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관련/프로야구

임창용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SMALL


야쿠르트 스왈로스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 임창용(36)이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임창용은 “지금은 또 다른 동기부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2008년 일본 무대를 밟았을 때처럼 올 시즌이 끝나면 더 큰 무대를 향해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창용은 “돈과 명예는 도전의 고려사항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한국에서 뛸 때부터 임창용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돈과 명예는 후순위였다. 그렇다면 임창용이 언급한 ‘또 다른 도전의 무대’는 어디일까. <스포츠춘추>와 일본에서 만난 임창용은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최고 연봉자, 임창용

임창용의 호투 장면

임창용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7시즌이 끝나고서 임의탈퇴신분으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할 때도 그는 두려움 대신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래서 일본 진출 선언 시 “1천만 엔을 받더라도 반드시 일본에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실제로 야쿠르트가 외국인 선수 최저연봉에 해당하는 30만 달러(당시 3억 5천만 원)를 제시하자 임창용은 두말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당시는 특별한 보직도 부여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즈음 야구계에선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헐값에 일본에 팔려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임창용은 동요하지 않았다. 되레 ‘당장의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헐값이라도 일본에서 맹활약한다면 머지않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 믿었다. 결국, 그의 믿음이 맞았다.

일본 진출 5년 만에 임창용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섰다. 4년간 통산 229경기에서 11승13패 128세이브 평균자책 2.15를 기록했다. 지난해도 32세이브로 야쿠르트의 뒷문을 굳건히 지켰다. 달라진 위상은 몸값이 대변한다. 올 시즌 임창용의 연봉은 3억6천만 엔이다. 알려진 것만 그렇다. 우리 돈으로 54억 원이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연봉 순위 6위다. 투수 중에선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후지카와 규지(한신)에 이어 3위다.

외국인 선수 가운덴 최고 몸값이다. 특히나 임창용은 연봉을 엔화로 받는다. 요즘처럼 엔화가 폭등하면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내년에도 연봉은 기본 3억 엔 이상이 보장된다. 한마디로 임창용은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슈퍼스타인 것이다.

 ‘야쿠르트의 수호신’ 임창용의 변화한 입지

경기 전, 야쿠르트 임창용(사진 가운데)과 담소를 나누는 이대호(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6월 5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선 오릭스 버펄로스와 야쿠르트의 교류전이 열릴 예정이었다. 오릭스 4번 타자 이대호와 야쿠르트 임창용의 첫 맞대결이 예상되는 터라, 많은 일본 취재진이 두 선수 주변으로 모였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맞대결의 무게감보단 오랜만의 해후가 더 반가운 듯했다. 경기 전, 두 선수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직하게 말해 이날 두 선수를 쫓는 취재진은 이대호 쪽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게 이날 이대호는 퍼시픽리그 타자 부문 5월 MVP에 선정됐다. 반면 임창용은 5월 28일 1군에 승격하고서 아직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3경기에 등판해 3이닝을 던져 승패나 홀드, 세이브 없이 무실점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특히나 임창용은 원래 보직인 마무리가 아닌 일반 불펜요원으로 뛰고 있었다. 앞선 3경기 등판도 세이브 상황이 아니었다.

경기 전, 스트레칭을 끝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임창용에게 “오랜 만”이라고 하자 그는 “그러네요”하며 멋쩍게 웃었다. 임창용은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았다. 5월 28일 1군으로 승격하기 전까지 줄곧 2군에서 몸을 만들었다. 사실 임창용은 스프링캠프 때도 제대로 투구하지 못했다. ‘오른팔 통증’이 원인이었다. 따지고 보면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였다. 자칫 강행군했다간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임창용은 공을 던지는 대신 개인 트레이너를 구해 근육을 다시 만들고, 무너진 밸런스를 찾는 데 주력했다.

