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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부산 대통령’ 이대호, ‘오사카의 거인’ 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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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펄로스 4번 타자 이대호(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대호(30)의 별명은 ‘부산 대통령’이다. 롯데에서 뛸 때 그렇게 불렀다. “부산에선 이대호가 대통령보다 인기가 높다”는 게 이유였다. “이대호가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부산 어디서나 최고 득표율로 당선될 것”이란 농담도 마냥 농담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 시즌 이대호는 더는 부산 대통령이 아니다. 올 시즌부터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그의 인기는 부산 못지않다. 오릭스의 연고지인 오사카 야구팬들은 이대호를 가리켜 ‘오사카의 거인’이라고 부른다.

‘오사카의 거인’ 이대호

교세라돔 대형 용품 판매점 중앙에 전시된 이대호 상품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은 오릭스의 홈구장이다. 구장 1층엔 대형 용품 판매점이 있다. 주로 오릭스 야구용품을 판매한다. 오릭스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부터 점퍼, 양말, 모자, 글러브, 사인구 등 다양한 상품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이대호의 등번호가 새겨진 티셔츠는 가장 인기가 좋다.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판매장 중앙에 아예 이대호 티셔츠를 전시해놨다.

오릭스 구단 관계자는 “4월까진 판매량이 적었으나, 5월 중순부터 날개 돋친 듯 팔린다”며 “이대호 선수에게도 짭짤한 과외수입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은 선수 등번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팔면 구단이 모든 수입을 독차지한다. 선수의 초상사용권을 구단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니다. 선수의 이름, 얼굴, 등번호 등 초상사용권을 사용해 수익을 올릴 시 구단은 선수에게 4~10%의 로얄티를 지급한다.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 한신 타이거스의 외야수 가네모토 도모아키는 티셔츠 로얄티로만 해마다 10억 원 이상을 번다.

선수 인기의 척도를 티셔츠 판매로 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호는 벌써 오릭스를 대표하는 스타가 된 셈이다.

이대호의 인기는 일본야구팬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6월 초 교세라돔에서 만난 오릭스팬 히로오카 류카다 씨는 이대호를 가리켜 “오사카의 거인”이라고 했다.

“오사카 야구팬들은 연고지 팀들인 오릭스와 한신을 응원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두 팀 모두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특히나 장쾌한 한방을 쳐줄 홈런타자가 부족했다. 2010년 오릭스 T-오카다가 반짝 홈런왕이 됐을 뿐이다. 사정이 이럴 때 오사카에 이대호가 나타났다. 큰 체구와 시원한 홈런을 보면서 ‘거인’이란 느낌을 받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야구사이트에서 많은 야구팬이 이대호를 ‘오사카의 거인’으로 부른다.”

일본 야구팬들은 야구의 생리를 잘 안다. 노볼 투스트라이크에서 “홈런”을 외치지 않는다. 타자에게 부담될까 우려해서다. 그래서 “안타”를 외친다. 지난해부터 일본야구기구(NPB)가 저반발력 공인구를 사용하며 홈런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젠 거포가 나와도 “홈런”이란 응원구호를 자제한다. 그러나 오릭스 팬들은 이대호가 나오면 어떤 볼카운트에서도 “홈런, 이대호!”를 외친다. 그만큼 이대호가 한방을 쳐줄 해결사로 우뚝 선 까닭이다.

실제로 이대호는 11개의 홈런 가운데 6개를 홈구장인 교세라돔에서 기록했다. 홈구장에서의 타율도 2할9푼4리로 원정의 2할6푼6리보다 뛰어나다. 원체 홈구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선지 오사카 야구팬들은 이대호가 교세라돔에 등장하면 내국인 선수보다 더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몸쪽 공이 약점? 이대호에겐 예외다.

팀의 최고 연봉자이자 중심선수인 이대호. 그러나 배팅연습이 끝나면 항상 공을 줍는다. 그의 겸손함과 성실함 때문에 오릭스 선수들은 이대호를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 선수처럼 생각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본야구계는 이대호의 성공 비결을 적극적인 승부와 능숙한 몸쪽 공략으로 꼽는다. 사실 이대호는 시즌 초반만 해도 좀체 초구를 공략하지 않았다. 그러나 롯데 시절 이대호는 초구부터 배트가 나오는 공격적인 타자였다. 이대호는 “일본투수들을 연구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며 “4월 말부터 초구나 스트라이크 비슷하게 공이 들어오면 무조건 배트를 돌렸다”고 털어놨다.

