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일본 교세라돔에서 만난 야쿠르트 스왈로스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창을 응원하면 방패가 서운하고, 방패를 응원하면 창이 섭섭하고. 어느 선수를 응원할지 고민스러울 것 같다.” 6월 5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만난 아사히방송의 다노 가즈히로 캐스터는 <스포츠춘추>를 보고 농담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게 이날 교세라돔에선 오릭스 버팔로스와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교류전이 열릴 예정이었다. 오릭스엔 이대호(30), 야쿠르트엔 임창용(36)이 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창’은 퍼시픽리그 최고 타자로 우뚝 선 이대호, ‘방패’는 야쿠르트의 ‘수호신’ 임창용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오랜만에 한국선수 간의 맞대결이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본 취재진도 꽤 관심 있게 두 선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민스러울 게 뭐 있나. 창이 잘하면 창을 향해 손뼉을 치고, 방패가 잘하면 방패에 환호를 보내면 그만이지. 그렇게 하면 야구를 두 배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스포츠춘추>의 답변에 다오 캐스터는 “근래 페이스만 본다면 두 선수 모두 오늘 경기에서 환호받을 게 분명하다”며 임창용을 한국 프로 출신 가운데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로, 그리고 이대호를 임창용 이후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지목했다.
무결점 타자 이대호 6월 5일 교세라돔 전광판에서 5월 MVP에 선정된 이대호의 인터뷰 영상이 방영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날 경기 전, 이대호는 교세라돔 인터뷰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일본야구기구(NPB)가 퍼시픽리그 5월 타자 부문 최우수선수(MVP)로 이대호를 선정한 까닭이었다. NPB는 ‘이대호가 5월 24경기에서 모두 4번 타자로 나서 20경기에서 안타를 쳤고, 수훈 안타가 7개나 된다’며 ‘퍼시픽리그 타자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대호는 5월 한 달 동안 타율 3할2푼2리, 8홈런 19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3・4월만 해도 이대호는 타율 2할3푼3리, 2홈런, 10타점으로 ‘실패한 외국인 타자’란 소릴 들었다. 그러나 5월 대반격에 성공하며 월간 MVP까지 수상하게 됐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일본 기자들은 이대호를 가리켜 ‘무결점 타자’라고 칭찬했다. 한 기자는 “이대호가 장타율이 6할3푼2리에 이르는 강타자임에도 출루율이 높다”며 “5월 출루율이 3할9푼8리로, 4할에 이른다”고 말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는 무려 10할3푼이나 됐다. 실제로 5월 한 달간 OPS가 10할이 넘은 타자는 이대호가 유일했다.
이대호의 성공 가능성이 높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대호는 홈런만 많이 치는 단순한 강타자가 아니라 선구안이 뛰어난 교타자이기도 하다. 이대호는 홈런 10개로 이 부문 퍼시픽리그 공동 1위다. 동시에 볼넷은 25개로 이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타석당 볼넷 8.44개는 전체 5위다. 장타율 4할 이상의 강타자 가운데 이대호보다 많은 볼넷을 얻은 선수는 없다. 역시 장타율 4할 이상 선수 가운데 타석당 볼넷이 이대호보다 높은 선수는 세이부 라이온스의 나카무라 다케야(7.84)뿐이다.
좌우완을 가리지 않는 타격에서도 이대호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다. 올 시즌 이대호는 우투수를 상대로 타율 3할5리, 6홈런, 23타점을 기록했다. 좌투수에겐 타율 2할5푼, 4홈런, 9타점을 뽑아냈다. 좌투수 상대 타율이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뛰던 지난해 5월에도 그는 좌투수를 상대로 타율 2할5푼, 1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대신 우투수에겐 타율 4할1푼9리, 8홈런, 21타점으로 강했다. 그러나 시즌 종료 시 이대호의 좌투수 상대 타율은 3할5푼이었다. 오릭스 코칭스태프는 “시즌이 흐를수록 이대호의 좌투수 상대 타율이 점점 오르고 있다”며 “결국 좌투수들도 이대호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대호는 평소처럼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한 달 사이 위상이 달라졌는지, 많은 일본 취재진이 그의 훈련 장면을 영상에 담기 위해 모였다. 그런 이대호의 훈련을 기분 좋게 쳐다보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임창용이었다.
