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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추신수일기 <11> “다르빗슈도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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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다르빗슈와의 맞대결에서 안타와 도루 각각 1개씩을 기록한 추신수. 텍사스와의 1차전에서 홈런까지 친 터라 그동안의 부진을 털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오늘(7일, 한국시각) 클리블랜드 홈구장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3차전에는 상대 선발 투수로 메이저리그 데뷔 후 승승장구를 달리던 다르빗슈가 등판했습니다. 다르빗슈도 메이저리그 투수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했지만 경기 전부터 한일 투타 대결 구도에 워낙 관심을 많이 받은 터라 저 또한 ‘조금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어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부터 지난 시범경기까지 다르빗슈를 상대로 안타를 때리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경기 내용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추신수는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다르빗슈를 보고 정말 좋은 투수임을 실감했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어요. 만약 삼진을 먹고 허무하게 물러났더라면 오늘 경기에선 다르빗슈한테 계속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다음 타석에서 안타가 나온 순간은 다르빗슈도 ‘괴물’이 아닌 ‘사람’이란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도 제구가 잘 안 되면서 실투를 던지더라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빗슈는 정말 좋은 투수였습니다.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왜 대단한 투수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어요.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세 번째 타석입니다! 3볼 0스트라이크라서 그 다음 볼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악타 감독님이 무조건 치고 나가라고 해서 방망이를 휘둘렀다가 투수 앞 땅볼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팀이 잘 나가는 텍사스와의 시즌 첫 3연전을 맞아 2승1패의 성적을 거둔 부분은 나름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즌 첫 홈런이 터진 텍사스와의 1차전. 개막 후 한 달이 훌쩍 넘어선 시점에서 나온 홈런이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텍사스와의 1차전 경기에선 저의 시즌 첫 홈런도 나왔습니다. 그동안 햄스트 링 부상에서 복귀 후 헤매는 시간들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홈런 한 번 치기 힘드네요^^.

사실 저한테 간절히 필요했던 건 홈런보다 자신감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타석에 들어서는 부분이 이전처럼 썩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부상과 빈볼 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경기력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삼진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강박관념과 그로 인한 방어적인 태도가 타석에 설 때 절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봐요.

텍사스 1차전을 앞두고 지난 시즌, 제가 잘 쳤을 때의 장면만 모아둔 비디오를 봤어요. 동영상을 보면서 ‘아, 내가 저런 공도 쳐냈구나’ ‘투수가 실투하지 않았는데도 안타를 쳤네’ ‘저런 공을 칠 수도 있는데, 왜 지금은 안 되지?’하며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팀 성적도 좋고, 선수들 모두 잘 하고 있는데, 제가 제일 못하니까 말 못할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부상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매사에 조심하려고 애쓰는 부분들이, 특히 일주일만에 복귀하다보니 투수의 공이 이전처럼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시즌 전만 해도 야구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매 경기에 출전하는 데 대해 감사하자고 굳게 결심했지만, 2,3일 성적 못 내고 부진하면 속상하고 걱정되고 열 받고 하는 걸 느끼면서 다르빗슈도 사람인 것처럼 저 또한 사람이고, 야구하는 모든 선수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습니다.



팀의 중심타자가 홈런 한 방에 호들갑을 떠는 건 별로 보기 좋은 일이 아니라는 추신수. 그래도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그도 용기를 갖고 달려가는 것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너무 힘들게 첫 홈런이 터졌지만, 이제부터 홈런 개수가 하나둘씩 쌓여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투런 홈런 이후 베이스를 밟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니까 악타 감독님도, 선수들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예요. 하이파이브도 안 하고, 아예 모른 척 하더라고요. 그 순간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게 바로 첫 홈런이 터진 데 대한 축하의 표시라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그 날,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재우고 아내와 차 한 잔하며 얘기를 나누는데, 아내가 이런 말로 절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야구가 날씨와 같다고. 매일 햇볕만 내리쬐는 게 아니라 비바람도 불고 구름도 잔뜩 끼고, 그래서 매일 우울할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 다시 햇볕이 비추고…, 그러면서 저한테 “자기야, 야구선수랑 살다 보면 도를 닦게 되는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속 깊은 여자를 배우자로 만났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추신수가 장가는 정말 잘 간 것 같지 않나요?^^



'야구=인생=날씨'.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있는 추신수한테 또다른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해도 그는 잘 헤쳐나갈 것이다. 그 또한 인생이기 때문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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