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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캐넌히터’에서 준비된 지도자를 꿈꾸는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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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SK 외야수 김재현이 요미우리 2군 훈련장 앞에 서 있다. 그는 요미우리 2군에서 가장 정열적이고 성실한 코치로 꼽히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캐넌 히터’ 김재현(39)은 현역시절 모범적인 선수였다. SK 시절 그는 훈련장소에 때맞춰 나와 정해진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했고, 정확한 시간에 훈련을 마쳤다. 경기에 출전하면 온 힘을 다했고, 경기가 끝나면 내일 경기를 준비했다. 팀이 필요할 때 한방씩 치고, 자신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벤치에서 동료 선수를 응원했다. 그런 그를 가리켜 ‘모범적인 선수’라고 칭찬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은퇴 시에도 그는 모범 그 자체였다. 김재현은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SK가 우승하자 “내년 시즌 종료 후, 미련없이 은퇴하겠다”는 이른바 ‘예고 은퇴’를 발표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수 대부분은 야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역생활을 연장하려 한다. 그러다 구단의 권유 혹은 종용에 지쳐 등 떠밀리듯 은퇴를 발표한다. 하지만, 김재현은 달랐다. 예고 은퇴를 통해 팬과의 이별을 천천히 준비했다. 은퇴 후 진로에 대해서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자신의 모든 힘과 역량을 2010시즌에 쏟아부었다.

지도자로 돌아선 지금도 여전히 그는 모범적이다. 2010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김재현은 지난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해 3월부터 미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산하 싱글A팀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지도자 연수를 시작했다. 그가 연수를 마칠 즈음 다저스는 “매우 모범적인 지도자”라며 김재현을 칭찬했다.

물론 은퇴 선수의 국외 연수는 생경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재현은 달랐다. 이유가 있었다. 야구계는 김재현이 미국에서 돌아와 전(前) 소속팀 SK로 돌아갈지 알았다. 굳이 SK가 아니어도 그를 받아줄 구단은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그가 선택한 곳은 뜻밖에도 일본이었다. 대개 예비 지도자들이 미국과 일본 가운데 한 곳에서 연수한 뒤 국내 구단으로 돌아오는 것과 달리 김재현은 “선진야구를 더 접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올해 일본행을 선택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모두 지도자 연수를 받은 야구인은 이광환 전 LG 감독과 유승안 경찰청 감독 등 극소수다. 현역에서 은퇴하자마자 미·일 코치연수를 차례로 밟은 건 김재현이 유일하다.

그는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2군 코치로 활약 중이다. 요미우리는 김재현의 노하우와 지도자세, 그리고 그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2, 3군 타자들의 타격지도를 맡기고 있다. 요미우리는 과거 2군 타격코치였던 김기태 LG 감독처럼 김재현이 젊은 선수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돼주길 바라고 있다.

현역 은퇴 후, 미·일 코치연수를 차례로 진행한 김재현

요미우리 2군 훈련장 전경(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요미우리 홈구장은 도쿄돔이다. 도쿄돔은 도쿄 시내에 있다. 하지만, 2군 훈련장은 시 외곽에 있다. 도쿄 신주쿠에서 쾌속 열차를 타고 40분이나 가야 한다. 운이 나빠 쾌속을 놓치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요미우리랜드역에 내려도 갈 길은 멀다. 30분 정도 산을 타야 요미우리 2군 훈련장이 나온다. 그나마 요즘엔 도로가 생겨 15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오르면 도착한다.

요미우리 2군 훈련장을 방문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한번은 요미우리 2군 타격코치던 김기태 LG 감독을 보려고, 또 한 번은 역시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 중이던 김종훈 삼성코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방문도 요미우리에서 지도자 연수 중인 김재현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이 정도면 요미우리가 한국 은퇴 선수들의 단골 연수처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체 요미우리의 콧대가 높아 웬만한 국외 지도자는 받지 않는다. 요미우리와 자매결연한 삼성 출신이라야 그나마 자리가 있다. 김기태, 김종훈, 김재현과 함께 코치 연수를 받는 권오원이 삼성 출신이다. 가뜩이나 요미우리는 몇 해 전부터 한국 은퇴 선수의 코치 연수를 사양해왔다.

