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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축구

박지성은 퍼펙트 이그잼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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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다. 엊그제 같은데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세월은 무심히 흘렀지만 기억은 어제처럼 또렷하다. 대회 기간 동안 700만 명의 열정들이 전국 곳곳을 뜨겁게 달궜다. 거리는 온통 열정이 분출되는 열린 광장이 됐고 광장에선 그 어떤 차이도, 다툼도, 갈라짐도 없이 하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된 붉은 함성은 우리의 심장을 그렇게 터질 듯이 흔들어 놓았다. 우리 세대에 이러한 경험을, 광경을 또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하나 같이 축제의 끝을 안타깝게 토해냈다.

거스 히딩크

그는 2002년 여름 그토록 뜨거웠던 대한민국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홀연히 날아온 이 벽안의 지도자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혹은 바뀌어 놓지 못했던 새로운 리더십과 개혁 드라이브로 한국축구와 대한민국을 온통 뒤흔들었다.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팀을 4강까지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지만 기존의 인식과 문화를 깨뜨리고 뒤집어 버린 문화적 충격이 던진 너울은 훨씬 크고 깊었다. 

2002년을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에게 히딩크는 단순한 축구 감독을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현상이었다.(연합뉴스)

"한국축구가 정신력과 체력이 강하다고. 부족한 건 기술이라고. 천만의 말이다. 한국축구 선수들의 기술은 현대축구를 치르기에 충분하다. 양발을 이렇게 잘 쓰는 선수들이 얼마나 있는가. 오히려 이를 악 물고 뛰는 투지만을 정신력으로 말하는 것과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지 못하거나 자신이 가진 체력을 효과적으로 분배해 쓰지 못하는 체력이 한국축구의 진짜 문제다. 붕대 두르고 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지 못하면 화가 나느냐고. 아니다. 내가 진짜로 화가 날 때는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지 못했다고 해서 슈팅을 때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할 때다. 그러니 쓰러진 말에는 채찍을 때리지 말아 달라."

2002월드컵의 4강은 한국축구의 유러피언 드림을 촉발시킨 발화통이기도 했다.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김남일 등이 2002월드컵 이후 유럽으로 진출했고 뒤로 한국선수들의 유럽 이적이 꼬리를 물었다. 히딩크 감독은 이 중에서도 박지성과 이영표를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으로 데리고 가 이후 한국축구 사상 첫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입성이라는 역사를 가능케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그와 마주했다. 6월2일 나이키의 축구 유망주 발굴 프로젝트인 <더 찬스> 행사가 열린 경남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그와 만났다. 2002년 여름의 뜨거웠던 거리를, 열정이 분출됐던 광장을, 환희 가득했던 경기장을 거슬러 함께 추억하는데 그보다 더 한 사람은 없었다. 10년 전 기억의 보따리를 푸는 이야기부터 한국선수들의 유럽 진출 이대로 좋은지, 한국축구가 어떻게 하면 진일보할 수 있는지 등 다소 까칠하고 무거운 주제도 오갔다. 

히딩크 감독과의 재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천부적 승부사에게도 잊히지 않는 10년 전 여름

"승부욕은 현실 극복하려는 강렬한 동기부여" 

박문성) 2010년 남아공월드컵 전에 만나고 2년 만이다. 건강해지셨다.(후덕해보여 은근슬쩍 웃으며 물었다) 

“물, 물, 물(갑자기 목이 탔는지 히딩크 감독은 한국말로 물을 달라며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주위 분위기를 끌어 모으는 특유의 쇼맨십이기도 했다) 딱 보기에도 그런가. 맞다. 조금 쪘다. 4,5kg 정도 몸무게가 늘었다. 살 찐 거 말고는 건강하다. 나이 탓에 매일같이 운동하진 못하지만 테니스와 골프 등을 즐기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의 히딩크. 10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외국인' 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히딩크 감독은 1946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66살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정 가득했고 위트가 넘쳤으며 여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멈추지 않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2002월드컵 이후에도 아인트호벤, 호주대표팀, 러시아대표팀, 첼시, 터키대표팀 등을 지휘하며 불같은 열정을 불살랐다. 현재도 그는 러시아 신흥 갑부 클럽 안지 마하치칼라를 이끌며 정열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박) 러시아 안지 팀을 이끌고 있고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도 히딩크 재단 축구장 개장 행사 등 8개의 굵직한 스케줄을 소화할 만큼 여전히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피곤하지 않은가. 이 같은 열정의 원천은 무엇인가.

“피곤하지 않은데 가는 곳마다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진짜로 피곤한 것 같다. 자꾸 물어보지만 않으면 정말이지 피곤하지 않을 것 같다(웃음). 비결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걷어낸다면, 사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운 일 아닌가. 아무래도 또 내가 승부욕이 상당히 강한데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즐기는데 익숙하다."

