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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전설’ 서장훈, “멋진 엔딩위해 날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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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부터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KT 체육관에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한 서장훈. 오랫동안 코트를 누볐지만 정작 KT에는 아는 선수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기자가 진땀을 흘리기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사연 많은 ‘농구의 전설’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풀어내려 했던 기자는 평소 그답지 않은 틀에 박힌 대답들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인터뷰 분위기가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장훈 씨! 평소대로 해주세요. 장훈 씨 답지가 않아요^^.”

지난 5월 30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프로농구 KT 체육관에서 만난 서장훈(38). 은퇴 기로에 놓였던 그가 부산KT의 손을 잡으면서 그는 이번 시즌부터 KT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1년만 더 선수 생활하고 그 후로는 무조건 은퇴’라는 ‘시한부 선수생활’을 발표하며 농구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서장훈은 5월 28일부터 KT 체육관에 나와 선수들과 상견례를 갖고 훈련을 시작했다.

지난 한 시즌동안 코트 안팎으로 시련의 나날을 보낸 탓인지 그는 어느 때보다 더 표정이 어두웠고, 어느 해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농구 인생의 마지막을 부산 KT 전창진 감독과 함께 하게 됐다. 평소 감독 이전에 ‘형님’으로 부를 만큼 가깝게 지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농구 코트에서 보이는 색깔이 크게 달라 우려의 시선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KT에서 뛰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전창진 감독님 밑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전 감독님의 스타일에 내가 잘 맞춰갈 수 있을 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난 이곳으로 오면서 많은 걸 비우고 온 사람이다. 새로운 팀에 입단한 선수가 당연히 그 팀 문화에 맞춰가야지, 팀이 날 위해 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감독님은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대단하신 분이다. 이전 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났을 때(2003-2005년)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께서 KT로 날 불러들이신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농구선수 서장훈의 마무리를 함께 해주고 싶으신 부분도 포함됐을 것이다. 그래서 더 고맙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즌을 치르고 싶다.”

(전창진 감독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서장훈을 영입하려 했을 때 구단 고위 관계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 감독은 “누구보다 내가 장훈이를 잘 알고 있고, KT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라고 믿었다”면서 “장훈이가 한국 농구를 위해 헌신한 부분들, 당분간 깨질 수 없는 기록들, 그리고 그의 농구에 대한 열정이 왜곡된 부분이 많아 안타까웠지만 남은 한 시즌동안 그런 아쉬움들을 잘 풀어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KT는 하계 훈련을 강원도 태백에서 강도 높은 산악훈련으로 대신한다. 감당할 자신 있나.

“당연하다. 그것도 훈련 아닌가. 당연히 훈련에 참여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KT 입단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연봉에다 사비로 1억 원을 더 보태 가정 형편이 어려운 모교(연세대)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프로야구에선 박찬호 선수가 한화에 입단하면서 연봉 전체를 아마추어 야구 발전기금으로 기부한 일이 있다. 이러다 베테랑 선수들의 연봉 기부 릴레이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웃음).

“원래 소년소녀 가장이나 소아암 환자 돕기 등에 관심이 많았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나름 작은 정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이번 일은 그동안 내가 받았던 과분한 사랑이나 관심들을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고 싶었다. 은퇴를 미루고 1년 더 뛰는 선택이 돈이 아닌 봉사라는 의미도 전달하고 싶었다.”

자신의 유니폼이 나오지 않아 잠시 다른 선수의 유니폼을 빌려 입었다는 서장훈. 마지막 시즌을 앞둔 만큼 훈련도 어느 때보다 일찍 시작하고 있는 그이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서장훈 하면 극과 극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로 인해 지나친 비판의 대상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것 또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하나.

“글쎄…,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칭찬을 받을 때도 있고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하는 게 인생 아닌가. 물론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극소수이다. 프로농구가 이전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는데도, 밖에 나갔을 때 날 아는 체 하시고 반가워 해주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관심과 사랑 아니겠나.”

-지금까지 농구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행복하게 보낸 시간이 언제였나.

“내가 농구 시작한지 25년쯤 됐는데, 그중에서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인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농구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시간들이었다. 처음에는 농구를 잘 하지도 못했고 시합 나가면 1분 정도 뛰는,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행복했다. 교체 멤버로 활약하다가 한 골이라도 넣으면 가슴이 뛰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농구를 시작하기 전에 야구를 먼저 시작했던 걸로 아는데….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웃으면서)리틀 야구 수준이었다. 그때 같이 뛰었던 친구가 한화이글스에서 활약했던 이도형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야구를 먼저 접했던 부분이 결국엔 농구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지난 시즌이 종료되면서부터 서장훈 선수의 거취 문제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은퇴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나.

“내 성격이 누구 말을 듣거나 돌아다니는 말들에 귀 기울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난 지난 해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아니, 명예를 떠나서 내가 만족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즌을 보내지 못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던 터라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게 싫었다. 그래서 1년을 더 뛰기로 한 것이고, 1년 후에는 은퇴하겠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나한테 이번 시즌은 기록이나 성적보다는 봉사의 개념이 더 크다.”

-‘농구의 전설’ 답게 풍성한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 농구사상 최초의 1만 득점-5000리바운드 돌파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기록은 나의 땀과 눈물이 담긴 기록들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기록들 아닌가. 정말 소중하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숫자들이다.”

