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기태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김재박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은 과거 현대 유니콘스 감독 시절부터 “내려갈 팀은 내려가고, 올라갈 팀은 오른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실제로 그가 내려갈 팀으로 지목한 구단은 한창 성적이 좋다가도 어느 순간 순위가 내려갔다. 올라갈 팀으로 지목한 구단 역시 하위권을 맴돌다가 갑자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기 일쑤였다. 일부 야구팬은 김 전 감독의 말을 받아 'DTD(Down Team is Down)'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DTD'는 언뜻 김 전 감독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말 같지만, 사실 장기레이스인 정규 시즌에서 시즌 초반 ‘돌풍’은 돌풍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팀마다 133경기를 치르는 정규 시즌은 그만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고, 주전-백업의 차이가 큰 팀은 부상자가 속출하거나 돌발변수 발생 시 연패를 거듭하고, 급기야 하위권으로 추락하게 마련이다. 야구전문가들이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즌 전 LG는 갖가지 악재로 ‘꼴찌 0순위’ 후보로 지목됐다. 선발투수 두 명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영구제명됐고, 주전 포수와 외야수, 불펜투수는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다른 팀 유니폼을 입었다. 가뜩이나 흔들리는 ‘LG호’의 사령탑은 초보감독이었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아쉽지만, LG의 상위권 진출은 올 시즌에도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은 빗나갔다.
시즌 개막전부터 LG는 순항을 거듭했다. 예상보다 투수진은 강했고, 타선은 탄탄했다. 마무리 레다메스 리즈가 흔들리며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때마침 봉중근이 리즈의 뒤를 이어 뒷문을 맡으며 다시 강팀이 됐다. LG는 6월 17일까지 리그 2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LG는 17일 군산 KIA전부터 20일 대전 한화전까지 3연패하며 순위가 5위로 떨어졌다. 여기다 22일 잠실 롯데전부터 27일 잠실 KIA전까지 다시 5연패하며 이젠 6위까지 떨어진 상태다. 야구계는 기다렸다는 듯 ‘올 시즌에도 어김없이 DTD 악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평하고 있다.
과연 LG는 ‘떨어질 팀’의 운명일까. 아니면 올 시즌엔 DTD 악령을 이기고, ‘오를 팀’으로 변화할 것인가. LG 사령탑 김기태 감독은 강한 목소리로 “DTD는 없다”고 강조했다.
6월 말 LG는 슬럼프를 겪고 있다. 그러나 예년처럼 선수단이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기태 감독과 선수들은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의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사진=LG) |
6월 17일까지 SK에 이어 2위를 달렸습니다. 많은 야구관계자와 LG팬은 “올 시즌엔 뭔가 일을 낼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는데요. 하지만, 18일부터 27일까지 9경기에서 1승 8패를 기록하며 순위가 6위까지 내려간 상황입니다. 일부에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DTD 이론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을 하는데요.
최근 들어 우리 팀이 다소 부진한 건 사살이에요.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게 맞습니다. 부상선수도 있고, 주전과 백업 선수들이 동반부진한 면도 없지 않아요. 외부에서 볼 땐 ‘왜 저 선수를 쓰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팀마다 말 못할 사정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28일) KIA 경기가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야구에서 ‘슬럼프’는 있어도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이 고비라고 하셨는데요. 오늘을 고비로 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연패가 길어지고 있어요.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어제까지의 5연패를 끊는 게 중요합니다. 주말에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체력보충과 팀 전력을 재정비하기엔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오늘 경기에 이기면 다음 주 화요일부터 리즈, 벤자민 주키치 등 우리 팀 1, 2선발이 나오는 만큼 충분히 반전의 기회는 있다고 봐요.
최근 9경기에서 1승 8패로 좋지 않습니다. 3연패 뒤 1승 그리고 5연패가 이어지는 상황인데요.
‘몇 연패 정도는 기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즌을 치르다보면 연패는 늘 있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부상선수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음, 찾아올 위기가 찾아온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상선수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외야수 이진영과 마무리 봉중근의 부상이 뼈아프게 느껴집니다. 특히나 봉중근의 부상 이후, LG 연패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봉중근이) 감독실로 찾아왔어요. 제가 그랬습니다. “세상이 모두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냐. 내 기분대로 될 것 같으면 야구가 아니다.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뛰어라”. “알겠습니다”하더군요. 선수단 미팅 때도 봉중근이 선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어요. 원체 말귀를 잘 알아듣고, 좋은 선수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봉중근의 복귀 시점은 언제로 보십니까.
일단 다음 주까진 (복귀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외야수 이진영 역시 복귀가 조만간 이뤄질 것 같진 않은데요.
이진영은 부상당하고 이제 2주가 흘렀으니까 앞으로 2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부상선수 발생으로 팀 전력이 다소 약해진 듯한 인상입니다. 실제로 팀 순위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년처럼 팀 성적이 떨어진다고 무리수가 속출하거나 코칭스태프, 프런트가 흔들리는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올 시즌 우리 팀을 끌고 오는 건 신뢰에요. 성적이 좋든, 그렇지 않든 다들 서로를 도와주고, 하나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팀 성적이 떨어지면서 선수단 분위기가 떨어졌을지 몰라도 선수들이나 코치들에게 “우리 훈련만은 재밌게 하자”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저도 우리 팀이 야구외적인 이유로 무너지는 일은 없어 참 고무적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LG는 승률 5할 복귀를 위해 팀을 재정비하려 한다(사진=LG) |
6월 말에 찾아온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두려움’이에요.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우리가 다시 치고 올라갈 수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게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연패도 연패지만, 그래요. 전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이 한 시즌 농사를 좌우할 시점임엔 틀림없어요. 하지만, 우리 팀이 여기서 주저앉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심 의중에 둔 반격의 시기가 있을 듯합니다.
오늘, 내일 경기를 끝내면 전체 시즌의 ‘딱’ 절반을 소화하게 돼요. 팀을 재정비할 겁니다. 연패 탈출이 우선이고요. 그 다음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시작할 겁니다. 부상선수들이 들아오면 7월 올스타전 이전에 한 번쯤 반격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중요한 건 전반기 끝날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티는 겁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부상선수들 복귀 전까진 지금 멤버로 위기와 맞설 예정입니다.
팀은 위기이지만, 김 감독님의 표정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생각입니다. 초보감독답지 않게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저라고 왜 속이 쓰리지 않겠습니까(웃음). 하지만, 야구의 원칙은 하나에요. 감독이 흔들리면 선수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라운드에 나가면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선수들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펼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주십시오. (강한 어조로) 우리 LG 트윈스에게 슬럼프는 있어도 포기는 없습니다.
+ 김재박 경기감독관은 "LG가 연승을 기록해 5할 승률로 복귀한다면 여전히 전망은 밝다"며 LG를 '내려갈 팀'으로 분류하는 건 아직 성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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