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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스포츠이야기

스포츠 광고는 어떻게 지름신을 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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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아수라장인 나이키의 새 광고 'My Time Is Now'

시대를 뛰어넘어 이제는 룰까지 뛰어넘었다. 요즘 유로 2012와 함께 밤을 샐 때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방송 중간마다 나이키의 새로운 광고 ‘My Time Is Now’를 보는 것이다. 과거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시리즈 중 하나였던 ‘호세+10’, 그리고 2010 월드컵 즈음 공개된 나이키의 ‘Write The Future’ 같은 블록버스터 시리즈 중에서도 가히 최종판이라 할 수 있을 이 광고의 매력은, 하지만 그저 그 엄청난 물량 공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가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순간은 꿈을 팔 때이며,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거대 스포츠 기업의 마케팅 역시 당연히 이 지점을 노린다. 마이클 조던을 통해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을 심어줬던 나이키 광고 이후 이 양대 스포츠 기업의 광고는 마치 올림픽 구호처럼 더 높이 더 멀리 꿈의 저 편으로 구매자들을 안내했다. 이번 ‘My Time Is Now’가 눈길을 끄는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깟 공놀이’가 가지는 엔터테인먼트의 의미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에어조던 광고

팬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축구는 그리고 모든 구기 종목은 결국 ‘그깟 공놀이’라는 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공을 길이 8야드, 높이 8피트짜리 골대에 넣든, 305㎝ 위 바스켓에 꽂든, 방망이로 쳐서 경기장 바깥으로 날리든,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놀이이지 어떤 생산 활동도 아니다. 축구는 특히 유사 전쟁으로 불리지만 그것으로는 한일전 외에 외국의 클럽, 더 가까이는 당장 어제 새벽 스페인의 경기에 열광하는 지금 이곳의 시청자들을 설명할 수 없다. 전통적인 생산의 관점에서는 정말 무용한, 20명의 사람들이 90~100분 동안 공 하나를 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광경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래서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다. 직접 참여하는 이들에겐 놀이이고, 보는 이에게는 여흥이 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2009-2010 시즌의 인터밀란, 2011-2012 시즌의 첼시처럼,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샤를 상대로 철저히 수비 축구를 펼친 팀들에 대해 이기는 축구냐, 재밌는 축구냐, 라는 논쟁이 벌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무엇이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사자들에게는 당연히 오직 이기는 것만이 목적인 스포츠가,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소비될 때 재미로서의 가치를 요구받는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스포츠 광고, 엔터테인먼트와 그 너머의 판타지

수많은 이들에게 지름신을 내린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앞서 말한 거대 스포츠 용품 회사의 광고는 그래서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다. 사람들을 TV 중계 앞으로 불러 모으는 것은 스포츠의 엔터테인먼트 특성 때문이지만 그 재미와 관심을 구매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 너머의 것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재미라는 가치를 깨지 않는 방법으로.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 발탁 이후 아디다스와 종신 계약을 맺은 베컴 등 스타플레이어에 집중한 광고 전략은 단순히 그들이 유명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스타는 엔터테인먼트의 꽃이고, 경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장식하리라 기대 받는 존재들이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은 어쨌든 그 드라마가 우리의 승리라는 결말로 끝나길 바라며 스타플레이어가 그 결말로 이끄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나이키는 여기에 하늘을 나는 인류의 꿈을 마이클 조던에게 투영시키며 일종의 신성을 만들어냈고, 당연히도 사람들은 에어조던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내 이름은, 이라는 말로 베컴과 이신바예바, 메시  같은 스타들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전하는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시리즈는 신성 대신 감동으로 승부한 탁월한 기획이었다. 역경을 딛고 현재의 위치에 오른 그들의 이야기는 귀신같은 프리킥이나 드리블, 세계 기록 경신이 그저 보는 이들의 눈요기만이 아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성장과 극복의 서사라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즉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고, 이 안에는 꿈과 감동이 있다고 말하며 다음은 당신 차례라고 속삭인다.

서로 다른 시대의 영웅인 플라티니와 지단이 만나는 아디다스의 광고.

판타지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결코 폄하가 아니다. 전성기 무하마드 알리와 그의 딸 라일라 알리의 대결, 전성기 프란츠 베켄바워와 미셀 플라티니가 동시대 선수들과 팀을 이루는 모습처럼 ‘Impossible Is Nothing’의 구호는 정말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가능해지는 어떤 순간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가상이고 판타지다. 만든 사람도 알고 보는 사람도 안다. 중요한 건 믿고 싶은 판타지라는 것이다.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이 중력으로부터 벗어났다면, 이들 광고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이 가상의 장면과 서사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 소품 역할을 한다. 재미를 이야기 하되 그 너머까지 건드려야 하는 것처럼, 꿈을 이야기하되 그 무게감 때문에 자칫 공익 광고가 되어 재미를 훼손해선 안 된다.

‘My Time Is Now’, 강렬한 한여름 밤의 꿈

뛰어난 위트가 돋보였던 나이키의 'Write The Future'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을 맡아 감각적 영상을 보여줬던 ‘Take To The Next Level’, 루니의 상상 장면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Write The Future’, 그리고 최근의 ‘My Time Is Now’까지 이르는 나이키 축구 광고의 물량 공세와 위트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만 앞의 두 광고가 좀 더 재미에 치중했다면 ‘My Time Is Now’는 여전한 유머 감각 안에서 더 큰 판타지를 보여준다. 바로 룰의 붕괴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경기에 같은 유니폼을 입고 난입하는 수많은 축구 스타들과 유망주들을 통해 11명씩 팀을 이뤄 두 팀이 겨룬다는 축구의 룰은 무너진다. 즉 ‘Impossible Is Nothing’이 스포츠 안에서 어떻게 불가능이 극복되는지 보여준다면 이 광고는 아예 스포츠의 근간을 흔든다. 그럼에도 이것이 뛰어난 스포츠 광고인 건, 승패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에서도 축구라는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장을 입고 누구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패스를 주고받는 피케와 이니에스타를 보라. 과거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광고가 ‘그깟 공놀이’로서의 재미와 ‘그깟 공놀이일 수만은 없는’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면 ‘My Time Is Now’는 ‘그깟 공놀이’의 즐거움에 극단적으로 탐닉할 때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만들어내며 아예 두 상황을 일치시켜버린다. 이것은 스포츠 광고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판타지일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분 좋게 꿀 수 있는 한여름 밤의 꿈인 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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