신중했던 이대호가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자 일본투수들은 궁지에 몰렸다. 일단 수싸움에서 이대호에게 지기 시작했다. 원체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을 던지면 이대호의 배트는 돌아가지 않았다. 반면 스트라이크 비슷한 공을 던지면 이대호의 벼락같은 스윙에 난타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대호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다 한방을 허용한 투수들이 늘어나며 초구 볼이 많아졌다. 당연히 볼카운트 싸움에서 이대호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약점이었던 몸쪽 공도 5월 이후 더는 약점이 아니다. 이대호는 몸쪽 높은 공을 억지로 치지 않는다. 커트, 커트하며 되레 투수를 괴롭혔다. 볼이다 싶으면 아예 배트를 가만히 들고 서 있는다. 대부분의 몸쪽 공이 볼로 연결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일본 투수들도 이점을 간파해 역으로 몸쪽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던지지만, 이대호는 그 공만은 놓치지 않고 스윙한다.

오릭스 오가와 호리후미 타격코치는 “외국인 타자들은 일본투수들의 몸쪽 공에 약점을 드러낸다. 이대호도 초반엔 그랬다. 하지만, 영리하게 약점에 대처했다. 지금은 오릭스 타자 가운데 가장 몸쪽에 강한 타자가 됐다”며 이대호를 칭찬하고서 “이제 일본 투수들은 이대호의 새로운 약점을 찾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대호가 뚫고 나가야 할 난관들과 호재들

교세라돔 내부(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6월 16일 현재 이대호는 타율 2할8푼5리, 11홈런, 36타점을 기록 중이다. 도루를 제외한 각종 타격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이대호는 타율 2할8푼, 20홈런, 80타점 이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데뷔 첫해 성적치곤 매우 고무적인 내용이다. 시즌을 치를수록 일본야구에 빠르게 적응하기에 미래는 더 밝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먼저 체력이다. 일본 구단들은 원정 이동 시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1군엔 아예 구단 버스 자체가 없다. 2군만 있다. 대신 1군은 주로 비행기와 고속철도 ‘신칸센’을 이용한다. 이동 시간도 아침이다. 아침에 개별적으로 공항이나 역에 도착해 선수단이 함께 이동한다. 따라서 아침 이동 후, 곧바로 오후에 경기를 치른다. 이에 반해 한국은 주로 밤에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다. 선수들은 이동할 동안 버스에서 수면을 취하고서, 호텔에 도착하면 다시 잠을 청한다. 상쾌한 몸으로 일어나 오후 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야쿠르트 임창용은 “한국선수들이 일본 진출 첫해 가장 고생하는 게 바로 아침 이동”이라며 “아무리 국내선이라고 해도, 비행기에서 내려 운동장에 도착한 뒤 곧바로 경기를 치르는 건 체력적으로 몹시 피곤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임창용은 “한창 무더운 여름에 아침 이동을 자주 하다보면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이대호가 여름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임창용은 이대호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본다.

두 번째는 오카다 감독의 운명이다. 오카다 감독은 올 시즌이 계약 마지막 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계약 마지막 해엔 감독의 무리수가 속출한다. 승리를 위해 선수들이 부상에 신음하고, 체력이 바닥나도 기용을 강행한다. 게다가 조금만 부진하면 새로운 선수로 대체해 성적을 올리려고 한다. 이대호가 부상 혹은 슬럼프에 빠질 시 오카다 감독이 무리하게 기용하거나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릭스는 올 시즌도 변함없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23승 2무 32패로 꼴찌다. 오카다 감독의 조급증이 조금씩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하위권의 팀 성적이 이대호 개인에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2006년 이승엽이 좋은 예다. 당시 요미우리는 팀 성적이 형편없었다. 타선도 물방망이였다. 그러다 보니 상대투수들은 집중해 요미우리를 견제하지 않았다. 이승엽과도 자주 정면승부를 펼쳤다. 그해 이승엽은 일본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있다. 분명한 건 이대호가 한국선수들의 실패 사례를 그대로 따를 것 같진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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