그런 와중에 비(非)삼성 출신 김재현이 요미우리로 코치 연수를 떠난 건 의외였다. 김재현은 어떻게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구단으로 코치 연수를 간 것일까.

“사실 지난해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서 선진야구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나 일본 특유의 세밀한 야구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만약 (연수를) 한다면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에서 하고 싶었어요. SK에서 만났던 일본인 코치분들이 늘 그랬거든요. ‘일본에서 야구를 공부하려면 요미우리에서 하라’고요. 하지만, 요미우리가 ‘더는 한국인 코치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더군요. 삼성 출신이 아니면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요미우리와 잘 이야기가 됐어요. 결국 삼성 출신 권오원과 함께 3월부터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재현의 말대로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선진야구를 배웠다. 당시 그는 선진야구를 배워 식견을 넓히고, 야구 본고장인 미국에선 어떻게 선수를 지도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미국에서도 그의 연수처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 가운데 하나인 다저스였다. 하지만, 연수처는 명문일지 몰라도, 그는 맨 밑바닥서부터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싱글A 선수들과 함께 버스에 탄 채 13시간이나 이동해 원정경기를 치르곤 했다. 햄버거로 주린 배를 채우고, 값싼 모텔에서 자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고생을 자주 했어요. 마이너리그 팀들은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날 원정경기가 있다 치면 새벽 2, 3시에 버스로 이동해요. 대개 원정지에 정오 정도 도착해요. 그때 체크인합니다. 새벽에 도착하면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다시 숙박비를 내야 하지만, 정오에 도착하면 그날치 숙박비만 내면 되니까요.”

미 마이너리그에서 김재현은 ‘야구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17년간 뛴 그였지만, 늘 스타였기에 정작 2군 선수들의 심정은 모르고 살아왔다.

“미국의 야구선수 자원은 무한정이에요. 미국, 캐나다 선수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멕시코 등 중남미와 한국,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에서 많은 선수가 몰려옵니다. 얼마나 선수자원이 풍부한지 팀마다 6개월이면 선수들이 바뀝니다. 잘하면 살아남지만, 못하면 다른 선수로 바뀌는 거죠. 전세계에서 선수가 모이다 보니까 좋은 선수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선지 미국 구단은 선수 육성을 세밀하게 하지 않아요. 구단은 선수의 지금보단 장래에 집중하지만, 결국 주어진 시간 이내 살아남은 선수에게만 기회를 줍니다. 얇은 선수층 때문에 장래성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1군 전력으로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한국과는 정말 차이가 커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미국 선수들을 보며 김재현은 ‘프로의 비정함’을 맛봤다. 몇몇 선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김재현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김재현은 연수 코치지만, 선수들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했다.

“미국 선수들이 조언을 부탁할 때마다 망설였어요. 미국은 담당코치가 없는 데선 선수 혼자 연습할 수 없어요. 혼자 연습하다 잘못된 타격폼에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담당코치 대신 내가 알려줘도 되나 싶어 주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코치들이 흔쾌히 ‘김 코치가 직접 지도해보라’라고 허락해 선수들을 도와줬습니다. 진정한 자율야구가 무엇이고, 프로가 뭔지 피부로 절감한 시간이었어요.”

