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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축구

[풋볼리즘] QPR 어떻게 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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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파크레인저스 슈퍼스토어 메인을 장식한 등번호 7번의 박지성

런던 날씨, 고약하다. 한국 떠날 때만 해도 런던 날씨가 하도 춥다고 해서 두꺼운 옷을 잔뜩 싸들고 왔는데 처음 며칠은 더워 혼났다. 속았다 싶었는데 런던 날씨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개막식 날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반소매 옷을 입고 거리 돌아다니는 것이 여간 쌀쌀한 게 아니다. 뭐 그래도 복에 겹지 싶다. 시차 8시간 떨어진 우리 고향은 폭염에 산이며 강이 타고 있다고 하니.

퀸즈파크레인저스의 홈구장을 찾은 날도 비가 뿌렸다. 흩뿌리는 가랑비였다.

퀸즈파크레인저스. 1년 전만 하더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줄줄이 꿰는 축덕이어도 고개를 갸웃할 팀이었다. 여왕의 공원(퀸즈 파크)과 레인저스라는 이름에서 영국 축구팀인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어도 잉글랜드에 있는지, 스코틀랜드에 있는지 퍼뜩 떠올리기 쉽지 않은 클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여름 15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으니 2부인 챔피언십 등 하위리그까지 꼼꼼히 챙겨 보지 않고는 머릿속에 챙겨두기 어려운 팀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퀸즈파크레인저스 하면 모르는 축구팬들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 여름 승격해 맨시티와 시즌 최종전에서 ‘인생 경기’를 펼치며 극적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해서만이 아니다. 박지성이 한바탕 뒤바뀌어 놓았다. 지난여름 박지성이 맨유를 떠났다. 그리곤 전격적으로 퀸즈파크레인저스로 향했다. 다들 까무러쳤다. 기대와 우려가 복잡하게 뒤섞였다. 런던 서부의 작은 축구팀은 그렇게 한 순간 화제와 관심의 한 가운데로 떠올랐다.
 

로프터스 로드에서 가장 가까운 화이트시티역

까무러치게 놀란 박지성의 QPR행

근데 여전히 퀸즈파크레인저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런던의 몇몇 클럽은 가 보았지만 퀸즈파크레인저스 홈구장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이름이 길어 줄임말로 부르는 QPR, 생소했고 낯설었다. 그래서 찾기로 했다.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어떻게 가는지도 알고 싶었다. 퀸즈파크레인저스 홈구장을 찾는 방법은 그리 많이 나와 있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QPR은 연고지 팬들을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찾을 일이 많지 않은 클럽이었다. 런던에만 12개의 프로팀(1~4부)이 있으니 몇몇 유명 클럽을 제외하고는 신경 써 정보를 정리할 여력이 없을 만도 했다.

참고로 런던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은 1부 프리미어리그 첼시, 아스널, 토트넘, 풀럼, QPR, 웨스트햄 6팀, 2부 챔피언십 왓포드, 밀월, 크리스털 팰리스, 찰튼 4팀, 3부 리그원 레이턴 오리엔트, 브렌트포드 2팀이다. 수도 서울에 K리그 한 팀만이 있는 우리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퀸즈파크레인저스 홈구장인 로프터스 로드로 가기 위해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게 좋다. 꽉 막힌 자동차 길보다 빠르고 안전하다. 뭐 좀 오래돼 비좁은 거만 빼면 그렇다. 런던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19세기말에 개통했다. 옛날에 터널을 파 좁다.

로프터스 로드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센트럴 라인의 화이트시티다. 런던 지하철 노선도 한 가운데를 좌우로 가르는 노선으로 왼쪽 서부에 위치해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 쪽이다. 화이트시티역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가다 보면 퀸즈파크레인저스 방향을 표시한 안내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 100m 쯤 걷다 보면 BBC 텔레비전 센터 앞 삼거리가 나온다. 걸어오던 방향에서 왼편으로 건너 길 따라 5분 쯤 곧장 걸으면 로프터스 로드가 나온다.