다행히 임창용의 몸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침 지난해까지 셋업맨으로 뛰던 토니 바넷이 마무리를 맡아 승승장구했다. 임창용의 부담은 줄었다. 임창용이 몸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사이, 그러나 야쿠르트는 비정상적인 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선두권을 유지하던 야쿠르트는 무려 9연패를 당했다. 바넷도 연거푸 실점하며 크게 흔들렸다.

야쿠르트 현 마무리 토니 바넷의 투구장면. 6월 6일 오릭스전에 등판한 바넷(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야쿠르트는 임창용을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오가와 준지 감독은 임창용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마무리는 여전히 바넷의 몫이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마무리 바넷의 페이스가 괜찮고, 아직 임창용의 구위가 완전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5월 30일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열린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홈경기에 임창용은 시즌 첫 등판했다. 팀이 0대 1로 뒤진 9회 초 등판한 임창용은 1이닝 동안 5명의 타자를 상대로 21개의 공을 던졌다. 임창용은 2안타를 허용하며 2사 2, 3루 위기를 맞았으나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수호신’의 복귀 무대는 성공작이었다. 그러나 야쿠르트는 0대 1로 패하며 10연패를 기록했다.

임창용은 다음날에도 등판했다. 야쿠르트가 8대 2로 크게 앞서던 8회 초 4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9회 초 2안타를 맞아 2, 3루 위기에 몰렸으나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를 끝냈다. 이날 야쿠르트는 지긋지긋한 연패를 끊었다.

임창용의 다음 등판은 6월 4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이뤄졌다. 팀이 5대 1로 앞선 9회 말 마운드에 섰다. 앞선 두 경기와 달리 이날 경기에서 임창용은 안타없이 범타로 타자들을 처리했다. 임창용의 호투를 발판삼아 야쿠르트는 10연패 뒤 3연승을 기록했다.

야쿠르트 관계자는 “시즌 2번째 등판까지 임창용의 구위가 지난해와 비교해 다소 떨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소프트뱅크전에선 속구 최고 구속이 시속 147km나 될 만큼 구위가 좋아졌다”고 평했다. 하지만, 임창용의 보직은 여전히 불펜요원이었다.

<스포츠춘추>가 현장에 있던 6월 6일 오릭스전에서도 임창용은 셋업맨으로 등판했다. 임창용은 팀이 3대 1로 앞서던 7회 2사 1, 2루에 등판했다. 동점주자가 나간 상황이라, 위기이긴 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임창용은 이런 상황을 불펜에서 지켜봤다. 그리고서 셋업맨들이 불을 끄면 9회에 등판해 아예 불씨마저 꺼버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어쩌랴. 감독이 등판을 지시하면 마운드를 밟아야 하는 게 투수의 운명인 것을.

임창용은 타자를 공 2개 만에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위기를 막았다. 문제는 다음 이닝이었다. 6월 3일 등판 이후 3일 만의 등판이라, 임창용은 8회에도 등판이 예상됐다. 마침 8회부터 오릭스 중심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설 참이었다. 이대호와의 맞대결이 유력했다. 그러나 야쿠르트 벤치는 8회부터 임창용 대신 다른 투수를 등판시켰다. 3일 만의 등판이 공 2개로 끝난 셈이었다. 이로써 두 선수의 맞대결은 물 건너 갔다. 어쨌거나 임창용이 7회 불을 끈 덕분에 야쿠르트는 오릭스를 4대 2로 이겼다.

 

6월 6일 일본 교세라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오릭스전에 7회 등판한 임창용(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다음날 교세라돔에서 일본 기자들과 만났다. 그들은 “오가와 감독이 어째서 마무리 투수로 바넷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기자는 오가와 감독의 투수기용을 이렇게 평가했다.

