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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이 박지성을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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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에서 초능력 축구 대결을 펼친 박지성. 일반인과의 대결에서 그는 이미 초능력자였다

공간을 지배하는 자! 박지성은 힘 있게 외치곤 쑥스럽게 웃었다. 지난 27일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 초능력 축구 게임을 벌이기 전, 박지성은 과거 ‘초능력자 편’에 등장한 것 중 가장 가지고 싶은 능력으로 유재석의 공간 지배를 꼽았다. 맨유에서도, 국가대표에서도 공간 창출로 유명한 박지성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의 이 능력은, 하지만 이번 초능력 축구에서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박지성에게 농락당했던 ‘런닝맨’ 멤버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능력이야 말로 바로 공간에 대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건, 축구 이야기다.

박지성에겐 통하지 않은 [런닝맨]의 초능력

가장 흥미로웠던 하하의 초능력. 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번 게임에서 박지성을 제외한, 박지성과 한 팀을 이룬 광수까지 모든 [런닝맨] 멤버들은 자신만의 초능력을 부여받았다. 가짜 공들을 뿌리는 개리와 광풍으로 상대팀 공격을 방해하는 유재석처럼 예능 프로그램 차원에서 흥미로운 능력들이 있었지만 역시 축구라는 게임에 가장 특화된 능력은 지석진의 골대 이동과 아이유의 삼촌 부대 소환, 그리고 광수의 시간 정지였다.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닌 하하의 능력은 아무 방해 없이 적진까지 공을 운반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능력 발동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 공격 루트가 하나 밖에 없어 상대팀도 공이 떨어질 곳을 예측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이 아쉬웠다. 아이유의 능력은 박지성도 인정할 만큼 무적이었지만 전후반 한 번씩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광수의 능력과 상쇄됐고, 지석진의 능력은 골대 이동 속도가 박지성의 슈팅 속도에 비해 한참 느렸다. 요컨대, 그들의 초능력은 박지성에게 핸디캡으로 적용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리고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초능력을 발휘하느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박지성은 정말로 공간을 지배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

[런닝맨] 멤버들을 농락한 박지성의 개인기

사실 한 번이라도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과 축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메시와 호날두가 염창동 FC 같은 팀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큼 드리블과 페인팅 모션을 어느 정도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마추어 경기 안에서도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준다. 하물며 국가대표 안에서도 절대적으로 빛나던 박지성이라면 그 차이야 말로 정말 초능력자 대 일반인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전성기 호나우딩요 스페셜을 보는 것처럼 박지성은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로 ‘런닝맨’ 멤버들의 수비를 철저히 농락했다. 수적 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사실 전술적 이해와 실천 능력도 축구 실력의 중요한 부분인 만큼 이러이러한 수비를 펼쳤으면 좋았겠다, 라고 말하는 건 부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단순한 대인 방어가 아닌 압박의 개념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모든 멤버가 박지성에게 우루루 나가떨어지는 건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유가 수많은 삼촌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공을 운반할 때는 박지성도 아이유의 공을 뺏지 못했던 것처럼 다수의 인원이 몰려 공간을 극단적으로 좁히면 개인기나 스피드로도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

박지성도 못 당한 아이유의 초능력. 저렇게 박지성을 마크하면 어땠을까

즉 협력해 공간을 좁혀나가고 박지성의 움직임을 봉쇄해야 했지만 축구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철저히 대인 방어로만 일관했다. 골대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송지효와 아이유는 전력 외로 분류하더라도 수비 라인에 능력자 김종국을 비롯해 네 명의 남자가 있으면서도 박지성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은 건 그래서다. 모두들 박지성에게 직접 달려들어 공을 뺏으려고 했기 때문에 지석진을 제치면 하하가 달려들고 하하를 제치면 개리가 달려들고 다시 개리를 제치는 그런 상황이 연속됐다. 즉 4 대 1이 아닌 1 대 1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인이 한국 최고의 선수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런닝맨’에게 필요했던 승리 공식은?

최근 K리그 부산의 질식 수비에 대한 재평가처럼, 단순히 수비 인원이 많다고 상대의 득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백 수비라고 하지만 10명이 하프라인 뒤에 있어도 여전히 필드는 넓고 빈공간은 많다. 때문에 순간순간 간격을 좁혀가며 상대방을 압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광수가 별다른 공격 루트를 개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런닝맨’ 나머지 멤버들은 대형을 이뤄 박지성만 압박해야 했다. 물론 현대 축구에서 말하는, 상대 페널티 박스에서부터 시작되는 공격적인 압박은 아니다. 그 정도 전술을 쓰기에 체력도 실력도 너무 부족한 그들에겐 흔히 후퇴(Retreat)라고 자기 진영에서의 준비된 수비가 그나마 실점 확률이 가장 적었을 것이다.

첫 골을 만든 김종국의 롱패스. 이것이 가장 확률 높은 공격 아니었을까

즉 굳이 하프라인 너머로 나가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진을 치고 박지성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발을 땅에 붙인 채 수비를 준비하는 만큼 공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며 박지성을 쫓을 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수비가 가능하다. 만약 이기는 것만이 목적인 시합이었다면 원톱을 앞으로 빼고 나머지가 준비된 수비 라인을 만든 뒤 박지성을 막고 저 멀리 나간 원톱에게 롱패스를 하는 것만이 그나마 가장 가능성 높은 승리 공식이었을 것이다. 오프사이드가 없기 때문에 원톱이 광수의 수비 위치를 신경 쓰지 않고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더더욱. 비록 박지성이 여유를 부리긴 했지만 박지성 팀의 첫 실점이 김종국의 롱패스를 받은 지석진의 주워 먹기 슛이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예능이 스포츠를 품을 때, 스포츠로 예능을 볼 때

자신의 파트너로 광수를 고른 박지성. 축구를 알면 그 이유가 더 잘 보인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이기는 것만이 목적인 게임이었을 경우이다. 승패보다는 초능력을 통한 코믹한 상황이 중요한 예능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런닝맨’ 팀이 선전하는 것 같다가 박지성이 작정하고 이기려 하자 게임의 긴장감이 확 풀렸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박지성이 단 한 명의 자기 팀으로 광수를 뽑은 건 자신의 공격이 봉쇄될 경우를 대비해 롱패스에 이은 헤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어떤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선 전술적 태도가 필요하다.

즉 혹시라도 ‘런닝맨’ 팀이 박지성의 단독 돌파에 대항해 나름 수비 진영에서 귀찮게 굴었다면, 그 이후에는 광수의 머리로 향하는 박지성의 택배 크로스를 감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조금은 팽팽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이기기 위한 방법들도 초능력만큼 흥미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웃자고 보는 예능에 죽자고 달려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능이 스포츠를 품어 더 재밌어지는 만큼, 때로는 예능을 스포츠의 눈으로 볼 때 더 재밌을 수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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