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은 괴롭다(사진=제주도
야구박물관)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을 때다. 미국 심판이 일본 심판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리 세심하게 심판을 보느냐”고. 그러니까 일본 심판들이 판정을 정확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일본 심판은 어깨를 들썩이며 “오히려 우리는 한국 심판의 섬세함에 깜짝깜짝 놀란다”고 대답했다. 일본 심판들이 가장 놀란 건 체크스윙 판정이었다.
야간이나 돔구장 경기 시 구심은 체크스윙 판정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특히나 검은색 배트는 구심들에겐 경계 대상이다. 조명탑 불빛이 검은색 배트에 반사돼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심은 배트가 어디까지 돌아갔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 심판들은 정확히 체크 스윙을 판정했다.
미·일 심판 가운데 선수 출신은 드물다. 있다손 쳐도 아마추어 야구선수 출신이다. 대부분은 심판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비(非)프로 출신들이다. 반면 한국 심판은 프로 출신이 대다수다. 그래서일까. 한국 심판들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수에도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심 논란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한국 심판이다. 심판들은 말한다. “우리처럼 욕 많이 먹는 직업도 없을 것”이라고.
자, 여기서 진지하게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오심은 경기의 일부분인가’하는 것이다.
대답은 입장에 따라 다르리라. 코칭스태프와 선수는 “오심은 심판의 명백한 실수”라고 말할 테고, 심판은 “인간의 눈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대체로 프로야구는 후자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야구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작전과 기술이 등장하며 오심 논쟁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특히나 TV 중계기술이 발전하며 오심은 더는 ‘은밀한 실수’가 아니라 ‘공개적 비난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심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야구전문가들은 ‘오심을 줄이려면 심판원의 실력향상도 우선이지만, 시스템의 보완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 한계 인정’에서 ‘인간 한계 극복’으로 변화하는 세계 스포츠계 짐 조이스의 '세기의 오심'
장면
2010년 6월 2일. 메이저리그(MLB)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가 열렸다. 그날 디트로이트 투수 아만도 갈라라가는 9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펼쳤다. 하지만, 27번째 타자와의 승부에서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대기록 달성에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육안으로도 완벽한 아웃이었다. 그러나 1루심 짐 조이스는 세이프를 선언했다. 디트로이트가 조이스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번복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서 뒤늦게 조이스는 “내가 젊은이의 퍼펙트게임을 망쳤다”며 자책했다. 오심을 인정한 거다. 조이스는 눈물로 갈라라가에게 공개 사과했다. 갈라가가는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Nobody's perfect)”는 말로 조이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두루뭉술 해프닝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미국 야구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어떻게 하면 오심을 줄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놓은 안이 ‘인스턴트 리플레이 제도(비디오 판독제)’의 확대였다.
MLB가 인스턴트 리플레이 제도’를 처음 시도한 건 2008년이었다. MLB 사무국은 ‘기계가 경기에 개입하면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심판노조의 반대에도 비디오 판독 제도를 강행했다. 더는 오심을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은 홈런 타구에 한해서만 적용키로 했다. 즉, 펜스 꼭대기를 맞고 나온 타구나 파울 폴 위로 넘어간 타구의 파울과 페어 여부만 리플레이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2010년 조이스 심판의 ‘세기의 오심’ 이후, 미국야구계는 ‘비디오 판독 대상 플레이를 더욱 확대하자’는 요구에 직면한다. 이번엔 심판노조도 2008년처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했다. 한 심판은 “날로 발전하는 TV 중계기술 앞에 우리는 현미경의 실험대 위에 놓인 파리신세”라며 “그러나 시대의 요구를 역행하기엔 우린 너무 많은 실수를 범했다”고 자성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MLB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노사 협약안’에서 2013년부터 리플레이 제도를 확대 운영키하기로 합의했다. 홈런 타구뿐만 아니라 강습타구 포구 여부, 라인을 중심으로 한 타구의 파울-페어 여부, 일부 팬의 수비방해를 비디오 판독 범주에 넣었다.
