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신인 드래프트를 시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전력균형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기형적인 연고지를 존중하는 방식(연고지역 고교를
졸업한 선수에 대한 우선 지명권)이 유지됐다. 그러다가 1996년부터 2차 지명에서 고졸·대졸 가리지 않고 뽑을 수 있었고, 2000년에 1차
지명권을 고졸과 대졸을 포함해 1명으로 줄였다. 그리고 2010년부터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되고 있다.
전면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연고지역에 따른 선수 수급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에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53개교다. 그 가운데 26%에
해당하는 14개교가 서울에 몰려 있다. 그 외 부산에 5개교가 있고 대구, 광주, 인천 등에 3개교가 있지만, 대전에는 1개교밖에 없다.
여기에 지역 간 수준 차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광주에는 3개교밖에 없지만, 매년 우수한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이것은 부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창원과 대전은 고교팀 숫자도 적은데다가 전력도 그렇게 강하지 않다. 2000년대 들어서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팀 대다수는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인천 등에 있는 학교다. 나머지 지역팀은 우승은커녕 4강조차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지역출신이 아니라 그 팀에서 오랫동안 뛰면서 실적을 남긴 선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지역출신 스타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 이것은 구단 마케팅이 연고도시를 강조하지 않고 지역출신 스타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이라는 배타성을 넘은 개방성’이 필요하다. (사진=손윤) |
지역에 따른 인적 자원이 불균형한 것이 우리나라 고교야구의 현주소다. 그런 가운데 1차 우선 지명 제도는 구단 간의 전력 차이를 상시화해 시즌 순위표를 고정화하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제도적 모순도 생겼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는 행정구역상 광역권역으로 한 지역연고제를 시행했지만, 2000년 3월 구단주 총회를 통해 특정 도시로 한정하는 도시연고제로 전환했다.
예를 들어, 지역연고제일 때 롯데는 부산과 경남이 다른 구단으로부터 보호받는 지역이었지만, 도시연고제로 바뀌며 부산만 보호지역이 됐다. 그래서 창원을 연고지로 한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창단할 수 있었다. 이것은 프로야구 운영의 근간인 야구규약 제18조에 명시된 사항이다. 광역권역을 기반으로 한 1차 우선 지명은 야구규약의 보호지역(즉, 도시연고제)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인 드래프트를 야구규약에 따라 도시연고제를 기반으로 한 1차 우선 지명으로 전환한다면, 연고 도시에 1개교밖에 없는 한화 등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야구계 일부에서는 변형된 1차 우선 지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연고제를 기본으로 하되 프로구단의 연고지가 아닌 지역의 학교는 공동 연고로 하거나 배당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존 구단의 편의주의일 뿐이다. ‘당분간’이 지난 뒤 제10구단이 창단한다면 그 연고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수원에 생겼을 때, 수원 유신고는 이미 연고학교로 둔 구단이 양보(?)한다고 해도 다른 구단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2, 3개교를 붙여주려면 연고지역을 다시 나눠야 한다. 결국, 지역에 따른 고교 야구부 숫자는 물론이고, 수준 차이가 큰 상황에서 전면 드래프트가 유일한 해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2009년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된 뒤로 그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프로·아마 발전 위원회에서 대한야구협회는 KBO에 1차 우선 지명의 부활을 요청했다. 또 3일 열린 프로야구 9개 구단 단장들의 모임인 실행위원회는 1차 우선 지명 제도를 부활하기로 합의를 봤다.
1차 우선 지명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는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하면서 우수한 선수의 국외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프로팀의 연고지역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어 아마야구가 고사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고, 셋째는 지역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육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삼모사일 뿐이다.
연도별 국외에 진출한 아마추어 선수 수 |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외 구단과 계약을 맺은 선수는 총 29명이다. 위의 도표를 보면, 2006년부터 국외로 진출하는 선수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된 2009년 7명이 외국 프로구단과 계약을 맺었지만, 2010년과 2011년에는 매우 줄어들었다. 선수 수만 본다면, 전면 드래프트로 우수 선수의 외국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야구관계자 A씨는 “국외에 나가는 선수 대다수는 신인 드래프트 방식 때문이 아니라 국내 구단의 계약금이 적은 게 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최근 미국에 가는 선수는 두 가지 부류다. 첫째는 꿈을 좇아가는 이고 둘째는 국내 신인 계약금이 너무 헐값이라서 더 많은 돈을 선택한 이다. 여기에 미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국내에 복귀할 때도 2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지만 계약금을 또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계산하고 있다. 국내 구단의 신인 계약금이 만족할 수준이면, 구태여 힘든 국외에 나가지 않았을 선수가 상당수였다고 생각한다.”
역대 프로야구 신인 계약금 TOP 50 |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외국에 진출하는 선수가 거의 없었던 것은 신인 계약금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 상위 50명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그 시절에는 웬만한 투수와 타자는 억대 계약금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전면 드래프트가 처음 시행된 2010년 전체 1순위 신정락의 계약금은 3억 원. 그리고 전체 2순위부터 5순위까지는 1억 8천만 원을, 6순위는 1억 6천만 원을, 7순위와 8순위는 1억 5천만 원에 그쳤다.
