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야기/일상이야기

“한국 국민은 이제 인생설계를 변경해야 한다”

SMALL

이제 소니의 목표는 삼성전자다? 최근 일본의 재계는 ‘한국 배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정확히는 한국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그 목표다. <누가 한국경제를 망쳤는가>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반추해 일본 경제의 전망을 제시하는 책이다. 일본 경제평론가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한국경제가 몰락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에게 일본경제의 대안은 한국식 신자유주의가 아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짚는다.

다카아키는 한미 FTA를 ‘죽음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앞으로 한국은 빈부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국민소득은 훨씬 더 많이 외국의 거대 자본에게 착취당하게 된다”면서 “대부분의 한국 국민은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인생설계를 변경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내수가 아닌 해외진출에 집중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수출 대기업이 돈을 잘 벌더라도 이 수익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세계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리먼사태나 유럽 재정위기, 빈부격차 확대, 청년 실업률 상승, 경제가 성장해도 오르지 않는 실질임금 등 다양한 모순이 불거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국민들도 마침내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다.”

다카아키는 한국의 내수시장이 독과점됐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 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내려가면 독과점 기업들이 만든 상품은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종적으로 돈을 버는 경영자와 주주들을 제외하고 가격 인하의 짐은 노동자들이 지게 된다는 것.



▲ 한국의 고용구조 변화 추이. 도서출판 초록물고기 제공.

실제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고용구조를 살펴보면 평균임금 기준 중위‧중하위 노동자의 비율은 줄었고, 하위에 속하는 노동자 비중은 크게 늘었다. 실질임금이 인하되는가 한편 사회보험도 줄고 있다. 일본 재무성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보장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른 청년실업률은 16.7%(2010년 기준)로 계속 상승해왔다. 한국의 시민들이 인생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이 같은 추세 탓이다.


이 같은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이 ‘가계부채’다. 다카아키가 인용하는 한국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소득에서 이자비율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7~1998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향해 치솟고 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더 가파르게 상승하게 있다.

▲ 한국 가계소득에서 이자지급이 차지하는 비율. 도서출판 초록물고기 제공.

다카아키가 한국보다 ‘신자유주의’ 수준이 덜하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 재무성 ‘법인기업통계’에 따르면, 일본제조업의 배당금은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기에 급격하게 치솟았다. 반대로 노동분배율은 하락했다. 경제위기의 복구비용을 ‘노동’에게 전가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일본 제조업의 배당금과 노동분배율 추이. 도서출판 초록물고기 제공.

한국의 경우 배당금의 상당량이 초국적 자본이나 외국인 주주에게 돌아간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면서 대기업의 수출을 도왔다. 당시 정부와 재계의 논리는 ‘낙수효과’였다. 윗목이 따뜻해야 아랫목이 따뜻해진다는 것.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2009년 기준 OECD 가입국 중 네덜란드 다음으로 44.9%에 이른다. 지난해는 49.6%다. 이중 상당부분을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차지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3사의 매출은 370조 원 수준으로 GDP의 30% 이상이다. 그렇지만 이들 기업 지분의 약 절반은 외국의 초국적 자본이나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수출대기업은 매년 팡파르를 울리고 있지만 그 과실은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다카아키의 주장이다.

▲ 'OECD 주요 국가들의 수출의존도' 및 '일본과 한국의 무역의존도 비교'. 도서출판 초록물고기 제공.

다카아키는 ‘주주의 우위’가 관철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체계에 깊숙이 편입한 한국경제를 “글로벌 자본의 식민지”라고 표현한다. 그는 “한국 수출대기업은 배당금 소득을 극대화하려는 데에 혈안이 돼 있다”면서 “그래서 소득수지가 ‘배당금 지급 시기’인 4월이 되면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구도가 정착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의 소득수지 추이’ 자료에 따르면, 소득수지는 유독 4월을 전후로 적자를 기록한다. 소득수지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소득을 주고받는 수입 및 지출을 의미한다. 4월은 배당금 지급 시기다. 다카아키는 대기업의 성장이 한국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카아키가 제안하는 일본 경제의 대안은 세계화를 주도하는 ‘큰 정부’가 아니라 재정와 공공투자의 주체로서 국가 역할의 확대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경제민주화’ 담론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다카아키는 가계와 민간기업이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며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때까지 만이라도 정부가 재정 지출과 공공 투자를 확대해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누가 한국경제를 망쳤는가


그는 일본 재계가 주장하는 TTP나 FTA 도입에 반대하면서 “글로벌리즘이 무서운 건 공급 능력을 개선할 수 없는 나라는 계속해서 외국계 기업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경제 위기일수록 정부가 외자 도입을 단호하게 거부할 것을 주문한다.

다카아키는 일본이 한국경제의 경로를 밟아서는 안 된다고 직언한다. 위기에 빠진 일본이 신자유주의 모범생 한국에게서 얻을 교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누가 한국경제를 망쳤는가.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확립했다. ‘민주정부’는 IMF와 함께 등장했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렇게 세계화된 투자자들이 원하는 ‘구조조정’을 한국은 충실히 이행해 왔다. 다카아키는 “다행히 일본은 이웃 한국에서 배울 수 있다”고 고백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