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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사건사고

'우유주사' 내연녀 시신 유기한 산부인과 의사, 경비원과 마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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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우유주사 맞을까요" "오늘요 ㅋㅋ" 문자 오가
약물 투여하며 성관계… 이후 여성 숨지자 시신 유기
"평소 쓰던 프로포폴보다 환각성 약한 미다졸람 쓰며 마취제로 부족분 보충한 듯"
경찰, 과실치사 혐의 적용… "미필적 고의 살인" 주장도

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서초경찰서는 용의자 김모(45·산부인과 전문의)씨가 13종류의 약물을 섞어, 숨진 이모(여·30)씨에게 투약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전문가들은 수면 유도제 미다졸람과 마취제 베카론 등을 섞어서 주사하면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 체포 직후 김씨는 "영양제와 적정량(5㎎)의 미다졸람만을 투여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의 추궁에 약물 혼합 사용 사실을 시인했다.

당초 단순 의료 과실로 알려진 이 사건은 ▲의사 김씨와 이씨의 내연 관계 ▲김씨 아내의 시신 유기 연루 ▲김씨가 독한 약물을 13종류나 섞어 투약한 사실이 차례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의사 김씨가 왜 내연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 경찰은 일단 김씨에 대해 사체유기·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 10일쯤 기소 의견으로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나?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김씨는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달 30일 오후 8시 55분쯤 이씨에게 "언제 우유 주사(통상 성관계를 암시하는 은어) 맞을까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씨는 "오늘요 ㅋㅋ"라고 답장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우유 주사는 영양제를 의미한다"고 진술했다. 오후 11시쯤 김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마친 병원 3층 수술실에 들어가, 나로핀·베카론 등 4가지 약품 앰플을 몰래 훔쳐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내가 피곤하니 (수면 유도제)좀 맞아야겠다"고 말해 미다졸람을 손에 넣었다. 나머지 8가지 약물은 김씨의 집무실에 있던 것이었다.

김씨는 이씨가 "왜 (프로포폴이 아니고) 이거냐"고 묻자 "이것(미다졸람 등)도 좋다"고 대답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흥분·착란 등의 부작용이 있는 수면 유도제 프로포폴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과다 투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약물이다. 김씨는 경찰에서 "이씨 집에 6번 정도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프로포폴을 주사했고, 3번 정도는 이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했다.

자정쯤 김씨는 링거병 2개를 Y자 호스관으로 연결, 미다졸람과 생리식염수 혼합물을 먼저 투약했다. 이씨가 15분쯤 잠을 자고 일어나자, 나로핀·베카론 등 약물 10종과 포도당 영양제를 섞은 링거병의 잠금 꼭지를 열었다. 이씨가 약물을 맞는 동안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수면을 취한 이씨는 오전 1시 10분~1시 50분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1분쯤 이모(30)씨가 내연 관계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 김모(45)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한 산부인과에 들어가고 있다(왼쪽). 1분 뒤인 11시 2분쯤 김씨가 뒤이어 병원에 도착했다(오른쪽). 김씨는 1시간쯤 후 자신이 근무하는 이 병원에서 이씨에게 마취제 등 13종류의 약물을 혼합 투약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초경찰서 제공
◇약물 13종류 투약한 '동기'는?

김씨는 13종류의 약물을 섞은 부분에 대해서 "점적주사(수액을 링거줄을 통하여 방울로 투약하는 방법)로 투약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세브란스병원 마취과 신양식 교수는 "김씨가 사용한 약물 중 마취제 베카론은 숨 쉬는 근육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약물"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당일 김씨는 이씨에게 평소 투약하던 프로포폴보다 환각 작용이 한 단계 낮은 미다졸람을 투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챙겨 한꺼번에 주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필적 고의' 쟁점 예상

김씨는 형사에게 "(내게 살인의도가 있었다면) 정상적인 진료행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살인 의도가 없다고 해도 상대방이 사망할 위험을 알고도 위해를 가해 숨지게 한 경우 살인죄를 인정한 판례도 있다. '미필적 고의(결과를 예상하고도 방치하는 것)'에 의한 살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변호사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생체실험하려고 한 게 아니라면 '13종 약물 투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환각 등을 목표로 투약한 정황이 드러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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