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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선수협은 왜 올스타 보이코트를 철회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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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들은 말한다. "10구단은 야구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고. 오늘도 미래의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야구소년들이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철회했다. 7월 13일 선수협은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10구단 창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강력한 의지, 실행 준비 상황을 믿고 팬들을 위해 올스타전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수협 박충식 사무총장은 "KBO로부터 ‘한국시리즈 직후 10구단 창단 승인을 위한 이사회를 소집해 연내에 10구단 창단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과 의지를 들었다“며 "선수 대표들과 충분히 논의한 결과 ‘일단 KBO의 의지를 신뢰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선수협은 지난달 26일 임시 총회에서 KBO 이사회의 10구단 창단 무기한 유보에 대한 반발로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선언했었다.

선수협의 올스타전 보이코트 철회로 사상 첫 올스타전 취소라는 파국은 막게 됐다. 하지만, 이번 철회가 10구단 창단과 직결될지는 의문이다. 선수협이 파국을 막고자 KBO에 많은 부분을 양보했지만, 여전히 10구단 창단 문제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KBO의 강력한 의지도 이사회의 무한 권한 앞엔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자칫 선수협이 ‘10구단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사회 “KBO에게 10구단 창단 위임“, 실상은 KBO에게 폭탄 넘기기

올 시즌 프로야구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지난 1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KBO 6차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회에는 이장석 넥센 사장을 제외한 8개 구단 사장이 참석했다. 당시 이사회 안건엔 10구단 문제는 들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구단 사장들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10구단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의외였다.

회의가 끝나고서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10구단 창단에 대해 진전된 논의가 있었다. 이사회가 ‘앞으로 10구단 문제를 KBO에 위임하겠다’고 했다"며 "KBO가 앞장서 선수협과 대화를 통해 리그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양 총장은 “이사회가 KBO에 많은 부분을 위임해줬다”와 “이사회에서 진전된 논의가 있었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이사회가 ‘어느 부분을 위임했는지, 진전된 논의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선 함구했다.

<스포츠춘추>의 취재 결과, 이사회가 KBO에 위임한 부분은 매우 형식적인 내용으로 밝혀졌다. 진전된 논의 역시 사실상 ‘진전된 게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 구단 사장은 “이사회가 KBO에 위임한 건 ‘언제 어떻게 10구단을 창단하자’ 식의 구체적인 창단 계획이 아니라 ‘언제쯤 10구단 창단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는 수준의 창단 논의 재개 시점을 KBO 보고 알아서 정하라는 것이었다”며 “진전된 논의 역시 ‘조만간 10구단을 창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KBO가 10구단 창단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원론적인 당부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KBO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KBO 고위 관계자는 “10구단 창단 여부와 창단 기업, 연고지 선정 등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KBO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10구단 창단 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밖엔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어째서 KBO는 이사회로부터 많은 부분을 위임받았다고 발표한 것일까. KBO는 “얻은 게 없지 않다”고 말했다. KBO 관계자는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KBO가 다시 이사회에 10구단 문제를 상정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이는 무기한 유보되며 꺼져가던 10구단 창단 불씨를 되살린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창단 불씨를 살리고, 말고가 아니었다. 불씨가 언제든 이사회에 의해 재차 꺼질 수 있다는 문제였다. 실제로 KBO가 인정하듯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다시 10구단 문제가 이사회에 정식안건으로 상정돼도 이전처럼 일부 구단이 반대하면 ‘없던 일’이 된다. 이전 이사회의 반복이다.

정작 KBO가 위임받아야할 건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구체적 권한이었다. 언제 10구단 창단 논의를 재개하고, 어떤 방식으로 10구단 기업과 지자체를 선정해 언제 10구단을 1군에 합류시키느냐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았어야 했다.

단순히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KBO가 다시 이사회에 10구단 문제를 상정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한만 부여받았다면 그건 권한을 위임받은 게 아니라 이사회로부터 ‘골치 아픈 10구단 폭탄’을 넘겨받은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사회는 대외적으로 ‘10구단 문제를 KBO에게 위임했다’고 발표한 순간부터 10구단 문제와 관련해 ‘KBO에게 물어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핵심 키(Key)는 자신들이 쥐고 있으면서 KBO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다. 이사회의 묘수라면 묘수가 적중한 상황이다.

KBO “선수협이 파국을 막았다.” 현실은 선수협과 폭탄 나눠갖기

10구단 문제로 꽁꽁 얼었던 야구계가 조금씩 녹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정직하게 말해 이사회가 KBO에 위임한 건 10구단 창단 문제가 아니라 선수협의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철회를 위한 해결사 역할이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KBO에 10구단 문제를 위임한 것처럼 포장해 KBO와 선수협이 같은 링에 오르도록 했다.

선수협은 6차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10구단 창단 논의를 재개하지 않으면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강행하겠다”는 자세였다. 당시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야구계의 입장은 선수협 지지였다. 사실 선수협의 올스타전 보이코트는 위험성이 많았다. ‘팬을 볼모로 삼는다’는 지적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선수협으로선 10구단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었다. 일부에선 “몇몇 구단이 신생구단 참여를 이유 없이 막는 건 일종의 독과점 행위이자 담합행위”라며 “차라리 선수협이 올스타전 보이코트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공정위에 제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실례가 있다.

2001년 선수협은 대리인 제도 도입에 미온적인 KBO를 공정위에 제소했다. 논의 끝에 공정위는 KBO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KBO는 공정위의 명령에 따라 야구규약 대면계약에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는 변호사법 소정의 변호사만을 대리인으로 하여야 하며…(이하 중략)선수계약에 관여하는 변호사는 2명 이상의 선수를 위하여 선수계약에 관여할 수 없다'는 조항을 새로 명시했다.

