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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축구

[풋볼리즘] 괴이한 아챔 강국의 아챔 TV 시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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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태국 부리람주 I-모바일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AFC 챔피언스리그 H조 3차전 전북 현대모터스와 부리람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전북 이승현이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어젯밤 결코 웃지 못 할 괴이한 사진 한 장이 축구팬 사이트와 SNS 사이를 떠돌았다. 제목은 아챔 강국리그의 아챔 시청법. 아리송한 이 제목의 사진 속에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부리람 대 전북 경기를 TV로 시청하는 태국 현지 팬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사진은 동영상을 캡처한 것이었는데 부리람과 전북 경기가 국내에서 중계되지 않아 목마르게 인터넷 중계 좌표를 찾던 축구팬들이 부리람 팬들이 중계 보는 장면을 촬영해 동영상으로 실시간 중계한 부리람 팬 사이트를 찾아내 경기를 본 것이다. 말 그대로 TV 속의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희한한, 아니 속상하고 속 쓰린 현실의 자화상 같은 장면이었다.


  

아챔 강국의 아챔 시청법이란 제목으로 화제를 모은 사진

중계가 되지 않다보니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축구팬들은 아시아 축구연맹의 공식 홈페이지 문자 중계에 의존해 경기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네이버 등의 포털 사이트들도 아시아 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문자 중계를 링크해 경기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근데 아시아 축구연맹의 문자 중계가 엉터리였다. 전반전이 끝나고 전북의 첫 득점자는 이동국, 부리람의 추격골은 페널티킥으로 나왔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1-1 상황에서 후반전 시작을 준비 중이라고 알렸다. 이 때문에 KBS 스포츠뉴스는 전북과 부리람이 전반전이 끝난 현재 1-1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방송 리포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전북은 2-0으로 부리람을 꺾었고 2골 모두 전반전에 나왔다. 득점자는 이승현과 서상민이었다. 이승현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힐킥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서상민은 페널티에어리어 우측에서 수비수 한 명을 페인트 모션으로 속인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쐐기골을 성공시켰다.

사실 아시아 축구연맹의 엉터리 정보 제공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2012런던올림픽 지역예선란에 가면 팀별로 매치캐스트라고 해서 선수들 프로필이 정리돼 있는 곳이 있는데 한국올림픽대표팀 리스트에 차두리와 이정수가 버젓이 들어가 있다. 소속팀이 틀린다든지 하는 건 실수라 할 수 있지만 서른 살을 훌쩍 넘긴 그것도 국가대표팀의 유명 선수들을 올림픽대표팀의 리스트에 넣은 건 실수라기보다 무성의한 거다.

엉터리 문자 중계와 오보

전북의 태국 부리람 원정 경기는 매우 중요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초반 2경기를 내리 패한 전북이 만약 부리람 경기에서도 패할 경우 사실상 조별리그 통과가 물 건너  가는 상황이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로 전력의 중심축을 짠 부리람이 가시와, 광저우를 모조리 꺾고 조 선두를 달리고 있어 전북으로선 부담이 상당한 경기였다. 지난해 K리그 우승팀이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인 전북의 명운이 걸린 매치업이라 축구팬들의 관심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국 어느 곳도 전북과 부리람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국내 TV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국은 모두 3곳이다. MBC 스포츠+와 SBS ESPN 그리고 IPTV인 IPSN이다. 이 3곳의 방송국들이 어젯밤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7시30분에 킥오프한 울산과 호주 브리즈번의 경기를 지연중계 방식으로 9시에 편성해 중계했다. 생중계가 아닌 지연중계 편성이 된 것은 배구와 농구의 포스트시즌 경기와 시간대가 겹쳤기 때문이다. MBC 스포츠+는 7시에 시작한 V리그 대한항공 대 현대캐피탈의 플레이오프 3차전을 생중계했고 SBS ESPN은 7시부터 원주 동부와 안양 KGC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생중계 편성했다. 

