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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축구

아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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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카사노(오른쪽). 포즈난(폴란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안토니오 카사노(30·AC밀란)는 '축구 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기량에는 이견이 없다. 이탈리아 남부 바리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축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15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시작으로 각급 연령별 대표로 활약했다. 그러나 '악동'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갖가지 기행을 펼치기로 유명하다. 취미가 골을 넣으면 유니폼 하의를 치켜 들어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와의 유로2008 조별예선에선 승리한 뒤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활보하는 엽기적인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복잡한 여성 관계는 기본이다. 게다가 무면허 운전까지 일삼았다. '악동' 이미지를 얻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감독과의 불화하다. 소속팀은 물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마르첼로 리피 감독과 충돌했다. 자신을 발탁하지 않은 리피 감독을 향해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며 독설을 내뿜었다. 심지어 2010년 삼프도리아 시절에는 구단 회장과 다툼을 벌였다. 결국 쫓겨나듯 AC밀란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탈리아 발로텔리. 포즈난(폴란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이번 유로2012에서도 카사노의 입은 거칠었다. 특히 대표팀 내 동성애자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사과는 했지만, 이탈리아 언론은 비난을 퍼부었다. 카사노가 스페인전과 크로아티아전까지 부진하자 아일랜드전에선 디 나탈레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체사레 프란델리 이탈리아 감독은 카사노 기용에 대해 옹호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언론의 맹폭에도 불구하고 프란델리 감독은 카사노를 믿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19일 아일랜드와의 유로2012 C조 예선 최종전에 카사노를 디 나탈레와 함께 투톱으로 선발출전시켰다. '원조 악동'은 기대에 부응했다. 전반 35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코너킥을 문전으로 쇄도하며 감각적인 백헤딩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新 악동'으로는 발로텔리가 단연 1순위다. 발로텔리의 기행도 무궁무진하다. 자신의 스포츠카를 몰다 교통사고를 낸 뒤 지갑에 들어있던 현금 5000파운드의 정체를 묻는 경찰에게 "난 부자니깐"이라고 대답하는 그였다. 약과다. 유소년팀 선수에게 다트를 던져놓고 "그냥 심심해서"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 학교 건물 화장실을 이용한 뒤 교무실로 들어가 교사들과 대화를 나눈 뒤 즉석 학교 투어에 나서기도 했다. 욕실에서 불꽃놀이를 하다 집을 태울 뻔한 적도 있다. 팀 동료들과의 불화는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성의없는 플레이를 꼬집은 야야 투레와 하프타임 때 몸싸움을 벌였다. 경기 중에도 프리킥을 자신이 차겠노라며 동료들과 언쟁을 펼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맨시티 소속 선수임에도 인터밀란 기자회견에 난데없이 나타난 것도 '괴짜'임을 증명한다. 이 밖에도 포르노 배우와 호텔에서 나오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는 등 여성 관계도 문란하다.

그러나 제 멋대로인 발로텔리를 통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로베르토 만시니 맨시티 감독이다. 선수단 장악에 있어 최고로 평가받는 조제 무리뉴 감독조차 인터밀란 시절 발로텔리 통제에 실패했다. 예상과 달리 발로텔리가 만시니 감독 품에서도 기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많이 수그러든 모습이다.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사용한다. 남들이 발로텔리를 비난할 때 감싸안는다. 그러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훈련으로 매운 맛을 보여준다. 지난시즌 100% 개화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면서 맨시티가 44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조시켰다. 바통은 프란델리 감독이 이어 받았다. 역시 발로텔리에겐 믿음이 필요했다. 계속해서 그를 출전시켰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그라운드에서 반칙을 당하면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지만 자제하는 노력이 눈에 띈다. 실력으로도 인정받았다. 아일랜드전에서 후반 종료직전 환상적인 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코너킥을 문전에서 수비수를 앞에 두고 감각적인 논스톱 오버 헤드 슛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이탈리아의 8강행에 쐐기를 박는 골이었다.