사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비디오 판독은 생경한 제도가 아니다. 미국의 메이저 4대 스포츠(MLB, NFL(미식축구), NBA(프로농구),
NHL(북미프로하키리그)) 가운데 MLB가 가장 늦게 비디오 판독을 수용했다. NFL 심판들이 인스턴트 리플레이 시스템을 활용해 판정을 재심하는
장면
비디오 판독을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프로스포츠는 NFL이다. NFL에선 비디오 판독 요구를 ‘챌린지(Challenge)’라고 한다. 경기 중 팀의 헤드코치는 심판 판정에 의문이 생기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수 있다. 챌린지는 패스의 성공 여부, 턴 오버(공격권 빼앗기) 등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는 플레이에 한한다. 경기 중 챌린지는 팀마다 2번 행사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챌린지를 사용하고도 판정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팀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후반 각각 3회씩 제공되는 타임아웃의 권리를 1개씩 잃는다. 작전이 생명인 NFL에서 타임아웃권 상실은 득점 무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2번의 챌린지가 모두 인정되면 추가로 1번의 챌린지를 더 행사할 수 있다. 챌린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기 승패는 물론이려니와 지도자의 능력까지 좌우되는 셈이다.
NBA도 비디오 판독에 적극적이다. NBA는 2002년부터 버저비터(경기 종료와 함께 동시에 터진 슛)와 슛동작 파울 여부 등을 경기 종료 전후, 비디오 판독을 통해 판정했다. 그 후, 적용범위를 넓혀 선수들의 악의적인 반칙과 선수들 간의 폭력 여부 등까지 비디오 판독 대상으로 삼고 있다.
비디오 판독은 프로스포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제테니스연맹은 2006년부터 ‘호크 아이(Hawk-Eye)’로 불리는 영상장치를 도입해 라인에 공이 닿았는지를 분석한다. 카메라 6대가 초당 60프레임의 속도로 볼을 관찰하는 ‘호크아이’는 공이 지면에 닿을 때의 찌그러짐까지 포착한다.
애초 골라인 판독 장치를 비롯한 각종 판정 보조 시스템의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던 국제축구연맹(FIFA)도 2006, 20101년 월드컵에서 오심이 잇따르자 골라인 판독 장치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다. 가뜩이나 2012 유럽선수권대회(유로2012)에서 우크라이나가 잉글랜드에 석연치 않은 골라인 판정으로 패배하며 골라인 판독 장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FIFA는 7월에 골라인 판독 장치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야구계에 부는 ‘인간의 한계 극복’ 바람 미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포괄적인 비디오 판독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라인에 떨어지는 타구의 안타-파울도 비디오 판독 범주에 넣자는
자세다.
오심을 ‘인간 능력의 한계’로 인정했던 세계 스포츠계는 이제 첨단 장비를 활용해 ‘인간 한계를 극복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나 팀의 승패와 개인 기록이 걸린 프로 스포츠는 판정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MLB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야구계에서도 첨단 장비 활용에 적극적이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는 2006년부터 대학 미식축구에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올해부터는 야구에서도 칼리지월드시리즈(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시범적으로 비디오 판독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일단은 MLB처럼 홈런 판정에 한하지만, 조금씩 활용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리틀야구는 이미 광범위한 범위에서 비디오 판독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리틀야구계는 2008년부터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애초는 홈런 판정과 볼 데드만 한정했으나 2010년부터는 ‘스트라이크 판정 이외의 모든 플레이’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각 팀 감독은 경기 중 심판 판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비디오 판독을 통해 2번의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리틀야구계는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이 제도를 강행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2살까지의 초등학생이 참가하는 경기인 만큼 아이들에게 룰이 얼마나 공정하게 적용되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승패를 인정하고, 경기 외적인 이유로 상처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기 질을 향상하기 위해선 인간의 한계를 보완할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판정의 권위는 실수를 인정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실수를 줄이는 데서 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8일 잠실 LG-한화전에서 9회 LG 투수 임찬규가 보크를 범하는 사이 홈스틸을 하던 정원석이 홈에서 아웃되며 LG는 6대 5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당시 심판들은 아무도 임찬규의 보크를 잡아내지 못했고, 야구팬들은 “오심이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분개했다. 경기 후 심판들은 오심을 인정했다. 그리고 9경기 출장 정지라는 초유의 징계를 받았다.
