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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당신도 입포츠 스타] 김진우가 돌아올 거라고 난 믿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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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일 만에 승리를 기록한 KIA 김진우(사진=연합뉴스)

다치지 마. 이탈하지 마. 부활할 거야.

지난 5월 9일 2012 프로야구 KIA 대 한화의 경기에서 ‘돌아온 탕아’ KIA의 김진우가 승리 투수가 되며 1791일 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1791일이라는 압도적 숫자에서 알 수 있듯, 그 동안 겪은 부진과 방황을 이겨내는 승리로서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이날 보여준 강력한 직구 구위와 커브, 슬라이더 조합은 에이스의 귀환을 기대하게도 한다. 요컨대, 이 날의 경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저 멀리 김진우가 계약금 7억 원을 받으며 KIA에 입단했던 2001년까지 소급해야 한다. 하여 10년 이상 프로야구를 보던 팬들에게 김진우의 승리는 흐뭇하고 뭉클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로서는 언론의 격찬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김진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그래서 프로야구 팬으로서의 연차를 증명하는 의미기도 하다. 이번 [당신도 입포츠 스타]는 김진우의 전성기고 방황이고 함께 한 적 없지만 마치 오래 그와 프로야구를 지켜본 팬인 척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암기용 숙어들이다.

<사례 1> 상대방(B)도 프로야구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되는 팬일 때의 대화

폭포수 커브의 대명사 고 최동원. 김진우의 커브는 종종 최동원과 비견된다(사진=연합뉴스)

A. 와, 김진우 던지는 거 봤어? 김별명도 손을 못 대던데?

B. 잘 던지긴 했는데 또 봐야지. 4월엔 한화한테 털렸었잖아.

A. 그렇긴 한데, 김진우 포텐셜만 터지면 진짜.

B. 아니, 2002년 데뷔했던 사람한테 무슨 포텐셜이야, 포텐셜은.

A. 김진우는 신인으로 탈삼진왕 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재능을 백퍼센트 발휘한 적이 없어.

B. 그건 그냥 실력이 없는 거지.

A. 야, 2001년 대통령배랑 봉황기 우승할 땐 10년에 한 번 나올 투수라고 했어.

B. 아, 옛날 얘기 좀 하지 마.

A. 그 시절 커브는 고 최동원, 김상엽 이후 최고라는 평가였다니까?

B. 그걸 지금 던질 수 있어야지.

A. 좀 오래 방황했잖아. 이제 정신적으로 안정도 됐으니까 기대해볼만 하다고.

B. 그래, 그렇게 잘 던져서 7억 팔 증명하면 되겠네.

A. 하아... 한기주 10억도 회수해야 하는데.

B. 그건 할부로 천천히.

10억 팔 한기주. 그의 고교 신인 계약금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해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박지성 입단 후부터 맨유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엔 장난 아니었지, 에헴”이라 잘난 척을 하는 그런 태도. 사실 김진우의 경우 탁월한 체격 조건과 초고교급 활약 때문에 제 2의 선동렬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프로에서 그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KIA 팬들이 그의 재기를 바랐던 건, 잘 들어가는 날엔 타자들이 손도 못 대던 커브, 한 시즌 승리를 모두 완투로 거두기도 하던 강한 체력 등 꾸준하진 못해도 그래서 더 반짝이던 순간들을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화에서 중요한 건 그 반짝이는 순간들을 본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다. ‘너는 못 봤지? 에헴’ 이런 태도로.