(베스트 일레븐)

강호를 강호라 부르는 까닭은 객관적 전력만이 아니다. 특히 그 강함이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주리 군단은 결국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았고, '전통의 강호'이자 토너먼트의 강자다웠다.

이탈리아가 19일 새벽(이하 한국 시각) 포즈난 시립경기장에서 열린 유로 2012 C조 최종전에서 카사노와 발로텔리의 연속골에 힘입어 아일랜드를 2-0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1승 2무(승점 5)가 된 이탈리아는 1승 1무 1패(승점 4)에 머문 크로아티아를 제치고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사실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 전망이 마냥 밝지 않았다. 대진운부터 험난했다. '세계 최강' 스페인, 동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명장 트라파토니가 이끄는 아일랜드와 한 조에 묶였다. B조 못잖은 죽음의 조였다. 악재도 이어졌다. 간판 투톱 로시를 비롯해 간판급 선수들이 대회를 앞두고 줄줄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본선 직전 열린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선 충격의 0-3 대패까지 당하자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아주리에겐 저력이 있었다. 스페인과의 첫 경기를 앞두고 엄청난 변화를 단행했다. 바로 스리백으로의 전환이었다. 2년 전 프란델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이탈리아는 줄곧 4-3-1-2 전형을 구사해왔다. 그런데 본선 직전, 그것도 최강팀과의 경기를 일주일도 안 남겨둔 상태에서 전술 자체를 뒤바꾼 것이다. 다른 팀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혹은 시도했더라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DNA 깊숙이 박혀있는 '빗장수비'의 본능과 경험은 대단했다. 너무나 간단히 변화를 완성시켰다. 수비형 미드필더 데 로시가 중앙 수비수로 변신했고, 균형 잡힌 스리백과 유연한 양쪽 윙백의 움직임 속에 방패는 탄탄하기 그지없었다. 수문장 부폰은 "예전만 못하다"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견고했다. '커맨더' 피를로의 진두지휘 아래 공수 밸런스도 훌륭했다. 비교적 공격의 날카로움이 부족했지만 결정적 순간엔 꼭 한 방을 터뜨렸다.

덕분에 스페인과 크로아티아의 맞대결에서 각각 1-1 무승부라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일궈냈다. 이어진 아일랜드와의 최종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만약 스페인-크로아티아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다면 세 골 차 혹은 3-1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다. 산술적 계산을 떠나 이런 압박감이 주어질 경우 경기를 잘 풀어가기가 쉽지 않다. 상대 아일랜드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2전 전패를 당했지만 수비가 좋은 팀이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고자 득달같이 달려들게 분명했다. 쉽지 않은 경기였다.

난관을 극복한 힘은 또 한 번의 변화였다. 앞선 두 팀을 상대로 스리백을 사용했지만, 이날은 센터백 바르잘리의 부상 복귀와 함께 포백으로 회귀했다. 단단함은 유지하면서 좀 더 공격적 포메이션을 구축됐다. 앞선 두 경기 부진했고, 미세한 부상까지 입었던 발로텔리를 대신해 디 나탈레가 선발로 나섰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승리했다. 경기 내내 아일랜드를 압도했다. 선제골도 그들의 몫이었다. 전반 35분 피를로의 코너킥을 문전에서 카사노가 헤딩으로 연결하며 골을 터뜨렸다. 골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던 공이 다시 튀어나왔으나 주심은 골라인을 넘었다고 인정했다. 후반 막판에는 상대 미드필더 휠란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까지 점했고, 종료 직전에는 교체 투입된 발로텔리가 기막힌 발리 슈팅으로 추가골을 뽑아냈다. 2-0 완승이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를 제치고 극적으로 8강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아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토너먼트의 강자답게 대회가 진행될수록 경기력은 향상되고 있다. 우승까지 남은 경기는 세 경기. 이탈리아는 유럽 유일의 월드컵 4회 우승팀이지만 유로에서는 단 한번, 그것도 44년 전에 기록했다. 물론 최강의 전력은 아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늘 최강이 아닐 때에도 우승했고, 그렇게 스스로 강자가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저력은 이제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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