“바넷이 잘하지만, 타자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임창용이 크다. 지난해 바넷이 셋업맨, 임창용이 마무리를 맡으며 야쿠르트 불펜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특히나 연봉 3억6천만 엔의 임창용을 셋업맨으로 활용하고, 5천800만 엔의 바넷을 마무리로 기용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바넷이 잘 던지니까 그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해가 가지만, 5월 중순 이후 바넷도 흔들리고 있다. 오가와 감독이 생각이 있다면 조만간 임창용을 마무리로 돌리지 않을까 싶다.”

평균자책 ‘0’을 유지하던 바넷은 5월 19일 오릭스전에서 2실점 하고서 평균자책이 0.96으로 올랐다. 31일 니혼햄전에선 3실점하며 2점대로 치솟았다. 일본 기자는 6월 3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임창용이 9회 등판한 것을 두고 ‘마무리 복귀를 위한 일종의 테스트‘라고 보는 듯했다. 하지만, 임창용은 “그건 기자들 생각”이라고 대꾸했다.

“당분간은 마무리 보직을 맡긴 어려울 것 같다. 바넷이 잘 던지고 있고, 코칭스태프도 바넷이 ‘썩’ 나빠지지 않는 이상 보직 변경을 할 것 같진 않다.” 임창용은 덧붙여 “사실 4점 차로 이기던 소프트뱅크전은 내가 등판할 경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점 차 승부엔 내가 등판했다. 그렇다면 소프트뱅크전에서도 현 마무리 바넷이 나가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내가 나갔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해까지 팀의 마무리를 맡던 투수라면 누구나 구단에 서운함을 느낄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에서 뛰기 시작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53경기 이상에 등판했다. 지난해는 최다인 65경기에 등판했다. 32세이브를 기록했으나, 홀드 포인트도 8개나 됐다. 세이브 상황이 아닌 경기에서도 등판을 강행했다는 뜻이다.

임창용과 다시 만난 건 이틀 후인 6월 8일이었다. 이날 야쿠르트는 홈구장인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지바롯데 마린스와의 교류전을 치렀다. 야쿠르트는 경기 초반부터 지바롯데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7회까지 13대 4로 지바롯데를 압도했다. 9점 차였기에 임창용의 등판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임창용은 8회 등판했다. 임창용은 두 타자를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하고서 마지막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6월 8일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열린 지바롯데전에 8회 등판한 임창용. 이날 임창용은 시속 151km의 강속구를 뿌리며 1군 복귀 이후 가장 좋은 구위를 선보였다(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세이브 상황은 고사하고, 9점 차 승부에 등판한 임창용. 기자 옆에 있던 야쿠르트 담당의 일본 기자는 임창용이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시속 151km의 강속구를 던진 것에 대해 “오가와 감독을 향한 분노”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이 기자는 “오가와 감독과 임창용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는 것같다”고 귀띔했다.

역대 일본진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임창용의 재평가가 필요하다.

 

임창용은 외국인 선수지만, 외국인 선수의 특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되레 내국인 선수보다 더 노력하고, 팀워크를 중시한다.

“분노요? 갈등이요? 그런 건 없어요. (임)창용이는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에요.”

임창용의 에이전트사 <아이언스> 박유현 대표는 양손을 흔들었다. 박 대표는 “바넷이 잘 던지고, (임)창용이가 1군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펜요원으로 뛰는 것뿐”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창용이가 외국인 선수이긴 하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외국인 선수’라는 점을 부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다른 일본 선수들처럼 묵묵히 코칭스태프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야구 관계자들도 임창용을 “유리하면 외국인 선수의 특권을 내세우고, 불리하면 ‘용병’이라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여느 외국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수”라고 평한다.

팀에서도 임창용을 외국인 선수로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임창용이 외국인 선수의 특권을 누리지 않는데다 동료 선수와 매우 살갑게 지내기 때문이다. 야쿠르트 선수들은 휴일이면 임창용과 어울려 맛집에 가는 걸 크나큰 즐거움으로 여긴다. 시쳇말로 임창용은 야쿠르트 젊은 선수들에겐 롤모델이자 ‘큰형님’이다. 임창용도 야쿠르트 팀 분위기가 좋아 후한 몸값을 제시한 요미우리의 구애를 뿌리치고 스왈로스 유니폼을 계속 입고 있다.