(서장훈은 인터뷰 내내 얼굴 표정을 풀지 않았다. 너무 경직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전의 서장훈은 어떤 질문에도 논리적이고 사려 깊은 답변들로 기자를 놀라게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연고대 시절 라이벌로 꼽혔던 현주엽을 '농구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한 서장훈. 한 사람은 이미 은퇴했고, 그는 여전히 농구코트에 존재하고 있지만, 마음 속 우정은 영원히 계속되고 있었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뛴 시간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 아닌가.

“(모처럼 웃으며)그렇다. 김진 감독님이 팀을 이끄시면서 김승현 이상민 신기성 선수에다 문경은 조상현 현주엽 추승균 전희철 선수, 그리고 나까지, 최상의 조합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선수 구성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몇 어린 선수들을 제외하곤 거의 10여년 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선수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중국을 제치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다. 사실 오랫동안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중국은 나한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장신들이 즐비한 중국을 넘어서야 진정한 아시아 강자로 설 수 있는데, 매번 그 벽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다 그걸 이뤄낸 것이다.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는 마치 밀렸던 숙제를 한꺼번에 끝마친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이제 할 일을 했구나’하는 안도감, 뿌듯함이 물밀 듯 했다.”

-오래 전부터 선수 생활하는 동안 아끼는 후배, 김승현 선수(삼성)와는 꼭 한 팀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걸 이루지 못하게 됐다.

“그러게 말이다. 승현이랑 함께 뛴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어떻게 하겠나.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인데. 승현이랑은 그냥 밖에서 만나 놀아야 하는 팔자인가보다(웃음). 그래도 아쉽다. 상당히 괜찮은 모습이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서장훈 선수한테 현주엽 선수는 어떤 존재인가. 연고대 시절, 굉장한 라이벌로 불렸던 관계였다.

“팬들은 그런 시선으로 우리 둘을 바라봤지만, 난 주엽이를 농구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왔고 학교가 달라도 대표팀에서 늘 함께 했던 친구였다. 나이는 내가 한 살 위이지만 그냥 친구같았다. 농구 인생에서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나한테는 큰 힘이 됐다. ‘동반자’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서장훈한테 이상민 코치는?

“정말 가까운 형이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배이다. 이 형 덕분에 연세대 시절 신나게 농구를 했었다. 이 형이 존재했기 때문에 농구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늘 승리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런 형과 올시즌 상대팀 코치와 선수로 만나게 됐다.

“대학 졸업 이후 늘 상대팀 선수로 만났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은 없다. 2007년 자유계약신분을 얻어 삼성에서 KCC로 이적했을 때 내심 상민 형과 함께 뛸 수 있게 됐다는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상민 형은 보호선수 지명을 받아 삼성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모든 게 내 뜻 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딱 1년 남았다. 아니 한 시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농구인생의 마지막이 될 이번 시즌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

“솔직히 어떤 기록이나 성적에 대한 욕심이 없다. 날 돌아보고 봉사하는 시간들이길 바란다. 그래서 이번 시즌동안에는 ‘내 자신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 농구를 하는 동안 해볼 건 다 해봤다. 그런데 난 농구선수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번 시즌동안 인간적으로 즐거움을 찾고 싶다.”

-왠지 ‘내 자신의 즐거움’이란 부분에 인터뷰 내내 표현 못할 의미들이 내포돼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보셔도 괜찮다. 그 다음으론 ‘조용한 생활’을 추구하고 싶다. 연세대 입학 후 지금까지 20여년 농구 선수로 인기를 누리면서도 본의 아니게 농구 외적인 문제들로 인해 내 주위가 시끄러웠다. 그래서 이번 시즌 동안에는 요란한 삶이 아닌 덜 조명 받고, 덜 관심 받으면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건 내가 몇 년 전부터 늘 꿈꿔왔던 마지막 소원이다. 바로 ‘무난한 마무리’이다. 농구인생의 마지막 소원은 좀 더 당당하고 멋진 엔딩을 하는 것이다. 이 소원은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웃음).”

농구 인생의 마지막 해가 되는 이번 시즌에 자신이 품고 있는 세 가지 소원을 말하는 서장훈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굳이 개인적인 아픔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말하는 내용들에서 그가 안고 있는 진한 아픔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어느 선수들보다 아픔도, 상처도 많았지만 그는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전설’이기 때문에 그가 품은 소원들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장훈이었기 때문에 그는 매번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서장훈이었기 때문에 그걸 견뎌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서장훈이었기 때문에 다시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시즌을 개인의 명예보다는 봉사의 삶으로 살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농구를 뺀 그의 남은 인생만큼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닌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가질 수 있는 서장훈으로 만들어가길 바란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인터뷰를 마무리하다 서장훈이 평소 즐겨 달았던 11번이란 등번호에 대해 물었다. 현재 KT에선 김도수가 11번을 달고 뛰었기 때문이다.

“11번이란 등번호는 SK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달게 된 등번호이다. 사실 굳이 그 번호를 고집하고 싶진 않았는데, 김도수 선수가 먼저 ‘선배님 하시라’고 양보를 해줬다. 어차피 1년 밖에 안 달 거니까 1년 후에는 도수가 다시 달면 된다(웃음). 나중에 기회되면 김도수 선수한테 술이라도 한 잔 살 생각이다. 참고로 도수 선수랑은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다.”

*서장훈 선수와의 인터뷰는 6월 6일 OBS-TV '통쾌하다 스포츠'를 통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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