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관련/스포츠이야기

런던올림픽 응원가, 그냥 '챔피언' 부르면 안 될까

SMALL


최근 런던올림픽 공식 응원가 '코리아'를 발표한 싸이. 좋은 응원가를 만들었지만 '오성과 한음' 프로젝트는 어딘가 불편하다(사진=연합뉴스)

역시 ‘떼창’의 힘을 아는 가수다. 국립국악원이 진행하는 ‘오성과 한음’(오천만 국민의 성원을 한국의 음악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싸이의 2012 런던올림픽 공식 응원가 ‘코리아’는 그의 히트곡 ‘챔피언’, ‘연예인’ 등이 그러하듯 그냥 듣기보다는 함께 따라 부르고 즐기기에 좋은 곡이다. 국악과의 접목이라는 전제 때문에 혹 그의 장기가 발휘되지 못할까 걱정한 게 사실이지만, 랩으로 차곡차곡 흥을 쌓아나가다가 흔히 ‘사비’라고 부르는 코러스 파트에서 신나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로 빵 터뜨리는 그의 방식은 ‘코리아’에서도 무리 없이 재현된다. 헤비메탈 스타일의 리프와 국악 반주를 깔고 진행되는 랩은 어색하지 않으며 작정하고 ‘떼창’을 유도하는 ‘코리아 더 크게 코리아 더 크게’의 코러스 파트는 예의 장점을 그대로 반복한다. 후반부 울리는 아리랑 반주도 민망하지 않다. 요컨대, ‘코리아’는 국악과의 접합이라는 점에서도 잘 만든 곡이고, 응원가로서도 상당히 괜찮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2002년 월드컵 때 그토록 자주 불리던 ‘챔피언’보다 좋은 응원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가 기관에서 주도하는 응원가

국악이라 응원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소리로 국민 응원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념적 전제가 창작에 앞서는 게 문제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된 ‘오성과 한음’ 프로젝트 홍보 영상에서는 ‘우리 악기로 연주하는 대한민국 응원가’의 당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악이라는 장르가 이젠 결코 대중적이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국악 애호가들의 힘을 모아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 프로젝트는 대중과 호흡한다기보다는 대중에게 위에서 아래로 전달하는 것에 가깝다.

'오 필승 코리아' 기금을 조성하는 윤도현 밴드. 2002년 당시의 '오 필승 코리아야 말로 가장 응원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곡이다(사진=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악원이 진행한 때문인지 ‘코리아’에는 바로 런던올림픽 공식 응원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빅뱅과 노브레인이 함께 부른 ‘Oh My Friend’를 비롯해 여러 가수들의 올림픽 헌정가들이 나왔지만 그 어느 것도 공식이라는 타이틀을 얻진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응원가인 2002년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 역시 그런 식의 명칭을 얻진 못했다.

‘공식’ 응원가라는 이름의 불편함

그래서 이것은 국악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국가적 공식 응원가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의 문제다. 88올림픽의 ‘손에 손 잡고’ 같은 공식 주제가와 응원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비교 대상이다. 응원가의 주체는 절대적으로 가수도 국가 기관도 대회 스폰서도 아닌 응원하는 일반인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해도 되겠지만 정말 중요한 건 국가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각기 다른 욕망과 성격을 가진 개개인들이 그럼에도 공유하는 국가대표와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다. 좋은 응원가란 그런 다수가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일 것이다.

앞서 예로 든 ‘오 필승 코리아’가 그렇다. 사실 이 곡은 잘 알려진 것처럼 유럽에 퍼진 작자 미상의 응원가를 부천 FC 서포터즈가 응원가로 쓰던 걸 응용한 곡이다. 국가에서 국악으로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곡을 만들겠다는 ‘오성과 한음’ 프로젝트의 이념으로 보자면 근본도 없는 응원가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이 곡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굳이 이러저러한 타이틀을 붙이니 않더라도 명실상부한 당대의 국민 응원가 역할을 했다. 싸이의 ‘챔피언’ 역시 굳이 응원가로서 전파하기 위해 만들기보다는 길거리 응원 인터뷰를 계기로 만들었다가 사람들이 호응한 경우다.

2002 월드컵의 주역을 소환할 정도로 기업의 응원가 경쟁은 치열해졌다

‘오 필승 코리아’의 성공 이후 변질된 응원가 경쟁

오히려 응원가라는 이름에 함축된 응원하는 주체에 대한 존중은, ‘오 필승 코리아’의 성공 이후 2006년 독일월드컵부터 쏟아진 기업 위주의 응원가 경쟁 때문에 빛을 잃었다. 4년마다 새 응원가가 등장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좋은 응원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무엇을 부를지 선택하고 직접 부르는 건 응원 주체의 몫이다. 이미 전 국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응원가가 있는 상황에서 올해부터는 이걸 부르라며 ‘Reds Go Together’라는 응원가를 만들고, ‘오 필승 코리아’의 주역 윤도현 밴드가 굳이 SK와 함께 ‘애국가’ 록버전을 응원가로 들고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그래서다. 응원가를 응원가로 만드는 건, 공식 응원가를 만들겠다는 인위적인 의도가 아니라, 수많은 일반인 다수가 어떤 노래를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즐기는 누적된 시간이다.

스페인에게 압도적으로 졌지만 선수들을 격려하던 아일랜드 응원단. 경기장 가득 울린 그들의 응원가는 하지만 굳이 이번 대회를 위해 만든 공식 응원가는 아니다(사진=연합뉴스)

가령 이번 유로 2012에서 스페인 대 아일랜드 전에서 아일랜드 팬이 아닌 이들까지 감동시켰던 아일랜드 응원단의 응원가는 1970년대에 나와 아일랜드의 정서를 대변해주던 곡이자 셀틱 FC 응원가인 ‘Fields Of Athenry’였다. 40여 년 동안 불러온 그 누적된 기억들을 상징하는 이 노래가 과연 새롭게 만든 응원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 한국에도 상당한 팬을 보유한 팀인 리버풀 FC의 경우 게리&페이스메이커스의 ‘You'll Never Walk Alone’을 응원가로 쓰지만 누구도 원곡이 축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시비하지 않는다. 서포터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팀을 위해 이 노래를 불러온 역사가 응원가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인 롯데의 ‘부산갈매기’와 기아의 ‘남행열차’ 같은 곡들도 마찬가지다.

리버풀 FC의 응원가 제목의 약자인 'YNWA'는 리버풀 서포터즈의 상징 중 하나가 됐다(사진=연합뉴스)

이제는 밑에서 위로

다시 말하지만 ‘코리아’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의도에도 불구하고 응원가로 좋은 노래다. 이 노래를 통해 올림픽 응원단이 부를 좋은 레퍼토리가 하나 늘어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 때마다 국가 이념 혹은 기업의 상업 논리를 바탕으로 공식 응원가를 바꿔가며 대중에게 제시하던 하향식 진행은, 이제 응원 주체인 대중으로부터 올라오는 상향식 진행으로 바뀌는 게 좋지 않을까.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이야말로 누구의 간섭과 지시 없이 누려야 하는 것이니까.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