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7명. 지난해 미국 독립리그 팀인 롱 아일랜드 덕스가 기록한 한 경기 평균 관중 수다. 2010년(6,038명)과 비교해 하락했지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등쌀 속에서도 자기 밥그릇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롱 아일랜드 덕스가 속한 애틀랜틱리그는 1998년에 발족한 신생 독립리그다.
10여 년 남짓한 짧은 세월 속에 애틀랜틱리그는 기존의 노던리그와 프런티어리그를 제치고 독립리그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애틀랜틱리그가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깔끔한 신축 구장에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선수들, 그리고 대도시 인근에 프랜차이즈를 두는 혁신적인 경영수법이 있다.
지난해 애틀랜틱리그에서는 2003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에 빛나는 앤젤 베로아를 비롯해 통산 138승을 거둔 제프 수판, 정확하게 통산 100승을 올린 브렛 톰코, 2004년 신시내티에서 26홈런을 친 윌리 모 페냐, 2007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23홈런을 기록한 조쉬 필즈, 통산 85홈런을 친 케빈 쿠즈마노프, LG 트윈스에서 활약한 크리스 옥스프링 등이 메이저리그 복귀라는 꿈을 안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유명 스타와 좋은 경기력은 관중동원의 척도다. 애틀랜틱리그의 팀들은 독립리그 팀별 관중동원에서 상위권을 휩쓸었다. 1위(롱 아일랜드 덕스; 382,027명), 2위(서머싯 패트리어츠; 372,082명), 3위(랭커스터 반스토머스; 323,091명), 5위(요크 레벌루션; 261,590명) 등이 애틀랜틱리그에 속한 구단들이다.
미국에서 현대 독립리그가 시작한 것은 노던리그와 프런티어리그가 발족한 1993년으로 보고 있다. 이전까지의 독립리그는 메이저리그 산하의 마이너리그조차 프랜차이즈를 두지 않는 시골이나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해왔다. 그런 독립리그가 어둠을 벗어나 광명 속으로 나오는 계기를 만든 구단이 세인트폴 세인츠다.
독립구단 세인트폴의 성공신화
세인트폴은 야구장의 볼거리로 동물을 최초로 기용한 팀이다. 팀 마스코트인 새끼 돼지는 이닝 사이에 심판에게 야구공을 전달하며 녹색 그라운드를 누빈다. 또 이닝 사이나 클리닝 타임 때 인형 옷 등을 입고 베이스러닝을 하거나 큰 글러브로 권투를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경기마다 열고 있다.
그런 색다른 볼거리 외에 세인트폴은 두 가지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해 독립리그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첫째는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가 있는 대도시 미니애폴리스 인근에 프랜차이즈를 둔 것이고 둘째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획을 그은 슈퍼스타를 잇달아 영입한 것이다.
관중동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골보다 메이저리그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부담감은 있지만, 인구가 많은 대도시 근교에 연고를 두고 적극 관중을 유치했다. 그 결과 매 경기 매진에 가까운 성과를 내고 있다.
또 매년 메이저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영입해 메이저리그로 복귀하는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1996년에는 대투수 잭 모리스와 강타자 대럴 스트로베리를 영입해 미국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에 선수 이적을 통해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이적료를 챙겨 구단 수입을 늘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 독립구단 세인트폴 세인츠는 지역밀착을 통해 독립구단의 살길을 제시했다. 사진은 팀 마스코트인 새끼 돼지가 이닝 사이에 간식을 먹는 장면. (사진=RxS at Wikipedia.org) |
이것이 세인트폴이 도입한 선진 경영수법이고 이것을 리그 전체가 실천하고 있는 게 애틀랜틱리그다. 애틀랜틱리그의 7개 팀 가운데 뉴욕 인근에 4개 팀(롱 아일랜드, 서머싯, 브리지포트, 뉴어크)이 있고 필라델피아 근교에 1개 팀(캠던) 등이 있다. 수많은 선수가 이 리그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는 기쁨을 누렸다.
최근 독립리그의 가장 큰 특징은 흥행에 성공하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성공한 그룹은 경기당 4천 명 이상을 동원하며 유망한 선수를 다시 메이저리그로 보내 이적료를 챙기고 있다. 경영 상태가 몹시 안정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흥행에 실패한 그룹은 낙후한 구장에 1경기 평균 관중이 2천 명도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흥행 부진으로 하루가 멀다고 프랜차이즈를 이전하거나 활동 중지와 부활을 반복하며 적자에 몸살을 앓고 있다.
후자는 우리나라 퓨처스리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프로야구 각 구단이 퓨처스팀을 통해 올리는 수입은 단 한 푼도 없다. 기본적으로 입장료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조명은커녕 관중석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구장에서 경기하면서 입장료를 내라고 하는 것은 칼만 안 든 도둑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다수 퓨처스리그 구장의 접근성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내비게이션으로도 제대로 찾기 어려운 곳이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 홍보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퓨처스리그는 단순히 경기력을 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퓨처스리그 활성화가 한국야구 발전
퓨처스리그를 야구팬과 공유할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처럼 1군, 퓨처스팀을 한 기업이 소유하지 않고 퓨처스팀을 다른 기업에 분양하는 것도 한번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엔트리 운영, 드래프트 등은 현재 시스템 그대로 하면 된다.
