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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관리/건강이야기

모기가 전파하는 병 - 말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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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5세 된 이탈리아 남성이 펄펄 끓는 열 때문에 병원에 왔다. 그 남자는 일 때문에 잠비아에서 6개월간 머물다 돌아왔는데, 귀국한 지 3주 만에 증상이 시작된 거였다. 열이 나는 원인 중 중요한 게 말라리아(malaria)고, 잠비아는 자타가 공인하는 말라리아 유행지. 환자의 혈액을 뽑아 검사했더니 적혈구 속에 말라리아가 들어 있는 게 보였다. 말라리아 약이 투여됐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간과 신장을 비롯한 여러 장기가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결국 입원한 지 15일 만에 환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환자는 처음 3개월 동안에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잘 먹었지만 나머지 석 달 동안에는 귀찮아서 먹지 않았는데, 그게 죽음에 다가서는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을 거다.

 

 

나쁜 공기라는 의미가 있는 말라리아, 사실은 모기가 전파해

말라리아는 ‘나쁘다’란 뜻이 있는 ‘mal’과 ‘공기’라는 의미의 ‘air’가 결합한 용어로, 예전에는 말라리아가 나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라브랑(Charles Laveran)은 모기가 말라리아를 전파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말라리아를 이용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4명에 달할 만큼 중요한 질환으로 취급되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100-300만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관리 노력이 무색할 만큼 말라리아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는지라 누군가가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해 낸다면 아마도 다섯 번째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말라리아 원충

 

 

말라리아는 열원충이 적혈구에 들어가서 발생하는 병

말라리아는 열원충(Plasmodium)에 의해 일어난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열원충에는 4종류가 있고, 그 중 삼일열원충(Plasmodium vivax)이 가장 흔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열원충은 주로 열대열원충이다.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말라리아 병원체가 사람 몸에 들어오는데, 일단 들어온 말라리아는 간으로 가서 숫자를 증식시킨 다음 혈액으로 나와 적혈구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부터 말라리아는 적혈구 안에서 분열∙증식하고, 어느 정도 숫자가 됐다 싶으면 적혈구를 깨뜨리고 나온다. 말라리아의 특징적인 증상인 발열∙오한∙떨림 등은 적혈구가 깨질 때 생긴다.

 

삼일열에서는 적혈구 안에서 숫자를 늘리는 기간이 일정해 이틀 간격의 규칙적인 열이 나지만, 열대열에선 시도 때도 없이 열이 나는 게 특징이다. 이렇게 열원충이 적혈구를 깨뜨리고, 열원충에 감염된 적혈구는 우리 몸에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해 비장에서 파괴되어 버리는지라 적혈구가 모자라는 현상, 즉 빈혈이 나타난다.

 

 

말라리아가 무서운 이유는 뇌를 침범하기 때문



말리리아의 징후


말라리아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뇌를 침범하기 때문이다. 주로 열대열 말라리아가 뇌에 병변을 일으키는데, 그 작용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 몸의 혈관에는 적혈구가 지나가고, 그 적혈구를 통해 우리는 산소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그 적혈구에 말라리아 병원체가 들어가면 적혈구의 표면이 튀어나오고, 접착력도 갖추게 된다.

 

그 적혈구는 혈관벽에 붙고, 거기에 다른 적혈구들까지 달라붙어 혈관이 막힌다. 원래 열원충에 감염된 적혈구는 비장으로 가서 파괴되어야 정상이지만, 혈관이 막혀 버리면 감염된 적혈구들이 비장까지 가지 못하고, 열원충은 신이 나서 발육과 증식을 계속한다.

 

그 결과 뇌에 있는 혈관들 여러 군데가 막혀 뇌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며,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때 적절히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게 되는데, 죽지 않는다 해도 마비 등의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특히 소아에서 이런 일이 더 잘 벌어지는데, 말라리아로 말미암아 죽는 100~300만 명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이들이다. 말라리아가 나쁜 기생충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다행히 열대열 말라리아처럼 심각하지는 않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죽지만 우리나라에선 말라리아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에서 말라리아가 발생하지 않아서?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 이후 해마다 2천 명 내외의 환자가 생긴다. 답은 우리나라에서 열대열 말라리아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말라리아는 모두 삼일열로, 증상도 가볍고 약에도 잘 듣는지라 걸렸다 해도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1984년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가 우리나라에서 다시 유행하게 된 건 북한에 살던 모기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남쪽으로 내려온 탓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감염자 대부분이 휴전선 부근에 있는 군인들이다.