돌아온 ‘창용불패’ 임창용 임창용의 훈련 장면(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시즌 개막 전, 많은 일본 야구관계자는 ‘야쿠르트의 센트럴리그 우승 여부는 임창용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예상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야쿠르트 불펜투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고, 그렇다면 마무리 임창용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2008년 일본 무대에 진출한 임창용은 4년간 통산 229경기에서 11승13패128세이브 평균자책 2.15를 기록했다. 지난해도 28세이브를 기록하며 야쿠르트의 든든한 마무리로 활약했다.
하지만, 임창용은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았다. 오른팔 부상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오른팔 통증으로 임창용은 한동안 투구를 쉬었고, 통증에서 회복한 이후엔 속구 구속 저하로 고생했다. 2군에서 절치부심 몸을 만들었지만, 이번엔 코칭스태프에서 그를 부르지 않았다.
‘완전하게 몸을 만들고서 1군에 오르는 게 좋다’는 것이 야쿠르트 코칭스태프의 대외적 코멘트였지만, ‘대체 마무리 토니 바넷을 비롯해 불펜투수들이 잘 던지는데, 굳이 좋은 흐름을 깨면서까지 임창용을 부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또 다른 이유였다. 4년간 팀의 마무리로 헌신하던 임창용 입장에선 서운할 수도 있는 소리였다. 지금껏 야쿠르트의 ‘좋은 흐름’을 이끌던 이는 다름 아닌 임창용이었다.
그러나 임창용은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2군에서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5월 28일 올 시즌 처음으로 1군행을 통보받았다. 당시 야쿠르트는 9연패에 빠지며 절체절명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마무리 바넷 역시 5월 들어 2세이브에 그친 채 평균자책이 6.23으로 뛰어오르며 난조를 보였다.
야쿠르트 코칭스태프는 베테랑 임창용이 불펜진을 잘 다독여 본연의 전력으로 돌아오길 희망했다. 임창용은 코칭스태프의 의중을 충실히 수행했다. 1군에 오르고, 첫 경기였던 5월 30일 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 1이닝 2안타 무실점, 31일 경기서도 1이닝 1안타 무실점, 6월 3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선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3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이었다. 공교롭게도 임창용이 던지기 시작한 5월 31일부터 6월 3일까지 야쿠르트는 3연승을 거뒀다.
일본 언론은 “임창용이 다시 마무리를 맡을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상을 하고 있다. 3일 소프트뱅크전이 좋은 예라고 한다. 당시 야쿠르트는 소프트뱅크에 9회까지 5대 1로 앞섰다. 9회 야쿠르트는 임창용을 등판시켰다. 4점 차였기에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임창용은 마무리를 맡았을 때 4점 차 승부에서도 등판했다.
일본 기자들은 “야쿠르트 오가와 준지 감독이 임창용을 9회 등판시킨 건 일종의 마무리 시험일 수 있다”며 “팀을 위해서도 임창용이 마무리를 맡고, 바넷이 셋업맨이 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라운드 한편에서 몸을 풀던 임창용 곁으로, ‘막’ 타격훈련을 끝낸 이대호가 찾아왔다. 이대호는 임창용을 보고 고갤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임창용은 후배가 자랑스러운지 연방 미소를 띠며 오랫동안 이대호의 손을 잡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성공했거나, 성공이 예상되는 선후배의 만남을 일본 취재진은 놓치지 않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임창용의 보직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임창용의 역투 장면(사진=야쿠르트HP)
야쿠르트 투수진의 훈련이 끝날 무렵, 임창용을 만났다. 이대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대호가 잘하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겠어요. 그저 잘하니까 좋다는 말만 했어요”였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임창용은 후배의 성공을 내심 기원하고 있었다. 관심도 많았다. 임창용은 “2군에서 쉬는 동안 대호 경기를 매일같이 봤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대호 경기를 봤어요. 4월엔 다소 부진했지만, 5월 들어서니까 역시 잘하더군요. 아무래도 4월엔 조금 기다리는 측면이 강했거든요. 하지만, 5월부턴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는 게 눈에 띄었어요. 지금은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들어오면 어김없이 방망이가 나가요. 원래 좋은 타자니까 앞으로 더 잘 할거라고 봅니다.”