삼성에 있을 때도 임창용은 ‘큰형님’이었다. 지금도 많은 삼성 선수가 임창용을 따른다. 삼성 선수들은 임창용을 가리켜 “진짜 남자”라며 “선후배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임창용의 야쿠르트 사랑을 팬들도 잘 안다. 야쿠르트 팬들은 임창용을 “제비군단의 수호신”이라고 부른다. 다른 팀 팬들도 임창용은 인정한다. 몇년 사이 일본 진출 한국 선수들이 부진하며 일본 야구계에서 한국 선수들을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로 평가하지만, 임창용은 예외다. 아니 임창용은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가운데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기록만 봐도 그렇다.

임창용은 역대 외국인 투수 가운데 통산 세이브 부문 2위에 올라있다. 1위는 통산 177세이브를 기록한 전 요미우리 외국인 투수 마크 그룬이다. 128세이브의 임창용과 49세이브 차다. 그러나 그룬은 일본에서 6년간 뛰었다. 시즌 평균 32세이브를 기록한 임창용이 2년만 뛰면 능히 넘을 수 있는 기록이다. 게다가 그룬은 6시즌 동안 30세이브 이상을 2번 기록했다. 임창용은 2009년을 빼고 3번이나 된다. 참고로 선동열(현 KIA  감독)은 4년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며 98세이브를 기록해 역대 외국인 투수 세이브 부문 7위에 올라있다.

통산 200이닝 이상 투구한 외국인 투수의 통산 평균자책에서도 임창용은 2.15로 3위에 랭크돼 있다. 이닝당출루허용수(WHIP)은 1.03으로 1.00의 크룬에 이어 2위다. 9이닝당 탈삼진수도 8.92개로 역대 5위이며, '수비로부터 독립한 투구 기록(DIPSㆍDefense Independent Pitching Statistics)'은 2.96으로 4위다. 역대 NPB(일본야구기구) 최고의 외국인 마무리 투수로 임창용을 꼽아도 손색 없는 기록들이다. 2010시즌 종료와 함께 야쿠르트가 3년간 15억 엔(당시 환율 223억원)을 제시하며 임창용을 붙잡은 것도 그가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대단한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는 임창용이지만, 그러나 국내야구계의 관심도는 다른 선수에 비해 높지 않았다. 이승엽(현 삼성), 김태균, 박찬호(이하 현 한화) 등과 비교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좋은 예가 있다.

지난해 NPB 올스타전에 임창용은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했다. 2009년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올스타 팬투표 1위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던 임창용은 3년 연속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다. NPB도 한국기자들의 취재를 대비해 별도의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올스타전을 취재한 한국기자는 보이지 않았다. NPB가 마련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임창용은 외롭게 올스타전 무대를 밟아야 했다.

일본에서 거둔 기록과 그가 흘린 땀방울에 주목한다면 임창용이 이처럼 무관심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었다. 특히나 임창용은 외국인 최저 연봉을 받고서 일본에 진출해, 3년 만에 최고 몸값 선수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일본 데뷔 첫해부터 지금껏 부상을 제외하곤 4년 이상 붙박이 1군 무대에서만 뛴 유일한 한국선수다.

무엇보다 야쿠르트는 한국 방송사에 홈팀 중계권료를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야쿠르트 중계방송을 하는 방송사는 없다. 방송 중계권료를 한국선수 몸값의 밑천으로 삼는 다른 구단과 달리, 야쿠르트는 철저히 임창용의 실력만 보고 거액을 지급하는 셈이다.