그 사건이 터지고서 일부 야구인사는 ‘홈런 여부뿐만 아니라 보크, 페어-파울, 원바운드-노바운드와 같은 애매한 상황도 비디오 판독을 통해 재확인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보크는 매우 순간적인 동작이고, 심판이 잡아내는 것만 인정되는 특이성이 있기 때문에 비디오 판독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잦은 비디오 판독이 경기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 스포츠의 기본적인 흥미를 훼손할 수 있다’ 는 신중한 견해를 밝혔다.
틀린 말도 아니다. 이닝마다 감독이 나와 심판에게 비디오 판독을 요구한다면 경기 흐름이 ‘뚝뚝’ 끊길 수 있다. 만약 심판의 판정이 비디오 판독 결과에 따라 수시로 번복된다면 판정 불신으로 경기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연출될 수 있다. 많은 심판과 야구인이 비디오 판독 도입을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비디오 판독이 심판 권위를 회복하고, 경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란 지적도 있다. 특히나 심판 판정이 자팀에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믿는 일부 구단의 피해의식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란 예상이 많다.
모 심판은 “한번 오심한 심판은 그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가 되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라며 “오심을 줄일 첨단 장비 도입은 심판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심판은 “스트라이크-볼과 세이프-아웃, 보크를 제외한 기타 플레이는 비디오 판독 대상이 돼도 무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경기 중 몇 번이나 이의 신청이 가능하고, 이의 신청이 무산됐을 때 어떤 페널티를 줄지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첨단 장비가 도입돼도 오심은 발생할지 모른다. 또한 모든 플레이를 비디오 판독으로 재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본 3시간이 훌쩍 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잦은 재심 요구는 경기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일 수 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심판 능력이 떨어지는 한, 비디오 판독은 액세서리로 전락하기 ‘딱’ 좋다.
일본의 예에서 살펴본 오심 방지를 위한 대안들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의 전경. 교세라돔은 천장에 타구가 맞으면
파울이 아니라 인플레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본 프로야구도 오심으로 몸살을 앓는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오심 논란은 더하다. 일본야구계는 세 가지로 원인을 분석한다. 먼저 비선수 출신 심판의 증가다. 1990년대 이전까지 일본야구계엔 프로 출신 심판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열악한 처우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옷을 벗었다. 그 공백을 메운 게 아마추어 심판들이었다.
프로에 스카우트된 아마추어 심판들은 그러나 ‘프로선수 경력이 일천하고, 아마추어에서 왔다’는 이유로 현장 지도자들과 선수들에게 홀대받기 일쑤였다. 일본은 2004년 이후부터는 심판 아카데미를 통해 심판원을 양성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선수 출신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가운데 몇몇 심판은 가장 기본적인 위치 선정은 고사하고 야구규칙과 대회요강을 외우지 못해 망신을 당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젊은 심판이 돔구장인 교세라돔 천장에 맞은 타구를 ‘파울’로 선언한 것이었다.
교세라돔의 경우 천장에 맞으면 인플레이로 인정하나, 경험 미숙의 젊은 심판은 그걸 알지 못했다. 그는 파울로 판정했고, ‘이것이 일본 심판진의 현주소’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크고 작은 오심이 겹치며 ‘심판이 곧 룰북’이라 믿었던 일본야구계와 팬들은 조금씩 심판에 불신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6심제의 폐지다. 과거 일본은 포스트 시즌을 제외한 정규경기에서도 6심제를 택했다. 구심·1·2·3심과 함께 1, 3루에 각각 한 명씩 선심을 뒀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 파울라인의 페어-파울 여부, 홈런-파울 여부를 둘러싼 판정 논란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야구기구(NPB)가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 선심 2명을 제외한 4명으로 심판진을 축소 운영하면서 논란이 증가했다.