임창용은 “대호는 센트럴리그에서 뛰었으면 더 날아다녔을 겁니다”라고 했다.
“퍼시픽리그가 아니라 센트럴리그에서 뛰었으면 더 잘했을 거에요. 요즘 보세요. 교류전에서 우리 쪽(센트럴리그) 투수들을 박살 내고 있잖아요.”
하지만, 일부에선 이대호의 성공을 ‘교류전 탓’으로 보기도 한다. 이대호를 집중연구한 퍼시픽리그 투수들에 비해 센트럴리그 투수들은 이대호의 장단점을 몰라 정면승부를 고집하다 얻어맞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창용은 그런 의견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상대를 잘 몰라 정면승부를 하다 맞는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컨디션이 워낙 좋으니까 잘 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임창용은 후배의 성공이 기쁜지 대화 도중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임창용은 “이제 오른팔을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1군 승격이 늦었던 것에 대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워낙 기존 투수들이 잘 던지다 보니, 1군으로 돌아올 타이밍을 놓친 것뿐”이라고 밝혔다.
많은 팬이 궁금해하는 마무리 복귀에 대해선 더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당분간은 마무리 보직을 맡긴 어려울 것 같아요. 바넷이 잘 던지고 있고, 코칭스태프도 바넷이 ‘썩’ 나빠지지 않는 이상 보직 변경을 할 것 같진 않아요.”
‘일본 기자들은 3일 소프트뱅크전에서 9회 등판한 것을 두고 마무리 복귀를 위한 일종의 테스트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임창용은 “그건 기자들 생각”이라고 대꾸했다.
“사실 그 경기는 제가 등판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점 차 승부에도 제가 등판했거든요. 그렇다면 그 경기에서도 바넷이 나가는 게 맞았어요. 하지만, 제가 나갔죠.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야쿠르트 전담해설가인 모 일본야구계 인사는 “오가와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시즌 초 야쿠르트가 센트럴리그 선두를 달렸다. 잘 나가고 있을 때 기존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을 조절해야 했다. 그런데 오가와 감독은 매일 같은 선수를 고집했다. ‘좋은 흐름을 잃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장기 레이스에선 좋은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뒤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다. 결국, 야쿠르트는 몇 십 년 만에 10연패를 기록하고서야 1, 2군 선수를 대폭 교체했다. 임창용도 더 일찍 불렀어야 한다. 임창용의 연봉이 3억6천만 엔(약 53억 원)이다. 그런 고연봉자이자 검증된 투수를 ‘좋은 흐름을 유지한다’는 미명 아래 2군에 놔뒀다는 것 자체가 감독의 무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이라도 임창용을 마무리, 바넷을 셋업맨으로 보직 변경해야 한다. 해마다 30세이브 이상이 가능한 3억6천만 엔짜리 투수를 셋업맨으로 두는 감독이 어딨는가.”
현재 임창용의 컨디션은 80%다.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 보직과 관계없이 조만간 컨디션을 100%로 끌어올려 팀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게 임창용의 생각이다.
6월 6일 임창용과 이대호는 첫 맞대결을 벌일지 모른다. 야쿠르트는 연패를 끊기 위해 1, 2점 차 뒤지는 상황에서도 임창용을 등판시킬 수 있다는 자세다. 이대호는 4번 타자로 전타석에 설 것이다. 만약 두 선수가 맞붙는다면 한국 야구팬들은 공정한 손뼉과 환호로 두 선수를 응원할 것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에서 임창용과 이대호는 각자의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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