김진우 포텐셜 - 1. 강화 성공해서 렙업만 되면 2. 보이진 않아도 투명 드래곤이 최강이야

아직 다 보여주지 않은, 혹은 않았다고 믿고 있는 김진우의 가능성. 단순히 왕년의 스타의 부활투였다면 이번 김진우의 승리가 이 정도로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 팬들이었던 이들에게 김진우는 단 한 번도 정점을 찍지 못해서 아쉽고 그래서 더 보고 싶던 존재였다. 즉 ‘진우신이 돌아오셨다, 만세’가 아닌 ‘힘들었지? 너 이 자식 파이팅’에 더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프로야구 데뷔 첫 경기에서 탈삼진 10개를 잡아내며 첫 승을 거두고 3연승까지 달릴 정도로 2002년 신인 김진우의 기세는 무서웠다. 비록 데뷔 첫해가 그의 경력 중 최고의 정점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정점을 찍고 하락한 스타보다는 아직 불완전 연소한 미완의 대기로 평가받는 것이다. 때문에 김진우의 재능을 이야기하며 마치 에이스로서의 ‘리즈 시절’을 본 것 마냥 말하다간 오히려 밑천이 드러날 수 있다.

2001년 대통령배 - 1. 그때도 어쨌든 대통령배 열렸겠지 2. 괴물은 한강이 아닌 진흥고에 있다

2001년 열린 3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김진우의 광주진흥고가 우승을 했던 대회. 어차피 나도 알고 듣는 상대방도 안다. 그 경기 안 본 거. 그러니 본 척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서 나온 숙어인 ‘김진우 포텐셜’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숙어로서 함께 사용하면 그 신뢰성이 몇 배 상승한다. 대통령배 경기가 진행된 4월 당시 KIA(당시 해태)와의 7억 원 계약이 이미 풍문으로 떠돌 정도로 진흥고 3학년 김진우의 위력은 굉장했는데 성남서고와의 결승전에서도 9이닝 2안타, 비자책 1실점을 기록했으며 심지어 16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이번에 김진우와 맞대결한 유창식이 그랬던 것처럼 매년, 그 해를 대표하는 특급 고교 투수들은 한 명씩 등장한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10년에 한 번이라는 칭호가 붙진 않는다.

김상엽 - 1. 들어는 봤나, 파워 커브 2. 나 야구 오래 본 사람이야

90년대 초반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현재 NC 다이노스 투수 코치.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파워 커브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이름은 역시 고 최동원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커브가 바로 김상엽의 커브, 그리고 현역에선 김진우의 커브다. 사실 제2의 선동렬이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강속구와 파워 커브 때문에 김진우는 종종 팬들에게 고 최동원과 비교되고는 했다. 제구가 잘 되는 날에는 타자 머리로 날아오는 듯 하다가 스트라이크존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의 커브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때문에 선동렬 대신 고 최동원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김진우의 특징을 아는 척 할 수 있지만 기왕이면 야구팬이면 거의 다 아는 최동원 대신 비운의 스타였던 김상엽을 예로 드는 것이 좀 더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한기주 10억 - 1. 둘이 합쳐 17억 2. 어쨌든 갸레발은 금지

선동렬을 능가한다고까지 평가받던 고교 투구 한기주의 2005년 KIA와의 계약금. 이것으로 한기주는 김진우가 기록한 고졸 신인 최고 계약금 기록을 깼고, 현재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빅리그 행과 국내 리그 진출 사이에서 갈등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고, 2007, 2008년 팀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했던 그지만 부상 이후 몇 년 동안 들쑥날쑥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한기주 입단 당시 한 미국 지역 언론은 KIA를 한국의 양키즈라고까지 소개했지만 이후 KIA의 성적이나 한기주의 성적을 봤을 땐 조금 과한 설레발이었던 셈. 결국 김진우와 한기주 모두 계약금과 프로 활약이 꼭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됐다. ‘김진우 포텐셜’에 대한 강한 기대를 드러내면서도 설레발은 피하기 위한 숙어다.