세 번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제외한 11개 구단의 피해의식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요미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했다. 요미우리가 곧 일본 프로야구였고, 일본 프로야구는 곧 요미우리를 뜻했다. 원체 인기가 높고, 리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심판진도 은연중 혹은 의식적으로 요미우리 편을 들곤 했다. 오심 논란에 휩싸였던 경기 가운데 유독 요미우리전이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요미우리와 상대하는 구단은 오심 의혹이 생길 때마다 “심판들이 노골적으로 요미우리 편을 든다”며 항의했고, 이런 일이 많아지면서 팬들도 자연스럽게 ‘심판=요미우리 편’이란 등식에 익숙해졌다.
오심의
원인을 파악한 일본야구계는 곧바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우선 심판진 처우 개선에 힘썼다. 지난해 2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일본 심판들을 취재했을
때 그들은 “NPB가 저연봉에 시달리던 심판 연봉을 꾸준히 올리고, 출전수당도 현실화해줬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1군 심판의 평균 연봉이 1천만
엔(약 1억4천400만 원)까지 올랐다. 현재 NPB 베테랑 심판의 연봉은 2천만 엔에 가깝다. 출전 수당 역시 현재 구심은 3만5천 엔(약
50만 원), 누심은 2만4천 엔을 받고 있다. 여기다 용품비와 출장비까지 합치면 심판들은 그야말로 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 심판은 세이프, 다른 심판은 아웃을 선언하는
장면. 일본 프로야구엔 이런 장면이 꽤 많다
심판진의 승강제도 시행했다. 대개 일본 초짜 심판들은 2군에서 3, 4년 경험을 쌓은 뒤 1군으로 승격한다. 풀타임 1군 심판이 되려면 2, 3년이 더 걸린다. 하지만, 붙박이 1군 심판이 됐다고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한 시즌을 점검해 오심을 비롯해 문제가 많다고 인정되면 다음 해 2군으로 떨어질 수 있다. 대신 2군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심판 경력이 짧아도 1군 승격이 가능하다. 1, 2군 심판이 실력에 따라 자리를 맞바꾸는 ‘심판 승강제’는 심판들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큰 효과를 낸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NPB는 6심제 부활은 아직까지 난색을 나타낸다. 리그 운영비(인건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대신 절충안으로 내놓은 게 홈런 타구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었다. NPB는 2010년부터 홈런 여부에 한해 비디오 판독을 하고 있다. 일본야구계는 “어차피 선심은 라인에 떨어지는 안타-파울 여부와 홈런-파울 여부를 확인할 때만 필요하다. 아슬아슬한 타구는 대부분 외야와 내야 사이에 떨어져 1, 3루심이 판정 가능하고, 홈런 여부는 비디오 판독이 더 정확하다”며 굳이 6심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좀체 회복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여전히 많은 구단과 팬들은 “심판들이 거대 구단에 유리하게 판정한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오심 논란을 줄이기 위한 대안들 한국 심판들은 스프링캠프마다 8개 구단의 전지훈련에 동참한다. 심판
능력 유지 보수차원이다. 팀도 실전감각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심판들의 전지훈련 차원을 원한다. 한국 심판은 비시즌 기간에도 선수들처럼 타지에서
생활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한국야구는 어떨까. 여전히 심판들의 처우는 낮다. 선수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그들이지만, 연봉은 일본 심판들의 실질연봉과 비교해 절반도 되지 않는다. 많게는 4배 차이다. 출전수당은 있지도 않다. 메이저리그 심판들처럼 특급호텔에 묵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2000년대까지 심판들은 여관에 묵었다. 그나마 유영구 전 KBO 총재가 “심판은 몸이 편해야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며 “앞으로 관광호텔급 이상에 묵으라”고 지시해 2, 3년 전부터 관광호텔급 숙박비가 나온다. 하지만, 지방 관광호텔은 구장과 ‘뚝’ 떨어진 곳이 많고, 시설도 좋지 않아 여전히 장급 여관을 이용하는 일이 많다.