2009년 WBC 결승전에서 임창용이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맞는 장면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초 임창용은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와 정면승부하다가 결승타를 맞았다. 한국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10회초 위기에서 이치로를 거르라고 사인을 보냈는데 왜 임창용이 승부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고의사구는 아니지만 볼로 승부하다가 안되면 거르라고 벤치에서 분명히 사인이 나갔고, 포수 강민호도 그렇게 사인을 보냈는데 이해를 잘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차후 밝혀졌지만, 임창용은 그런 사인을 보지 못했다. 김 감독도 인정했듯 벤치에서도 확실한 사인이 나오지 않았다. 설령 사인을 받아들여 이치로를 거르고, 다음 타자와 상대했어도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야구에서 결과론 만큼 훌륭한 면피도 없다. 

어쨌거나 그 한마디로 임창용은 ‘역적’이 됐다. 그에게 ‘철벽 마무리’라고 칭찬했던 이들도 그날 이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임창용은 청와대 초청 격려 오찬에 참가하지 않은 채 자비로 일본행 항공권을 사서 쓸쓸히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진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임창용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는 '애니콜'에서 '수호신'이 됐나.

 

많은 야쿠르트팬은 아직도 임창용을 '제비군단의 수호신'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뛸 때 그의 별명은 ‘애니콜’이었다. 감독이 부르면 언제든 마운드에 올라간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 그는 마무리 투수임에도 한 시즌 130이닝 이상을 우습게 던졌다. 1999년 71경기에 등판해 13승4패 38세이브를 기록한 건 위대한 기록이 아니라 ‘임창용 혹사’의 좋은 예였다. 당시 그는 마무리임에도 138⅔이닝을 던졌다.

선발로 돌아선 이후에도 임창용은 많은 이닝을 책임져야 했다. 2002년 임창용은 36경기 가운데 29경기에 선발로 나와 17승6패 2세이브를 기록했다. 당시 그는 204⅓이닝을 던져 ‘철완’이란 소릴 들었다. 하지만, 어깨와 팔꿈치는 분필과 같은 것이다. 쓰면 쓸수록 닳고, 부상 확률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임창용은 해태와 삼성 시절을 떠올리며 “마무리였지만, 5회에도 등판한 적이 많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말이 마무리 투수지, 규정이닝을 채우기 일쑤였다. 5, 6회 등판하는 건 기본이었다. 오늘 3, 4이닝 던지고, ‘내일은 좀 쉬겠지’하는 순간 코칭스태프의 등판 지시가 나왔다. 투구하고 나서도 몸 관리가 되지 않았다. 어깨가 좋지 않아 트레이너실에 가면 ‘얼음 찜질이나 해’하며 아이스팩 하나 던져주는 게 끝이었다. 경기 중 잠시 몸이 좋지 않아 트레이너실에 가면 팀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던지고 또 던져야 했다.”

결국 2005년 가을 임창용은 수술대에 올랐다. 너덜너덜해진 팔꿈치 인대를 새로 잇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006, 2007시즌을 허무하게 보냈다. 국내 야구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임창용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소속팀 삼성도 임창용의 재기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한때 삼성은 현대와 임창용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과거 현대의 고위관계자였던 K 씨는 “임창용을 받는 조건으로 박준수, 정수성을 내주는 1대 2 트레이드에 삼성과 합의했다”며 “트레이드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발표되지 못했다. 현대가 매각설에 휘말리며 구단 업무가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삼성은 KIA 김원섭과의 1대 1 트레이드도 시도했으나, 그마저도 잘 진행되지 않았다.

마침 코칭스태프와도 소원한 관계였던 임창용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일본행을 모색했다. 그때 다리를 놔준 이가 이종격투기 선수 최홍만을 매니지먼트하던 박유현 대표였다.

