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관련/프로야구

0.0001%의 확률에 도전한 '17%의 사나이' 이용훈

SMALL

롯데 투수 이용훈

지난해 9월. 일본 도쿄에서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 김경홍)을 만났다. 가네다는 현역시절 400승·4천490탈삼진을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14년 연속 20승·220탈삼진 이상도 마찬가지다. 완투 365회, 64⅓이닝 연속 무실점, 노히트노런 달성 등은 차라리 덤에 가깝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그에게 가장 애착을 느끼는 대기록이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퍼펙트게임”이었다. 가네다는 1957년 8월 21일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을 때 그가 느꼈을 감정이 궁금했다. 그에게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답변은 짧았다. “퍼펙트게임은 말 그대로 ‘퍼펙트’니까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완벽한 경기에 사연이 있을 리 없다. 한 명의 주자도 1루에 내보내지 않았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76년 역사의 일본 프로야구에선 이 완벽한 경기가 15번 나왔다. 1950년 6월 2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후지모토 히데오(한국명 : 이팔용)가 니시닛폰(세이부의 전신) 파이레츠전에서 달성한 게 처음이었다. 이후 14명이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 됐다. 대부분은 1980년 이전에 세워진 기록들이다. 1980년 이후 유일하게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이는 1994년 5월 18일 히로시마 도요카프전에 등판한 요미우리 투수 마키하라 히로미다.

130년 전통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완벽한 경기를 경험한 이는 많지 않다. 단, 22명이다, 1880년 리 리치몬드가 클리블랜드전에서 최초로 달성했다. 그리고서 올 시즌 맷 케인(샌프란시스코)이 달성하기까지 퍼펙트게임은 운이 타고난 투수들에게만 허락됐다.

올해로 출범 31년인 한국 프로야구는 아직 퍼펙트게임이 없다. 몇 번의 기회가 있긴 했다. 하지만, 모두 8, 9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중단됐다. 그러던 중 6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LG전은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퍼펙트게임이 기대되는 경기였다. 롯데 선발 이용훈은 8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을 펼치며 기대를 현실로 바꿔놓을 듯했다. 잠실구장에 있던 양팀 팬은 승패를 떠나 대기록에 도전하는 이용훈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용훈 역시 공 한 개를 허투루 던지지 않고, 최대한 집중했다. 하지만, 8회 1사에 터진 LG 최동수의 강습타구가 안타로 연결되며 이용훈의 퍼펙트게임 도전은 무산되고 말았다.

'17%의 사나이' 0.01% 확률에 도전하다.

이용훈의 역투 장면(사진=롯데)

박기철 SPORTS2I 전무에게 퍼펙트게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박 전무는 “한국 프로야구 경기수를 고려하면 2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대기록”라고 답했다. 한 통계학 교수는 “퍼펙트게임의 확률은 0.0001%”라고 했다. 0.0001%면 확률적으론 ‘거의 희박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용훈은 이미 0.0001%의 기적을 이룬 바 있었다. 지난해 9월 17일 한화 2군 경기에서였다. 이용훈은 27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2군에서 달성한 기록이었기에 이 대기록에 집중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2군 경기라고 해도 퍼펙트게임은 퍼펙트게임이었다. 투수의 호투와 야수의 지원, 구장 조건 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대기록이었다.

사실 이용훈은 언제나 희박한 가능성에 도전해왔다. 과거 그는 17%의 확률에 도전했다. 사연은 이렇다.

2006년 겨울 이용훈은 선수생활의 갈림길에 섰다. 어깨가 아파 도저히 공을 던질 수 없었다. 의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어깨관절경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이 수술은 맹장수술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투수 생명을 걸어야 했다. 수술 전 의사는 “팔꿈치수술은 재기확률이 80% 이상이지만, 어깨수술은 재기확률이 겨우 17%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어깨수술은 예후가 좋지 않다. 정민태, 조용준, 박명환, 손민한 등 당대 최고투수들이 어깨수술 이후 재기에 실패했다. 재활기간이 긴 것도 문제다. 1년 안에 1군 복귀가 가능한 팔꿈치수술에 비해 어깨수술은 최소 18개월 이상이 걸린다. 웬만한 인내심 없인 어깨수술 이후 재활과정을 견디기 어렵다.

장고 끝에 이용훈은 수술을 택했다. 17%의 확률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이대로 주저앉느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나중에 후회할 것 같지 않았다. 수술 이후, 그는 야구에 모든 것을 걸었다. 힘들 때마다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 더 좋은 선수가 되는 걸 유일한 목표로 삼은 이용훈은 2008년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6승을 거뒀다.

하지만, 어깨수술 이후 재기에 실패한 투수들처럼 그 역시 길고 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2009년 5승에 그친 그는 2010, 2011년 두 해 동안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2009년 이후 그의 평균자책은 늘 6점대 이상이었다. 지난해는 무려 11.25이었다.

2년 연속 무승에 그친 36살의 투수는 쓸쓸히 마운드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용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확률이 떨어졌지만, 그는 1군 선발진에 합류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길 원했다. 시즌 전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이용훈은 “지금 가장 두려운 건 실패가 아니라 내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며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원 없이 공을 던져보고 싶다”고 했다.

이용훈은 스프링캠프에서 누구보다 많이 뛰었다.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투수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걸까. 이용훈은 올 시즌 정말 원 없이 공을 던지고 있다. 6월 25일 현재 16경기에 등판해 67⅓이닝을 던졌다. 성적도 좋다. 7승2패 평균자책 2.41로, 다승 공동 4위, 평균자책 3위에 올라 있다. 2000년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이다.

1군 퍼펙트게임 달성은 놓쳤지만, 이용훈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그의 꿈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꿈은 40살까지 현역에서 뛰는 거다. 그즈음이 돼야 아들이 초교에 입학하고, 그래야 아들이 아빠가 어떤 선수인지 기억할 것이라는 게 이유다. 두 번째 꿈은 한 시즌 10승 이상을 거두는 거다. 이용훈의 한 시즌 최다승은 2000년에 기록한 9승이다. 프로 13년 차지만, 아직 10승을 기록한 적이 한번도 없다. 벌써 6월에 7승이니, 두번째 꿈은 올 시즌 이룰 게 자명하다.

퍼펙트게임에 말이 필요 없듯 이용훈의 성공적인 재기에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을 믿었고,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잡으려 준비했다. 그리고 낙관론자가 됐다. 낙관론자은 내일이 낙원이지만, 비관론자들은 어제가 낙원이다. 그는 지금보다 밝은 미래를 꿈꿨고, 그 미래를 잡으려고 과거를 잊었다.

때론 결과보다 과정이 더 많은 교훈을 제공하곤 한다. 퍼펙트게임 달성엔 실패했지만, 이용훈은 우리에게 퍼펙트게임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줬다. 그의 첫 번째 꿈도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