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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은퇴식 도중 눈물을 흘리는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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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 도중 눈물을 흘리는 이종범
2009년 10월 25일, 기자는 잠실야구장에 있었다.

기아타이거즈가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관중석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본 같은 우승 시나리오에 눈물을 훔쳤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상대팀 SK와이번스에 5-1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기어이 따라잡더니 9회 말 끝내 기 홈런으로 역전시키며 우승한 팀. 고등학교 때 해태의 우승을 기억하던 한 남자는 12년 만에 자신과 꼭 닮은 아들 손을 잡고 야구장에 찾아와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을 목격하며 눈물을 닦았다.

흥미진진한 야구경기 내용에 환호성을 지르던 기자는 전광판에 클로즈업 된 한 장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기아의 이종범 선수는 누군가를 껴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2009년 이종범은 쟁쟁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정규이닝을 제대로 체우지도 못하고 대수비, 대타로 그라운드 위에 오를 때가 많았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박대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럴 때마다 이종범은 "팀에 도움이 된다면 뭘 맡든 상관 없다" 며 싱긋 웃었다. 야구장에서 어느새 나이 먹은 이종범은 그렇게 타이거즈의 10번째 우 승을 만들며 뜨겁게 울었다.

2012년 5월 26일, 광주 무등 경기장 위에서 이종범은 다시 한 번 눈물을 보였다. 이번에도 야구장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야구에서 이종범은 '포기를 모르는 자'였다.

이종범이 걸어온 길에 많은 눈물이 있던 건 단순히 '기록'과 '고통'때문은 아닐 것이다. 과거 억눌렸던 전라도의 한(恨)이 타이거즈의 우승이 어루만져주었기 때문이라고 한정짓기엔 지금 10대의 야구팬들도 이종범을 연호하는 걸 설명하기 힘들다

데뷔하자마자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고 MVP를 받은 야구 천재에서 팀을 위해 대수비를 자처하는 팀의 정신적 지주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오롯이 '야구'를 위했다. 이종범은 말보다는 연습을 하는 선수, 꾸지람이 아닌 포용으로 후배를 다독였던 선배로 기억될 것이다.

팬들에게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의 유년기부터 사춘기를 지나 청년으로 키워 온 전설로 남았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인정받은 첫 타자로 한국의 자부심을 심겨주기도 했다.

은퇴식이 펼쳐지는 동안 이종범을 선수시절부터 지켜봐 왔다는 한 스포츠 기자도 고개를 남몰래 떨궜다. "난 스포츠 기자로 지내면서 야구팬은 아니었는데..." 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다른 기자는 사진기를 들고 어깨를 들썩였다.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며 포옹하는 이종범
26일 오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이종범 선수의 은퇴식에서 이종범이 KIA 선동렬 감독, 김응룡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1993시즌 KIA전신 해태 소속으로 프로에 데뷔한 이종범은 16시즌 통산 타율 2할9푼7리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 740타점 1100득점을 기록했다.

입단 첫 해부터 득점 1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이종범은 1994시즌 타율, 득점 안타, 도루, 출루율 정상을 차지,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고 1996, 1997시즌에는 득점과 도루 부문 1위에 자리했다. 

1998년부터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 주니치에 입단한 이종범은 2001시즌 KIA에 복귀했고 2003시즌 득점, 도루 1위 2004시즌 득점 1위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도루 2위, 타율 13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종범은 지난 3월 2012시즌 개막을 앞두고 은퇴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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