경기수도 많다. 한국 심판들은 한 시즌 80경기 정도를 소화한다. 1군 경기만 그렇다. 전반기 2주, 후반기 2주씩은 2군 경기에 참가한다. 1, 2군을 합치면 한 시즌 100경기 정도 그라운드에 서는 셈이다. 직접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 날에도 대기심으로 참가한다. 그렇게 따지면 1군 심판은 월요일을 제외하면 휴식일이 없다. 한 시즌 144경기 가운데 100경기에 참가하는 일본 심판과 비교해 근무일수가 훨씬 많다. 노동강도도 한국 심판이 훨씬 센 편이다.
KBO 심판들은 미국과 일본 심판과 달리 노조도 없다. MLB 심판노조는 강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9년 57명의 심판이 해고된 가운데서도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 이후 MLB 심판들의 처우는 꾸준히 개선됐다. MLB 심판노조는 MLB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합의한 ‘비디오 판독 확대’ 방침에 ‘심판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응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심판의 고유 영역을 일부 양보하되, 받아낼 건 받아내겠다는 뜻이다.
일본프로야구 심판노조는 1990년 결성됐다. 당시 퍼시픽리그 심판들은 롯데 오리온스(지바롯데 마린스의 전신) 가네다 마사이치 감독이 심판을 폭행하자 ‘심판 경시풍조에 대항하려면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며 노조를 창립했다. 현재 일본프로야구 심판노조는 일본 서비스·유통 연합(JSD)연대 노조에 지부로 등록돼 있다.
미·일 심판노조는 해마다 MLB 사무국, NPB와 협상을 벌이며 심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만난 일본 퍼시픽리그 심판은 “일·미 심판들의 연합체가 단순 협회가 아닌 노조이기에 두 나라 사무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고, 정치적으로도 독립돼 외부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한국 심판들도 노조가 결성되면 혹시 있을지 모를 ‘특정구단에 유리한 판정을 하라’는 지시나 보이지 않는 압력에 결연히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노조 설립이 ‘협회와 특정구단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조직’이란 오명에서 탈피해 야구팬들에게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낮은 처우와 열악한 환경이 개선된다면 오심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이냐와 어떻게 하면 오심을 줄일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선 “오심 발생 시 강력하게 벌금을 물리거나 출장정지를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일본에선 그렇게 해왔다. 오심한 심판에게 출장정지와 벌금, 감봉 처분 등을 내렸다.
하지만, MLB에선 ‘세기의 오심’을 범한 조이스 심판에게조차 벌금 혹은 출장정지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이유는 뭘까. MLB 심판노조는 ‘선수가 실책한다고 그때마다 벌금을 내진 않는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니까 그 순간 책임을 묻기보다 한 시즌을 치르고서 연봉협상 때 실책수를 반영하듯 심판들의 오심도 차곡차곡 쌓아 시즌이 끝나고서 근무평가 자료로 삼는 게 온당하다는 뜻이다. MLB 심판노조는 ‘사안마다 징계를 내리면 심판들이 이후 경기에서 크게 위축되고, 자신없는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그것은 모두의 불행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경기마다 오심에 대한 벌금을 물리고, 출장정지처분을 내리는 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야구관계자들은 “심판 승강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심판 판정 하나에 선수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기에 심판들은 경기마다
집중력을 유지하려 노력한다(사진=삼성)
지난해까지 KBO는 경기마다 경기감독관이 매긴 심판 평가서와 심판위원장이 작성한 고과 점수를 토대로 다음 시즌 연봉을 산정했다. 근무 평점이 낮으면 연봉이 깎일 순 있어도, 2군으로 좌천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심판 승강제를 활용하면 유능한 심판을 1군으로 불러들이고,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심판은 2군에서 재충전할 수 있다.