 

우리나라에 열대열 말라리아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라리아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모기 속에 잠복한 채 겨울을 나야 하는데, 겨울에 영하로 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선 열대열 말라리아가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인 것이, 우리나라에 열대열이 유행했다면 경제발전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기껏 일을 가르쳐 놨더니 다음날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버리는데 어떻게 경제발전을 하겠는가? [총.균.쇠]라는 책에서 잘 지적했듯이 못사는 나라는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자연환경의 영향이 작용한 결과다.

 

 

열대열 말라리아가 흔한 지역을 여행할 때는

열대열말라리아는 아프리카∙뉴기니아이티 등에서 흔하며, 그래서 이 나라로 여행을 갈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의 동물원인 세렝게티(Serengeti) 국립공원이 있는 탄자니아도 열대열 말라리아의 유행지니, 이런 곳에 갈 때는 반드시 예방약을 먹어야 한다. 열대열 말라리아라고 해서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인도∙동아시아∙오세아니아 등에도 이 말라리아가 유행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인도 원정 중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우리나라 파병자도 말라리아가 사인인 경우도 있었다.

 



말라리아는 주로 아프리카와 남미대륙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말라리아의 위험이 있는 국가들이다.

 

 

 

말라리아 전파의 주범은 얼룩날개모기

모든 모기가 다 말라리아를 전파하는 건 아니다. 얼룩날개모기(Anopheles)라는 모기가 주로 말라리아를 전파하는데, 이 모기의 특징은 앉아 있을 때 엉덩이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엉덩이를 낮춘 모기라면 “네가 배가 고프구나”라고 여유를 부려도 되지만, 엉덩이를 들고 있다면 긴장해야 한다.

 

물론 그런 모기에 물린다고 다 말라리아에 걸리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한 학자가 “대체 모기들은 얼마나 말라리아에 걸려 있는가?” 하는 호기심에서 모기를 잔뜩 붙잡아 검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놀라지 마시라, 7천 마리 중 하나꼴로 열원충을 가지고 있었다. 2010년에도 강원도에서 비슷한 실험이 있었는데, 2천 마리 중 2마리, 즉 열원충을 가진 모기의 비율이 0.1%였다.

 

대략 모기한테 천 번쯤 물리면 한번 말라리아에 걸릴 수가 있다는 얘기인데,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그렇다는 것이고, 말라리아가 많은 아프리카에선 훨씬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니 외국에 가서는 되도록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주의한다고 안 물리는 게 아니라는 게 이 병의 고민거리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

 

 

혈액 검사를 통해 말라리아로 판단하면, 클로로퀸이라는 약을 써서 치료해

열원충은 적혈구 안에 산다. 그러니 말라리아의 진단은 환자의 혈액을 빼서 슬라이드에 놓고 염색을 한 뒤 현미경으로 보면 된다. 치료는 기본적으로 클로로퀸을 사용한다. 단, 삼일열 말라리아에선 간에 숨어 있는 열원충을 근절하기 위해 프리마퀸을 같이 써줘야 한다. 클로로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절, 아프리카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말라리아로 전멸한 데 비해 아프리카 병사들은 비교적 사망자가 적었는데, 그 비결이 바로 키니네라는 나뭇잎이었고, 여기에 착안해 클로로퀸이 만들어진 거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열원충은 클로로퀸에 저항성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제 웬만한 유행지에선 약제에 내성을 가진 열원충이 보고되고 있다. 이럴 때는 메플로퀸이나 판시다, 아르테미시닌 같은 약을 쓰는데, 정말 이거다 할 만큼 효과가 좋은 약이 나오지 않는 게 이 병의 두 번째 고민거리다.

 

 

말라리아는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

베트남 전쟁 때, 말라리아의 예방약으로 개발한 메플로퀸 

<출처 : Bongoman at en.wikipedia.com>


치료약이 없다면 예방이라도 잘해야 한다. 효과적인 백신이 나온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수많은 연구자가 뛰어들었어도 이렇다 할 백신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DDT라는 살충제를 발명한 파울 뮐러(Paul Hermann Müller) 박사가 노벨상을 받은 것도 말라리아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보여 주는데, DDT는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알려져 사용이 중단됐다. 백신도 없고 모기 근절도 되지 않으니 예방약을 먹는 수밖에. 말라리아 유행지역을 갈 때는 출발 1주 전부터 말라리아 약을 먹어야 하며, 유행지역을 떠나고 나서도 4주 동안 더 복용을 하는 게 좋다.

 

1999년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지 탐험을 하는 프로였는데, 라오스 편에 출연했던 탤런트 김성찬 씨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지 않았고, 거기서 걸린 말라리아 때문에 사망하고 말았다.

 

거듭 말하지만 2009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신종 플루의 사망자가 불과 수천 명인데 반해 말라리아는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이 죽는 무서운 질환이다.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말라리아만 생각하고 안심하는 대신, 말라리아 유행지역에 갈 때는 제발 긴장을 하고 말라리아 약을 복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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