인지 역동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햇빛도 태극도마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한몫 한다. 태극도마을에는 햇빛이 풍부하다. 해 뜰 무렵부터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햇빛이 머문다. 햇빛은 마을 전체를 골고루 덧칠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양지바른 골목에 의자를 내놓고 감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가을 햇빛을 즐긴다.

 

 

‘알록달록한’ 동네가 된 까닭은

마을은 가난하다. 마을 주민 한 분께 여쭈었다. “건물들 색깔이 제각각이네요. 너무 예뻐요.” 주민 한 분은 “그런 소리 하지 마이소”하며 손사래를 친다. “다들 ‘뺑끼’(페인트)칠 할 형편조차 안돼서 이래 됐다 아잉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습니더.” 그때그때 여력에 따라 건물 색을 칠하다 보니 지금처럼 ‘알록달록한’ 동네가 됐다는 설명이다. 골목을 다니다 보면 손에 열쇠 꾸러미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주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이다. 계단 한 켠에 나 있는 자그마한 문들은 거의 화장실 문이다.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거나 달팽이 모양으로 동그랗게 말린 철사 자물쇠가 달려 있다. “여기는 아직도 화장실이 없는 집이 많아예.” 이런저런 말을 나누던 주민은 화장실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돌린다. 그리고는 멀리 보이는 감천항을 가리킨다. “저기서 영화도 많이 찍었지예.” 감천항은 드라마 <타짜>와 <히트>, 영화 <사생결단>, <님은 먼 곳에>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미디어에 자주 소개된 탓인지 평일 아침인데도 카메라를 메고 골목과 골목, 계단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젊은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에 불편함과 불만이 묻어난다. “니네들이 이런 곳의 삶의 알기나 하냐” 하는 눈빛이다. 실제로 태극5길 쯤에서 큰 소리로 다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여학생을 향해 고함을 치고 있었다. “남의 신발을 왜 자꾸만 찍고 난리고. 아침부터 재수 없구로.” 얼굴이 빨개진 여학생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노인도 말을 거들었다. “이런 달동네에 뭐 찍을 게 있다고 자꾸만 와쌌노.” 주민들은 카메라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주민들의 이런 태도에 십분 공감이 간다.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불쑥 들어와 한 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대하듯 다짜고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이방인들의 무례가 달가울 리 없다.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한낱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도, 그렇다고 무시하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난한 마을을 보듬는 변화의 바람

태극도마을에도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시작은 지난 6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단체가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주제로 참여해 당선됐다. 부산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했고 구청도 지원에 나섰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아닌 방법으로 낙후된 산복도로 동네를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목표다. 마을 입구에는 민들레 홀씨 모양의 조형물이 들어섰다. ‘행복하게 살아요’, ‘부자 되세요’ 등등 주민들의 소망을 적은 철판들이 붙어 있다. 감정초등학교 옹벽에는 커다란 고추잠자리 조형물도 붙여 놓았다. 바람이 불면 잠자리 날개가 바람개비처럼 돌아간다. 태극길을 돌아 다시 출발점인 아미동성당 앞에 섰다. 멀리 태극도마을이 펼쳐진다. 머지 않아 이 마을이 ‘부산의 마추픽추’로 거듭나기를, 그래서 지금보다 수백 배는 행복한 마을이 되기를 기원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