축구팬 입장에서야 다른 종목 일정과 상관없이 축구 경기를 우선 편성해주길 바라는 마음 다르지 않지만, 우승팀을 가리는 포스트시즌에 돌입한 배구와 농구의 경기를 생중계로 편성하는 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MBC 스포츠+와 SBS ESPN, IPSN 방송 3사가 왜 한 경기에 몰려 몰빵 중계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MBC 스포츠+와 SBS ESPN, IPSN 방송 3사는 어젯밤 9시에 울산과 브리즈번 경기를 지연 중계했다. 9시엔 편성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인데 2사와 1사 정도로 나뉘어 울산 경기와 전북 경기를 중계해줬더라면 축구팬들의 답답함과 욕구를 부족하나마 채워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틀 전인 4월3일에도 K리그 팀이 출전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경기 중 한 경기에만 방송국 3사가 모두 몰려 중계하기도 했다. 포항과 애들레이드전은 방송국 3사가 모두 생중계했지만 호주 원정 경기로 치러진 센트럴코스트와 성남의 경기는 국내에 중계되지 않았다.



축구팬들은 국내에 TV중계 되지 않은 전북-부리람전을 보기 위해 인터넷 좌표를 찾느라 진땀을 흘렸다.

몰빵 중계의 전파 낭비와 사회적 비용

이렇듯 방송국들의 중계 편중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비용 발생과 연관이 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중계권을 살 때에는 국제신호 제작에 대한 옵션이 의무 조항으로 따라 붙는다. 국제신호 제작이란 중계차를 현장으로 몰고 나가 경기 중계를 제작해 중계권을 갖고 있는 각국의 방송국들에게 중계 그림(화면)을 보내주는 일을 말한다. 우리말 캐스터와 해설의 목소리는 빠진 중계 원본으로 클린 피드(clean feed)라고 표현한다. 예컨대 어젯밤 울산과 브리즈번의 국제신호 제작은 SBS ESPN이 맡았는데 SBS ESPN이 찍어 송출한 화면이 각국에서 중계 된 것이다. 국내 경기의 국제신호 제작은  MBC 스포츠+와 SBS ESPN가 맡고 있으며 번갈아 가며 제작한다. 반대로 원정 경기의 경우 그 나라 방송국이 만든 국제 신호를 우리가 위성을 통해 받아 한국말 코멘트와 그래픽을 입혀 방송하는 방식이다. 스튜디오에서 화면을 받아 하는 중계로 오프 튜브(off tube) 방식이라고 한다.

국제신호 제작을 맡은 방송국은 당연히 해당 경기 중계를 우선 편성하려고 한다. 직접 제작한 경기를 중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별도의 추가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국제신호 제작에 참여하지 않은 방송국들도 국내에서 제작한 국제신호를 받아쓰는 걸 선호한다. 이 역시 비용의 문제다. 해외에서 제작한 국제신호를 받아 중계할 경우 위성 수신 비용을 따로 내야 하는데 국내 제작 중계 수신 비용과 차이가 크다. 그러니 자연스레 국내에서 제작한 국제신호 경기 중계로 편성이 쏠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경기를 3개나 되는 방송국에서 중계하는 건 분명한 전파 낭비다. 비용의 차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방송국 내부의 문제로 시청자들의 이해와 욕구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추가 비용의 발생 분보다 전파 낭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보다 크기도 하다. 한편으론 방송국 3사가 조율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현실적 해결책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방송국들의 편성의 독립성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안에서의 조율은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한 날 2경기가 열리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의 경우 2+1식으로 방송국들이 경기를 나눠 중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BS아사히와 TV아사히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중계한다. 두 방송국이 중계를 맡은 팀이 나뉘어 있다는 게 흥미롭다. FC도쿄와 나고야의 경기는 BS아사히, 가시와와 감바오사카의 경기는 TV아사히가 맡아 중계하는 식이다.

가뜩이나 중계에 목말라 하고 있는 축구팬들을 위해 방송국들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월드컵 등 빅 이벤트 때 돼서 축구 중계에 열심이라며 종종 걸음 걷지 말고 비록 느리더라도 지속적으로 축구에 열정과 애정을 보이길 고대한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축구팬들은 지난 시간 방송국들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 기억해 새겨놓고 있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진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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