비디오 판독 확대도 진지하게 논의할 시기가 됐다. ‘스트라이크-볼, 세이프-아웃’을 제외한 비디오 판독 확대 여부를 MLB처럼 진지하게 고민하면 좋을 것이다. 6심제는 일본처럼 한국 역시 도입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분위기다.
어찌 됐건 야구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 심판도 변화하는 세상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심판 권위의 회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다양한 오심 보완책을 강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심판 권위 추락, 전 세대 심판과 야구인들의 책임도 크다. KBO 심판진은 시즌이 끝나면 야구발전을 위해 앞장선다. 사진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KBO 이민호 심판이 제주도 서귀포에 내려가 사회인 야구심판을 지도하는 장면(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역대 최고의 판관’으로 불리는 이규석 전 KBO 심판은 감독들이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항의하면 “내가 곧 야구규칙”이라는 말로 항의를 묵살했다. 선수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터트리면 “스트라이크와 볼은 내가 판단한다”며 다시 타석에 들어설 것으로 종용했다. 언뜻 권위적으로 보이지만, 이 전 심판이 그라운드에 있을 때 항의는 다른 심판에 비해 훨씬 적었다. 항의자가 납득하는 정도도 다른 심판과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이유는 뭘까.
이 전 심판의 권위를 모두가 존중했고, 이 전 심판 스스로 권위를 존중받기 위해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오심 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오심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쪽은 ‘판정의 부정확성’보다는 ‘판정의 불공정성’을 문제삼는다. 현장 지도자와 선수들도 심판이 언제든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임을 잘 안다. 그래서 기계처럼 100%처럼 정확한 판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판정이 늘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공정하길 바란다.
사실 야구규칙엔 ‘오심’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면 스트라이크고, ‘세이프’를 선언하면 세이프다. 심판은 판정의 최종 판단 주체로서 초창기 야구서부터 ‘심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왜냐? 그만큼 야구는 사람이 하는 스포츠이고, 100% 정확하지 않기에 누군가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해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야구 심판은 ‘정확성’보다는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양팀을 동일하게 판정하는 공정성과 일관성을 화두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서부터 오랫동안 공정성에서 의심을 받아왔다. 일부 심판이 특정구단에 유리하게 판정했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다. 퇴역한 모 심판은 “누군가의 지시로 어느 팀에 유리한 판정을 한 게 사실”이라며 참회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역사적으로 누적되고, 오해들이 가중되면서 여전히 한국 심판은 제업무를 충실히 하면서도 구단들의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 시즌엔 모 구단이 KBO에 ‘심판들의 불공정한 스트라이크 존 판정 때문에 우리 팀이 많은 손해를 본다’며 ‘이를 개선하지 않을 시 구단이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항의 공문을 보냈다. 이 구단이 어느 정도 불공정한 스트라이크 존으로 불이익을 당했는지 알 길은 없다. 현장 심판들은 “여느 구단과 똑같이 판정했다”고 하소연하지만, 이 구단의 입장은 다르다. 이 역시 프로야구 출범 이후 면면히 흘러내려 온 불신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현
심판진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선배 심판들이 만들어놓은 덫이라고 해도 그 덫을 방치해선 안 된다.
분연히 일어나 덫을 치우고,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판정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심판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항의를 가장 하지
않는 감독'으로 꼽힌다. 그래서일까. 심판들은 삼성전 때 더 집중해 자신있게 판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사진=삼성)
정당한 심판 권위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야구인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모 베테랑 심판은 “감독의 항의 가운데 7할은 야구규칙을 모르거나 상황을 자세히 보지 못한데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심판들은 “일부 야구해설자들도 마찬가지”라며 “야구규칙만 제대로 숙지해도 ‘이건 아닌데요.’ 혹은 ‘저 판정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야구팬을 현혹하는 해설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해낸다.