미국에서 돌아온 김재현은 일본의 세밀한 야구를 배우려고 다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만약 김지현이 국외 코치연수를 이력서에 들어갈 경력 쌓기나 외유로 인식했다면 일본행은 선택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국외 코치연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당연한 훈련과정이었고, 그는 현역시절처럼 훈련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았다. 김재현은 “준비 없는 지도자만큼 선수에게 가장 위험한 것도 없다”며 “훌륭한 지도자는 못 되더라도 ‘준비 없는 지도자’란 소린 듣기 싫어 일본에서도 이를 악물고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김재현은 하루에도 수백개씩의 배팅볼을 던진다. 김재현은 "제구는 썩 좋지 않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제구가 좋아지는 배팅볼처럼 초보지도자 김재현도 조금씩 개선된 지도자가 되고 있다(사진=김재현)

은퇴 전까지 김재현의 진로는 불확실했다. 많은 야구인은 그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지도자로 거듭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은퇴 후 계획을 묻는 말에 항상 “고민 중”이라는 대답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 진로를 밝히지 않았다.

“솔직히 지도자로 거듭날 마음은 없었어요. 그러다 2010년 은퇴를 예고하고 한 시즌을 치르는데 조금씩 ‘SK처럼 좋은 팀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전엔 선수 시각에서 보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지도자 입장에서 보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지도자 욕심이 생겨났어요. 그러다 이왕 배우는 김에 철저하게 배우자는 생각이 들어 팔자에도 없는 미국과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김재현의 연수처 요미우리는 일본에서도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일정 자체가 빡빡하다. 김재현은 오전 7시 30분까지 요미우리 2군 훈련장에 도착해 코칭스태프 미팅 후, 선수들의 타격훈련을 돕는다. 대개 일과는 오후 5시에 끝난다. 하지만, ‘서비스’가 있는 날엔 오후 6시를 넘기게 마련이다. 일본에선 코치들이 선수들의 특타를 돕는 걸 ‘서비스’라고 부른다.

“미국 코치들보다 일본 코치들이 적극적이긴 하지만, 한국 코치들보단 덜해요. 한국 지도자분들은 근무시간이 다 끝나도, 선수가 원하면 언제든 특타를 도와주거든요. 현역시절엔 몰랐지만, 정말 우리 코치님들이 얼마나 희생적인 지도자들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코치들의 섬세함에 탄복할 때도 잦다.

“제가 아는 야구가 정답은 아니니까 시간 날 때마다 일본 코치들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봐요. 그때 한 코치님이 그러시더군요. ‘나는 한 선수에게 조언 한마디를 해주려고 며칠 전부터 고민한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걸 느꼈어요. 기본적으로 제 야구철학은 중심에 둔 채 일본야구의 장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만난 김재현(사진 왼쪽부터)과 이대호. 김재현은 농담조로 "(이)대호가 멀리서부터 찾아와 아는 척을 해줘 요미우리 동료들에게 위신이 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재현은 고교시절부터 일본야구계에서 회자됐던 초특급 선수였다. 김재현이 이루지 못한 국외 진출의 길을 이대호가 가고 있다(사진=김재현)

외국인 코치 김재현의 눈에 비친 요미우리 2군 시스템은 부러움 그 자체다. 요미우리 2군 훈련장은 야구장 2면(실외 내야훈련장 포함)과 대형 실내연습장, 최첨단 재활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말 부러워요. 2군 구장이 1군 구장만큼이나 잘 관리돼요. 실내훈련장이 무척 커서 눈이 오나 비가 언제든 훈련이 가능합니다. 아시아 최대로 알려진 삼성 경산 실내훈련장보다 크지 않나 싶어요.”

요미우리는 1, 2군뿐만 아니라 3군도 운영한다. 일본엔 요미우리처럼 3군까지 운영하는 구단이 꽤 된다. 3군 경기를 통해 젊은 선수들은 실전감각을 익히고, 경험을 쌓는다.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 않은 선수들에게 김재현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2, 3군 선수들이 제가 아시아시리즈에서 뛰었던 장면을 유튜브를 통해 본 모양이에요. 제게 다가와서 이것저것을 물어봐요. 여기 선수들은 코치 국적과 상관없이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면 뭐든 물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해요. 그렇게 노력하는 태도가 지금의 일본야구를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노력하는 태도는 스타선수일수록 더하다. 김재현은 요미우리 간판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부상으로 2군에서 재활 중이던 오가사와라를 김재현은 줄곧 옆에서 지켜봤다.

