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거부감을 이유로 특별귀화 심의가 기각된 에닝요 (사진=연합뉴스) |
특별귀화는 무산됐지만 그 과정은 유의미했다. 그 동안 축구계에서 가정법을 전제로 그 의견들이 제시되던 외국인 선수의 귀화 논의가 수면 위로 본격 부상했다. 과거에도 몇몇 외국인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며 귀화 의사를 표명한 바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 법 절차에 따라 진행까지 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초로 문을 열려고 했던 만큼 파장과 반발은 거셌다. 대한축구협회와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 에닝요가 지닌 뛰어난 경기력을 대표팀에서 활용하고자 했다. 에닝요 본인도 귀화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였던 터라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법무부 검토까지도 못 갔다. 축구협회의 상급단체로 특별귀화 대상 선수를 심의하는 대한체육회는 이전에 혼혈 선수의 경우와 달리 순수 외국인인 에닝요의 귀화 목적을 의심했다.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 한국의 미풍양속을 이해하지 못해 정서적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재심의를 기각했다.
절차 외의 현실적인 벽도 실감했다. 특별귀화 추진 소식이 알려진 뒤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언론은 이 최초의 시도에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은 여전히 한국에서 성역의 가치를 지닌다. 일부 팬들은 외국인 선수에게 태극마크를 허용한다는 데 있어 국가의 정체성까지 언급하며 반대했다. 부임 후 팬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아왔던 최강희 감독은 언론 보도와 팬들의 반대에 점수가 깎인 상태다.
에닝요의 귀화는 물 건너갔다. 최강희 감독은 이미 첫번째 심의가 거부당했을 때 포기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3일 파주NFC에서 진행된 대표팀 훈련을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특별귀화 재심의 거부 후 처음으로 언론 앞에서 입장을 나타냈다. 귀화가 무산된 것은 괜찮지만 그 시도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이 된 부분에 대해선 안타깝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논란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는 현 대표팀 선수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에닝요의 진정성이 전달이 안되고 언론에서 왜곡하는 바람에 생각하지 않았던 심각한 상황으로 갔다. 마치 내가 귀화에 목숨을 건 거 같이 보였는데 그건 아니었다. 뭐든지 처음 하는 일이 어렵다. 이미 첫 판례가 나왔을 때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건 언론 보도에 의해 대표팀 선수들이 감독이 귀화 문제에 묶여 자신들을 등한시 한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다 모이면 이번 문제에 어떤 진심으로 접근을 했는지를 직접 설명할 것이다”
최강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로서는 법적, 행정적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이번 시도로 인해 확인한 언론과 팬들의 반응이 더 어려웠다. 현재 K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중 자격과 실력 면에서 대표 선수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에닝요마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한국 축구에서 귀화 선수를 대표팀에 활용하는 방안은 영구폐기 될 지도 모른다.
올 연말 일반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것이 유력한 라돈치치, 과연 그는 태극전사가 될 수 있을까? (사진=연합뉴스) |
귀화 선수의 대표팀 진입에 대한 논의는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언어 구사 능력을 지녔고 한국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기본 소양을 갖춘 외국인 선수에게 축구 대표팀의 문을 개방할 수 있느냐로 논의는 그 2라운드에 접어들 수 밖에 없다.
당장 올 연말 그런 케이스가 등장할 예정이다.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는 라돈치치는 일반 귀화를 준비한다. 에닝요와 함께 특별 귀화 대상자였지만 귀화를 위한 거주년차(국내 5년 연속 거주)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던 라돈치치는 올 연말 그 조건을 채우고 일반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라돈치치는 에닝요와 달리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다.
라돈치치 측은 “대표팀과 관계 없이 한국인이 되는 것이 우선 목적이다”라고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K리그에서 최정상급 공격수로 인정받고 있는 라돈치치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대표팀 선발 논의는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에닝요의 특별귀화 과정에서 발전적인 논의보다는 순혈주의를 바탕에 두고 선을 긋고 언어 구사 능력만 보며 진정성 여부를 결론지었던 여론에 당혹감을 느낀 축구계가 다시 용기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한국 정서에 동화가 됐어도 한국인의 뿌리가 없는 선수에게 태극마크를 부여하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번 특별귀화 추진 과정에서 재확인한 사실이다.
최강희 감독은 “일반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합법적인 선발은 가능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정서다. 우리는 순혈주의가 강하다”라며 특별귀화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벽을 고백했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기회가 갈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힘들지 않나 싶다. 대표팀 문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신중한 말 속에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에는 귀화선수의 선발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도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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