그러나 명시된 내용과는 달리 대리인제도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KBO가 ‘대리인 제도의 시행은 구단, KBO, 선수협의 전체 협의에 따라 그 시행시기를 정한다’는 단서를 달아놨기 때문이다. 결국 구단의 반대로 대리인 시행은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한마디로 공정위의 명령이 휴짓조각이 된 셈이다.

선수협이 10구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선언했을 때 미국과 일본 선수노조의 반응은 놀라움 일색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두 나라 선수노조는 과거 정규 시즌 중 파업을 선언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바 있었다. 미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1994년 구단주들이 매년 치솟는 선수들의 연봉을 우려해 회의 끝에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하자 총파업에 들어갔다. 결국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서 구단주들이 샐러리캡 제도를 철회하며 끝을 맺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선 2004년 9월 총파업이 있었다. 당시 일본 선수회는 밀실에서 추진하던 오릭스 블루웨이브- 긴데쓰 버팔로스 합병과 단일리그 체제로의 회귀를 반대하며 이틀 동안 총파업을 벌였다. 그때도 미국을 순방 중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11개구단으로 단일리그를 운영하는 것보다 신생구단 창단을 통해 양대리그를 유지하는 게 좋다”는 의사를 밝히며 파업의 실마리가 풀렸다. 이후 구단들은 오릭스와 긴데쓰를 합병하되 신생구단을 창단하기로 했고, 그해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하며 파업은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

미국과 일본 선수노조가 주목한 건 메이저리그 파업이 현역 선수들과 구단들 간의 밥그릇 싸움이고, 일본 파업 역시 리그 축소 위기감에 따른 현역선수들의 생존권 싸움이었다면, 한국 선수협의 올스타전 보이코트는 현역선수들이 아닌 자국야구의 발전과 미래 야구 꿈나무를 위한 싸움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파업 의도가 한국은 ‘선수 이기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선수협은 명분이 충분했음에도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에 대해선 고민이 많았다. 그즈음 ‘KBO가 이사회로부터 10구단과 관련한 많은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선수협은 타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10일 KBO 관계자와 만난 선수협은 크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그도 그럴 게 선수협은 KBO가 실질적인 10구단 창단 계획을 설명할지 알았다. 하지만, KBO는 “우리를 믿고 따라달라. KBO는 강력한 10구단 창단 의지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선수협은 재차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10구단을 언제 창단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KBO는 “한국시리즈가 끝난 이후, 이사회에 10구단 창단안을 다시 상정하겠다”고 약속하고서 “구본능 총재께서 강력한 의지로 10구단 문제를 해결할 터이니 우리를 믿어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KBO와 헤어지고, 선수협은 자체 회의를 거듭했다. 그리고 12일 KBO 고위관계자와 만나 다시 협상을 벌였다. 최종 협상이 끝나고 선수협은 ‘실질적으로 KBO가 명문화해 약속한 건 없지만, 10구단 창단 의지가 강력한 KBO 총재를 믿고, 대의 차원에서 일단은 선수협이 양보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덧붙여 '10구단 창단 반대 구단을 궁지로 몰 경우, 그 구단들이 더 극렬하게 창단을 반대할 수 있고, 향후 10구단 창단이 결정돼도 반대 구단들로부터 협조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염려를 고려했다.

13일 선수협은 고심 끝에 올스타전 보이코트 철회를 발표했다.

선수협 관계자는 “선수 대표 가운데 올스타전 보이코트를 강행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우리의 주장이 KBO와 이사회에 충분히 전달됐고, KBO도 열의를 다해 10구단 문제를 끌고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향후 창단 프로그램을 밝혀 일단 우리가 먼저 양보하기로 했다”며 “향후 10구단 문제가 또 다시 무기한 유보된다면 그땐 선수들이 올스타전 보이코트 이상의 실력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야구인은 선수협의 올스타전 보이코트 철회 소식을 듣고 “선수협이 대의 차원에서 ‘통 큰 양보’를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만약 10구단 창단 논의가 지지부진하면 그 책임을 선수협이 지게 생겼다”며 “이사회에서 KBO로 넘어간 ‘10구단 폭탄’이 이제 선수협으로 넘어간 셈”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선수협의 양보, 10구단 창단의 단초가 되려나

신일고 야구부원들이 러닝훈련을 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사회가 돌린 ‘10구단 폭탄’을 KBO와 선수협이 나눠갖게 된 건 확실하다. 야구계의 우려대로 10구단 문제가 좌초하면 그 책임 가운데 상당부분을 KBO와 선수협이 져야 한다. KBO는 10구단 창단이 실패로 끝나면 '이사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도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선수협은 'KBO로부터 구두 약속만 받은 걸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발표하고서 결국엔 뒷통수를 맞았다'는 원성을 살 게 분명하다.  KBO 구본능 총재도 예외가 아니다. 선수협이 구 총재를 믿고, 올스타 보이코트를 철회한 이상 구 총재의 어깨가 무거워지게 됐다.

물론 선수협과 KBO가 협상 타결을 통해 얻은 것도 있다. 선수협은 ‘통 큰 양보와 이해’로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진정성과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게 됐다. KBO 역시 이사회가 하지 못한 선수협 설득으로 업무 추진력과 협상력에서 후한 점수를 받게 됐다. 특히나 선수협이 KBO 구본능 총재에 힘을 실어주면서 구 총재의 리더십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사회는 10구단 문제를 KBO와 선수협에게 떠넘기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되레 KBO와 선수협이 하나가 되며 10구단 창단 논의가 더 활발히 진행되게 생겼다.

모 구단 사장은 “야구계가 똘똘 뭉쳐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사회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10구단 창단을 결사반대하던 구단 가운데 일부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조만간 KBO는 10구단 창단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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