“한 달 가량 오가사와라와 함께 운동했어요. 이 선수가 왜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인지 알겠더군요.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해요. 하루도 어기지 않고 자기만의 스케줄에 따라 하루 5시간씩 재활운동에 매달렸어요. 작은 역기 하나를 들어도 천천히 집중해서 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선수 같으면 횟수에 집착해 대충 들 텐데 오가사와라는 한 번도 요령을 피우지 않았어요. 오가사와라를 보며 어떻게 몸 관리를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요미우리는 규율이 엄하기로 유명하다. 훈련이 끝나고서도 절대 찢어진 청바지, 반바지, 슬리퍼를 착용할 수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햄버거 가게에 가는 것도 금지돼 있다. 요미우리 특유의 ‘자이언츠 프라이드(Giants Pride)’ 때문이다.

“다저스도 프라이드가 대단하지만, 요미우리의 프라이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요. 요미우리는 팀 색깔이 무척 강합니다. 다른 팀과는 격이 달라요. 프런트의 지원도 그렇고, 선수들의 자부심도 그렇고 ‘우리가 일본 제일’이라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혹여라도 그 자긍심에 피해를 줄까 무척 조심하고 있어요. 저 때문에 한국인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나중에 오는 한국인 선수나 코치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가능한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있습니다.” 

자비 연수 중인 김재현, "돌아갈 곳을 있으면 나태해진다."

 

캐넌히터에서 '준비된 지도자'가 되려는 김재현(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김재현은 유일한 휴식일인 월요일을 빼곤 늘 긴장하며 산다. 맑은 정신으로 출근하려고 저녁 시간엔 거의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런 김재현을 요미우리는 높이 평가한다. 김재현의 요청은 절대 허투루 듣지 않는다.

“일전에 요미우리 대표팀을 만났을 때 ‘일본에 온김에 일본야구를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어요. 1군 구장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구단 대표님이 흔쾌히 도와주셨어요. 5월 16일 오사카에서 열린 오릭스와 요미우리 경기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대표팀이 도와주신 덕분이었습니다. 7월 고시엔구장에서 열리는 한신 타이거스와 요미우리 경기 때도 구단 배려로 직접 현장에서 경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재현은 “일본야구를 접하며 한국야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많은 걸 생각했다”고 말했다.

“짧은 야구역사에도 한국은 일본을 상당히 빨리 쫓아왔습니다. 더 쫓아가려면 아마추어 야구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다 선수들도 더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요즘 관중은 단순 관전뿐만 아니라 분석까지 하는 마니아가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도 쉬지 않고 질적 성장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700만 관중은 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김재현은 도쿄 신주쿠에 살고 있다. 가족과 함께 있었지만, 지진이 잦아 가족을 한국으로 보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단다. 한국으로 돌아가 현장 지도자가 되려면 아직 더 많은 걸 배우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김재현의 요미우리 연수는 순전히 자비로 이뤄지고 있다. SK의 도움을 마다한 채 자비로 연수를 진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돌아갈 곳’이 있으면 나태해질 수 있어요. 게다가 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지원받으면 저는 더 공부하고 싶어도 구단에서 부르면 어쩔 수 없이 연수 도중 돌아가야하는 처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어디에도 묶이는 걸 싫어하는 편이기도 해요. 그래 구단 지원비를 거절하고, 자비로 요미우리에 오게 됐습니다.”

김재현의 요미우리 연수는 10월이면 끝난다. 두 해 동안 진행된 그의 국외 연수는 그즈음 막을 내린다. 많은 야구인은 국외 선진야구를 직접 접한 김재현이 한국 프로야구의 스타 지도자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준비된 지도자’ 김재현이라면 야구계의 바람을 저버릴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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