아마 유망주가 국외 구단을 선택하는 주요한 이유가 전면 드래프트가 아니라 낮은 계약금이 문제라면 1차 우선 지명을 부활한다고 해서 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2011년 전체 1순위로 7억 원을 받은 유창식처럼 적절한 계약금을 주지 않는 한 유망주의 미국 진출은 막기 어렵고, 무조건 막아서도 안 된다. 여기에 1차 지명이 부활하면 구단이 연고지역 유망주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럴듯하지만,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야구인 B씨는 “구단이 지역 유망주를 관리한다는 것은 사전접촉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1982년 KBO와 대한야구협회가 체결해 5차례 개정한 프로·아마 협정서의 기본 정신은 ‘프로구단의 아마추어 선수접촉은 신인 지명 이후’라는 것에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전접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지역 내 유망주가 다수 있을 때 선수를 유급시키거나 저학년 때 사전 계약을 맺어 경쟁 구단의 접촉을 미리 차단한 것이다. 프로 스카우트의 권유로 투구폼을 바꿨다가 유망주에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예도 있다.
C 구단 스카우트는 오히려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하면서 사전접촉이 줄었다”고 털어놨다. 우리 팀에 온다는 확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국내 구단의 무분별한 사전접촉은 외국 스카우트가 활개를 치게끔 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로 관계자가 아마추어 선수를 신인 지명 이전에 접촉하면 선수 스카우트의 제한 등 엄중한 제재를 받는다. 그래서 자국에서는 사전접촉을 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르다. 외국 스카우트가 학교 관계자를 통해 아마추어 선수를 소개받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테스트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야구관계자 A씨는 “미국에 가는 아마 선수 대다수는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있기 전에 계약을 맺는다. 이것은 사전접촉을 했다는 것을 의미다”고 말했다.
외국 스카우트의 사전접촉에 대해 대한야구협회가 제재를 가하거나 KBO가 항의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국내 구단도 하고 있어서 ‘공정한 경쟁에 어긋난다’고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구단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아마추어 선수는 지명한 이후 접촉’을 철저하게 지킨다면 외국 스카우트에게도 동일한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지키지 않았을 때는 스카우트 활동 금지를 비롯해 제재를 가할 명분도 생긴다.
전화 통화를 한 일본고교야구연맹 관계자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는 일본 아마추어 선수가 거의 없는 것은 신인 지명회의 이전에 일본 구단이든 외국 스카우트든 접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인 지명이 끝난 뒤 짧은 시간에 진로를 결정해야 해서 일본 구단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D 구단 스카우트는 “공정한 경쟁만 지켜진다면 외국 스카우트에게 뒤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전접촉이 아마야구 유망주의 국외 유출을 부채질한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중심은 사무국, 즉 KBO다. KBO의 역할은 구단과 구단 간, 구단과 선수 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할 때 공평하게 조정하며 리그의 전체 이익을 위해 프로야구를 이끌어가는 데 있다. 하지만 현실은 구단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산권조차 없는 KBO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사진=손윤) |
1차 우선 지명 부활의 또 다른 이유 두 가지, 프로구단의 연고지역 아마야구 지원과 지역출신 프랜차이즈 스타 육성도 전면 드래프트의 문제점은 아니다. 야구인 B씨는 “구단이 직접 연고지역의 아마야구를 지원 및 관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프로구단은 기업이 그런 것처럼 이기적인 존재다. 팀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집단이다. 각 구단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때로는 조정하고 때로는 강제해서 리그의 공존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리그 사무국인 KBO의 역할이다.
즉, KBO가 각 구단으로부터 아마야구지원금을 균등하게 거둬 대한야구협회나 별도의 기구를 통해 각 학교에 지원하면 된다. 이것을 구단이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1차 우선 지명 부활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도 그렇다. 과거 프로야구에서는 대다수 선수가 지역출신이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지역출신이었다.’ 가치라는 것은 희귀할 때 빛나는 법이다. 지역출신이 드물 때 지역출신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진다. 지금처럼 지역출신 선수가 커피전문점만큼이나 흔해서는 큰 가치를 지니기 어렵다.
지역출신이 희귀해서 자연스럽게 그 가치가 높아지면 구단의 드래프트 지명 우선순위도 바뀌게 된다. 프로에서는 실력이 먼저이지만, 기량이 엇비슷할 때는 지역출신을 배려하는 구단이 늘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는 연고지역의 제물포고 에이스 이현호를 지명할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SK의 선택은 경남고 서진용과 개성고 김민식이었다. 실력대로 뽑은 것이다. 만약 지역출신 선수의 가치가 더 높았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행 전면 드래프트에는 문제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현행 전면 드래프트는 매 라운드 전년도 최하위 팀부터 지명하는 완전 웨이버 방식이 아닌 웨이버 방식과 역웨이버 방식을 잇달아 하는, ‘ㄹ’자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씨알이 굵은 선수가 많을 때는 1라운드 하위 순번과 2라운드 상위 순번에서 지명하는 전년도 상위권 팀이 유리하다. 드래프트의 가장 큰 목적인 전력균형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다.
최근 프로야구 흥행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배경에는 치열한 순위 경쟁이 있다. 즉, 전력균형이 프로야구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프로야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생각한다면, 조삼모사 하는 1차 우선 지명 부활이 아니라 지명 순번의 문제를 지적할 때다. 또한, 1차 우선 지명을 주장하는 구단은 메이저리그 버드 셀릭 커미셔너의 말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리그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시적인 경쟁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 밑바탕을 만드는 게 드래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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