단지, 운영만 다른 기업이 하고 조직 관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에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해나가면 된다. 또 연고지도 산 넘고 물 건너 있는 곳이 아닌 청주, 군산, 전주, 천안, 성남, 용인, 포항, 춘천, 울산 등에 두고 세인트폴처럼 색다른 이벤트를 가미해 경기를 진행한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리그가 될 것이다.
1군과 퓨처스팀의 연계성은 유지하면서 퓨처스팀의 운영 주체를 다른 기업이 하면 기존 구단은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 여기에 프로야구에 매력을 느껴 뛰어들고 싶지만 투자해야 할 금액이 워낙 커 참가를 망설이는 기업은 프로야구단을 갖는 기회를 가진다. 흥행 수입은 물론이고 프로야구로부터 소외된 지역에 야구붐을 조성할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고 털로 베개를 만들고 둥지로 불을 때는 격이다.
SK 퓨처스팀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송도 LNG 구장은 흔히 ‘두바이야구장’이라고 불린다. 야구장으로 가는 길에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제대로 찾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접근성은 최악이다. 또 야구장 주변은 허허벌판이라서 왜 ‘두바이야구장’이라는 별칭이 붙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진=At the ground 김새롬) |
퓨처스리그가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퓨처스팀 선수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프로야구 선수는 많은 팬 앞에 설 때 아름답다. 썰렁한 경기장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고 무수한 삼진을 잡아도 선수는 흥이 나지 않는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맥 빠져서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선수에게 오랜 퓨처스 생활은 기량이 발전하기는커녕 퇴보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또 퓨처스리그 경기가 활성화되어 수익이 생기면 선수단 처우도 나아진다. 스타플레이어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퓨처스 스타가 지금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게 꿈만은 아니다. 1군 무대 진출이라는 꿈 외에 퓨처스리그 경기만으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둘째는 퓨처스리그 경기의 활성화가 야구 저변 확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를 볼 기회는 수도권이나 광역시로 제한된다. 청주, 군산, 전주, 춘천, 수원 등은 정식 야구장이 있지만, 프로야구 경기는 1년에 많아야 몇 경기에 불과하다.
즉,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문화 격차는 경제 격차 이상으로 크다. 이 격차로 말미암아 젊은 층은 대도시를 동경하고 고향을 떠난다. 지역에 프로구단이 생기면 지역민에게 오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애향심을 고취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늘어나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된다. 이것이 선순환되어 다른 지역에서도 야구장을 짓고 프로구단을 유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퓨처스팀 역시 1군과 마찬가지로 그 숫자가 제한적이니까 고양 원더스와 같은 독립구단이 잇달아 창단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직업야구의 폭이 넓어지면 장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 야구를 하는 이가 늘어나 아마야구가 활성화된다. 즉, 퓨처스리그의 활성화가 프로야구로부터 소외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야구 인프라 확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프로야구의 롱테일 법칙
세계적 정보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은 ‘롱테일 법칙’을 주장했다. 롱테일 법칙이란,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판매 등에서는 막대한 상품을 저비용으로 취급할 수 있어서 인기상품의 대량판매에 의존하지 않고 틈새 상품의 다품종 소량판매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프로야구를 대입하면, 1군 경기는 인기상품이고 퓨처스리그 경기 등은 틈새 상품에 해당한다.
지난해 프로야구는 680만 관중 시대를 활짝 열었다. 올해는 800만 관중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제10구단이 창단하면 1,000만 관중 시대도 꿈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군 무대의 얘기일 뿐이다. 한국야구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퓨처스리그를 비롯한 다른 요소도 함께 성장해야만 한다.
NC는 퓨처스리그에서 유일한 6할대 승률(성적 기준일 6월 29일; 0.623)을 자랑하며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성적이 좋은 만큼 홈구장 창원 마산구장을 찾는 팬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평균 4천여 명이 몰려와 홈팀 NC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손윤) |
올해 퓨처스리그는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참가하는 가운데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와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이 퓨처스팀과 교류경기를 열며 흥행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SK와 두산 사령탑을 맡아 명승부를 펼친 김성근 감독과 김경문 감독의 만남, NC와 롯데의 라이벌 구도, 소프트뱅크 3군과의 한·일전, 1군 15승 투수 경찰청 장원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
퓨처스리그가 팬들의 시선을 끌면서 TV와 인터넷을 통해 볼 기회도 늘어났다. 지난해 1군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케이블 스포츠 방송사가 퓨처스 경기를 가끔 중계했지만, 올해는 포털 ‘네이버’를 통해 인터넷 중계로 상당수 경기를 볼 수 있다. 네이버 스포츠 관계자는 “퓨처스리그 중계 동시접속자가 1만 8천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것은 퓨처스리그가 프로야구를 지탱하는 틈새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숫자다.
롱테일 법칙에서 소비자(야구팬)는 일정 수준의 정보(야구장의 접근성, 편의성 등)를 갖고 상품(경기)을 구매한다. 야구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KBO와 각 구단이 할 일이다. 정보를 많이 제공하면 할수록 퓨처스리그를 찾는 야구팬이 늘어날 것은 명확하다. 머지않아 프로야구 1군의 1,000만 관중 시대는 물론이고 퓨처스리그의 200만 관중 시대도 공상만은 아니다. 머리만 크고 꼬리가 짧은 리그의 발전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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