<사례 2> 상대방(B)이 김진우의 과거를 잘 알고 있을 경우의 대화

김진우는 과연 원조 괴물다운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사진=연합뉴스)

A. 이제 김진우가 살아날 거 같지 않아?

B. 이번엔 잘 던지긴 하더라.

A. 진짜 그 동안 운도 안 따라주고 마음고생도 심했을 텐데 좀 잘됐으면 좋겠다.

B. 그렇긴 한데, 자기가 자초한 게 있지.

A. 싸움박질 하고 잠수타고 다 본인 잘못이긴 한데, 한마음 종주대회로 상반기 날려먹은 건 좀 억울하지.

B. 그건 좀 감독이 오버한 거지.

A. 진짜 한창 잠수타고 그럴 땐 팬들이 사비 털어서라도 훈련시키고 싶다고 했었는데.

B. 타고난 재능이야 역대급이니까.

A. 정말 김진우 포텐셜 터지는 거 한 번쯤은 보고 KIA 팬질 그만둬야지.

B. 또 잘 던지는 거 보면 안 그럴 걸.

A.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참, 요즘 류제국은 군복무 중이지?

B. 마치면 LG랑 입단 협상일 거야.

김진우와 함께 초고교급 괴물 투수로 불리던 류제국(사진=연합뉴스)

해설. <사례 1>이 상대방이 모르는 걸 과시하듯 말하는 대화라면, 이번에는 여타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상대방과 기억을 공유하는 방식의 대화다. 때문에 김진우가 얼마나 좋은 선수였는지 설명하기보다는 그의 경력 중 중요하거나 아쉬운 어떤 순간순간에 대해 ‘너도 알지?’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한마음 종주대회 - 1. 자양강장제 행사 아님 2.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2004년 1월, KIA 타이거즈 선수단과 스태프 전원이 사흘간 군산 야구장부터 광주 무등경기장까지 걸어간 120㎞ 행군. 당시 KIA 감독이자 해태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성한 감독은 군대식 정신 무장을 통해 과거 해태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우완 에이스였던 김진우가 이 행군으로 무릎 부상이 악화되어 상반기를 날리는 등, 악재가 겹치며 우승 1순위로 꼽히던 KIA는 4위를 차지하는 것에 그쳤다. 프로 선수에게 있어 부상은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하지만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거두던 그에게 이 부상은 좋은 흐름을 끊는 악재였다. 김진우의 방황을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폭행, 이탈 같은 것 외에 이런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정말 그를 아끼던 팬인 척 굴 수 있다.

KIA 팬질 - 1. 왜 너희만 5월부터 한국시리즈 하고 있니 2. 또 희망고문이냐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팬으로 산다는 것. 사실 프로야구 팬 중 SK나 삼성처럼 꾸준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팬들은 엄살과 자조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악재가 겹치던 LG와 시원한 승리를 좀처럼 보여주지 못하는 KIA의 팬들은 유독 자조가 심한 편인데, 특히 KIA는 5월 들어 3경기 연속 연장 승부를 하며 선수 뿐 아니라 보는 팬들도 지치는 야구를 보여줬다. 하지만 야구 팬질이 정말 힘든 건, 단순히 응원하는 팀이 못해서가 아니라 포기할라치면 뭔가 희망의 서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김진우의 1승이 그렇다.

류제국은 군복무 중 - 1. 기억나니 2001년 2. 내가 이 정도까진 알아

김진우와 동기이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야구 선수. 같은 학년인 김진우와 함께 초고교급 괴물로 꼽히던 류제국은 고교 졸업 후 시카고 커브스에 입단해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방출 이후 현재는 공익근무를 하고 있으며 2007년 해외파 특별지명 당시 자신을 지명했던 LG와의 교섭이 예상되는 상태다. 김진우와 류제국 모두 10년에 한 번 나올 인재로 평가받던 동기이기 때문에 ‘류제국은 군복무 중’이라는 말은 김진우의 초고교급 시절을 B에게 환기하는 동시에, 대화를 자연스럽게 김진우에게서 해외파 얘기나 다른 드래프트 이야기로 돌릴 수 있는 화제 전환용 고급 숙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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