화이트시티 역사 출구의 퀸즈파크레인저스 안내 표지판

런던 서부의 작은 클럽에 불어 닥친 변화

경기장이 아담하다. 2만 명이 채 들어가지 못하는 구장으로 딱 봐도 오래돼 보인다. 1882년 지어져 130년의 역사를 품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곳도 변화의 바람을 맞을 모양이다. 퀸즈파크레인저스가 홈구장을 넓히기 위해 다른 부지에 대체 구장 건설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연습구장과 홈구장 모두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런던의 작은 클럽인 퀸즈파크레인저스가 구장 신축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계획할 수 있는 건 최근 클럽에 불어 닥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지난해 여름 말레이시아 출신의 갑부인 토니 페르난데스가 퀸즈파크레인저스의 대주주로 참여하면서 구단이 싹 바뀌었다. 페르난데스가 구단 지분의 66%를 가지고 있고 인도의 세계적 철강왕 미탈 가문이 나머지 3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아시아의 갑부들이 클럽을 인수하면서 올 초 클럽 사상 최고액인 100억 원 넘는 이적료를 주고 풀럼에서 보비 자모라를 영입하는 등 매우 분주한 걸음을 걷고 있다. 박지성의 영입도 이와 같은 흐름의 이어짐이다.

맨유의 전설 마크 휴즈 감독을 지난 시즌 중반 영입해 잔류에 성공한 퀸즈파크레인저스는 새 시즌 기대가 크다. 프리미어리그 잔류 이상의 순위 상승을 노리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원년에 득점랭킹 2위 레스 퍼디난드를 앞세워 차지했던 런던 연고 클럽 최고 순위 5위까진 아니어도 중위권까지는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이번 여름 전력 보강에 열중인데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박지성이다.

박지성에 대한 기대는 QPR 팬들이 가장 많이 찾는 퀸즈파크레인저스 팬 숍인 슈퍼스토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지난 시즌 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아델 타랍과 함께 박지성의 마킹 저지가 쇼윈도에 전시돼 있다. 쇼윈도에 전시된 마킹 저지는 7번 박지성과 10번 타랍의 것이 ‘유이’하다.

 

박지성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될 로프터스 로드

전혀 다른 로프터스 로드 그리고 맷집

경기장과 인근 거리를 돌아보면서 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확실히 박지성이 7년 간 뛰었던 맨유와 올드 트래포트의 풍광은 이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거리 풍경과 규모 등 보이는 것이 다르지만 사실 이 같은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박지성이 퀸즈파크레인저스에서 경험할 전혀 다른 부담과 도전이다. 맨유는 한 시즌에 얼마 패하지 않는 클럽이다. 패하는 데 익숙한 팀이 아니다. 아인트호벤 시절에도 패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퀸즈파크레인저스는 다르다.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은 클럽이다. 지는 경기의 빈도가 줄 순 있지만 당장 맨유 시절만큼은 될 순 없다. 지는 경기에 익숙해질 필요까진 없지만 받아들이고 매 경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신적 체력을 길러야 한다. 일종의 맷집이다.

박지성은 요즘 런던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다. 지하철이랑 버스를 타고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런던을 알아가고 있다. 맨체스터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지금은 임시 거처에 살고 있는데 조만간 집도 마련할 것이다. 하나 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가고 배워가고 있는데 퀸즈파크레인저스에서도 그렇게 또 잘 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믿는다. 지금까지 새로운 선택 앞에 모든 걸 책임지고 이겨낸 모습처럼 말이다.

로프터스 로드에 가랑비가 내린다. 런던의 고약한 날씨가 옷은 망치지만 왠지 기분만은 설렌다. 어서 빨리 시즌이 시작했으면 좋겠다. 퀸즈파크레인저스의 저지를 입고 뛸 박지성의 모습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퀸즈파크레인저스의 시즌 개막전은 올림픽이 끝나고 일주일 뒤인 8월18일 스완지 시티와의 런던 홈경기다. 마음은 남아 직관하며 응원하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에 있건 로프터스 로드의 가랑비가 간절히 그리울 것 같다. 오늘만큼의 추억처럼.

퀸즈파크레인저스 현지 팬들의 박지성에 대한 기대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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