야구규칙에 따르면 감독을 제외한 코치는 항의를 할 수 없다. MLB에서 코치가 나서 심판에게 세이프-아웃 여부를 따진다면 당장 퇴장감이다. 아니 야구계에서 ‘야구의 기본도 모른다’는 질책을 받을 게 자명하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항의 먼저 하기 바쁘다. 아무리 판정의 부정확성을 바로 잡기 위한 항의라도 룰을 어긴 항의는 그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항의를 선수단의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다. 모 감독은 장시간의 항의를 마치고서 “침체한 팀 분위기를 되살리고, 심판 판정을 우리 쪽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항의했다”고 털어놨다. 항의할 사안도 아닌 일로 경기는 엿가락처럼 늘어졌고, 심판진은 난감해했으며, 영문을 모르는 홈팬들은 심판진을 욕하기 바빴다. 하지만, 얻은 건 없었다.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상대 팀 감독이 “항의가 끝나자마자 보상 판정이 줄을 이었다”며 불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판정 항의가 팀 분위기를 되살리고, 보상 판정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때 그 나라 야구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확하고 공정한 판정만큼 중요한 건 정당한 판정을 존중하려는 자세다. 과연 야구인들이 얼마나 심판 판정을 존중하고, 경기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 묻고 싶다.
심판들도 경기 흐름을 방해하고, 자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이끌려고 시도하는 무리한 항의와 심판을 위해하는 행위에 대해선 MLB처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여론의 눈치를 보기보단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당당하게 대처하는 게 심판의 정당한 권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와 함께 중대한 오심이 발생해 경기 승패에 막대한 영향을 줬을 경우 역시 MLB처럼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도 좋을지 싶다. 야구가 인간이 하는 스포츠이고,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면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도 야구다운 자세가 아닐까.
그렇다.
심판도 사람이다. 심판에게 ‘오심하지 마라’고 요구하는 건 야수에게 ‘절대 실책하지 마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단한
훈련으로 실책을 최소화할 수 있듯 야구계가 머릴 맞댄다면 오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KBO 역대 최고의 심판으로 꼽히는 이규석 전 KBO 심판. 액자에
걸려진 사진은 이 전 심판의 판정 장면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하지만, 이 전 심판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속의 장면은 오심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이 전 심판은 "내가 출장한 2천경기 가운데 오심이 없던 경기는 한 경기도 없었다"며 "심판 생활은 오심을 줄이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고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마지막으로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어느 신인선수가 데뷔 첫 타석에 들어섰을 때다. 구심이 “네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타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000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구심은 “그래, 데뷔 첫 타석이니까 잘 치라”고 덕담을 들려줬다. 하지만, 2구까지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을 건들지도 못했다. 3구째도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들어왔다. 그러나 구심은 손을 들지 않았다.
포수가 “아니 이게 스트라이크가 아니에요?”하며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그러자 구심은 “야, 너 데뷔 첫 타석 때도 빡빡하게 안봤어. 점수 차도 큰데 그냥 넘어가”하고 웃었다. 포수는 “아, 그러네요”하며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4구째는 어쩔 수 없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스트라이크였다. 타자는 삼진 아웃.
타석을 힘없이 물러나는 신인 타자를 심판이 불러세웠다. 그리고선 포수에게 공을 넘겨받아 그 공을 타자에게 줬다.
“데뷔 첫 안타 공만 중요한 게 아니야. 힘들 때마다 이 공을 봐. 오늘 보니까 타격자세가 참 좋더라. 용기 잃지 말고, 알았지?”
이 신인선수는 훗날 타율 3할 타자로 성장했다. 당시 심판의 이름은 이규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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