“창용이한테 분명히 말했다. ‘지금 상태라면 일본에서 큰돈을 받기 어렵다’고.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난 도와줄 수 없다’고. 헌데 창용이가 그러더라. ‘전 당장 큰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곳이면 그만입니다. 돈은 신경쓰지 마시고, 제가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주십시오,’ 그때 창용이의 진심을 알고, 일본팀을 수소문했다. 결국 야쿠르트와 계약하며 창용이의 일본 시대가 열렸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임창용은 ‘푹’ 쉬었다. 1995년 프로 데뷔 이래 한번도 쉬지 못했던 임창용은 2006년엔 아예 1경기만 등판했다. 2007년에도 40경기에 등판해 119⅓이닝만을 소화했다. 임창용은 “이때 쉰 게 일본에서 호투할 수 있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수술하고서 1년동안 재활에만 매달렸다. 그때 몸이 많이 좋아졌다. 어깨와 팔꿈치에 누적했던 피로도 말끔히 사라졌고, 재활하면서 잔근육도 키울 수 있었다. 여러모로 몸을 재정비하기엔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임창용은 “일본에서 확실하게 몸 관리를 받은 것도 호투의 또다른 비결”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투구 로테이션을 철저하게 지킨다. 마무리 투수는 1이닝 투구가 기본이다. 과거 한국에서 뛸 때처럼 6. 7회부터 등판하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만약 8회부터 나올 일이 있으면 코칭스태프가 먼저 선수에게 양해와 이해를 구한다. 대신 이후 경기에선 확실하게 휴식을 준다. 트레이너 시스템도 매우 좋다. 일본은 트레이너들의 분업화가 이뤄져 마사지, 워밍업, 러닝 등을 각기 다른 트레이너가 맡는다. 여기다 한국은 어깨가 아프면 어깨만 마사지해주지만, 일본은 전신마사지로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트레이너들이 침구사 자격증도 있어 따로 한의사를 찾지 않아도 간단한 침 치료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임창용은 65경기에 등판했다. 이 가운데 1이닝 이상 투구는 단 2경기였다. 각각 2이닝과 1⅓이닝을 던졌다.

올 시즌도 구단의 철저한 관리로 임창용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6월 6일 오사카에서 봤을 때만 해도 임창용은 자신의 컨디션을 “80%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8일 지바롯데전에서 시속 151km 강속구를 뿌린 이후는 “90%까지 올라왔다”며 “전광판을 보니까 스피드가 나오는 것 같아 힘 좀 썼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재 임창용의 구속과 구위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7월 이후 다시 마무리를 맡아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물론 임창용은 보직 욕심은 없다. 고연봉자로서의 예우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선수가 구단에게 예의를 갖추듯 구단도 선수에게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임창용은 한일 통산 300세이브 기록에 단 4세이브를 남기고 있다. 임창용은 한국에서 168세이브, 일본에서 128세이브를 기록했다. 만약 300세이브를 달성한다면 임창용은 훌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임창용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

 

한일통산 300세이브를 눈앞에 둔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임창용은 말한다. “일본에서 이룰 건 다 이뤘다”고. 사실이다. 그는 일본에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쥐었다. 임창용만 좋다면 내년시즌까지 야쿠르트에 남아 큰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임창용은 일본 무대에 안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나고 날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나타나고,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미국 무대에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2010년 임창용과 야쿠르트는 재계약 과정에서 ‘기본 2년을 계약기간으로 삼되, 3년째는 선수와 팀이 원할 경우 계약을 연장한다’고 합의했다. 따라서 올 시즌이 끝나고 임창용과 야쿠르트가 서로를 원하지 않는다면 계약은 바로 종료한다. 만약 임창용이 재계약을 원하나, 야쿠르트가 원하지 않는다면 임창용은 일본 내 다른 팀을 비롯해 메이저리그 팀들과 자유롭게 계약교섭에 나설 수 있다.

일본야구 관계자는 “임창용을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몇몇 빅리그 팀들이 임창용에게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창용은 “아직 시즌 중이라, 남은 기간엔 야쿠르트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2008년 처음 일본땅을 밟았을 때처럼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돈과 명예를 얻기보단 도전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임창용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최고의 롤모델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