박) 당신의 그러한 불같은 승부욕이 2002년 여름 대한민국의 4강을, 이후에도 첼시나 호주, 러시아, 터키대표팀 등을 거침없이 이끈 힘 아닌가.

축구인으로서의 즐거움 중 하나가 어린 선수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내 나이를 감안하면 마음 한편엔 고향의 작은 팀으로 돌아가 유소년들을 가르치고 싶단 생각이 굴뚝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강한 승부욕 때문인지 어떤 새로운 도전 과제나 기회가 오면 맞서 싸워보자는 기운이 돋는다. 승부욕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동기부여와 같다.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박) 기억의 시계추를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한국축구 팬들에게 2002년 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꼽으라면 4강, 붉은 악마, 거리 응원, 광장, 히딩크 감독 등이다. 히딩크 감독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한/민/국(히딩크 감독은 한국말로 또박또박 발음했다) 이 이상 그 어떤 말로도 당시의 기억과 감동을 대신할 것을 찾긴 어렵다. 엄청난 경험이자 기억이다. 

한국 스포츠사에서 이토록 짜릿했던 경험이 또 있었을까? 히딩크도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한국축구의 잘못된 현실 인식에 직격탄을 던지다

"사람에 투자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박) 4강이란 결과 말고 2002년 여름, 당신을 가장 감동케 했던 건 무엇인가. 

엄청난 에너지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 이후로도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가 분출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이지 놀랐고 전율 같은 걸 느꼈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도 질서가 흐트러지거나 폭력 등의 불미스런 사태를 찾아보기 힘들었단 사실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의 주제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단 경험은 매우 특별한 추억이다. 그 어떤 경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엄청난 기억이다.

박)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라는 유행어를 비롯해 당신은 한국축구의 기존 질서를 흔드는 파격적인 언행과 리더십으로 한국축구에 많은 변화와 영향을 주었다. 당신이 한국축구에 남긴 최고의 자산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는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이 평가해야 할 문제 아닌가 싶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난 당시 현실을 직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현실의 정확한 진단 없이는 해법도, 미래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다. 2002월드컵을 준비하던 한국대표팀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거나 강팀은 아니었다. 더 많이 싸우고 부딪쳐 깨지면서 성장해야 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이전 자료들을 보니 한국대표팀은 월드컵과 같은 세계 대회를 준비하면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등 약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팀들과의 평가전을 치르고 본선에 가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유를 물으니 약팀을 상대로 평가전을 치러 웜 업을 하고 또 승리한 여세를 본선까지 이어가고자 하는 계산이라고 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약팀들과 싸우면 우리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 팀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현실을 스스로 가리는 셈이다. 그런 상태에서 본선에 가 강팀을 만나면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한다. 2002월드컵을 준비하면서는 약팀들과 상대하던 기존과 달리 프랑스, 체코, 노르웨이, 잉글랜드 등과 유럽의 강호들과 평가전을 치렀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고 문제점들을 수정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미래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는 일, 아마도 2002월드컵이 남긴 경험의 자산이 아닐까 한다. 

박) 한국축구의 문제점은 기술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이라는, 기존의 인식 틀과는 정반대의 화두를 던졌던 것도 당신의 현실 직시와 중시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으론 이러한 리더십의 과제 설정과 고민 방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감독의 중요성이 더해진다.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긴 위해선 이를 가능케 하는 토양인 좋은 지도자를 보다 많이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한국축구가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럽이나 남미가 크게 다르진 않지만 한국은 더 조급하고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젊은 지도자들에겐 보다 많이 도전하고 크게 싸울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줘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기회를 빼앗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는다. 이러한 실패가 보다 나은 성공의 자산이 되기도 한다. 내가 다르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은 감독들이 다르지 않았다. 보다 긴 호흡이 필요한데 장기적인 관점에선 사람에 투자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지도자가 중요하고 사람이 중요하단 마음을 중심에 둬야 한다.

박) 2002월드컵의 성과 중 또 하나는 한국선수들의 유럽 진출 확대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유럽으로 진출했던 박지성이 대표적인 선수인데.

박지성은 완벽한 본보기(perfect example)다.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 무대로 진출해 성공하는 가장 현명한 길을 택했다. 아시아 선수가 곧장 프리미어리그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이럴 경우 80, 90%는 실패한다. 조급함의 함정이다. 준비되지 않은 빅 리그 행은 실패의 위험성이 크다.

'왜 저런 선수를 선발하냐'는 비난에도 박지성을 꿋꿋이 밀어붙인 히딩크. 박지성은 한국의 첫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골을 쏘았고, 이후 유럽 최고 무대에서 활약하게 됐다.(사진 : 연합뉴스)

현실적으로 아시아 리그와 유럽리그의 수준 차는 크다. 아시아리그에서 곧장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빅 리그로 진출하기보단 네덜란드 등 한 단계 아래의 리그에서 경험하고 기량을 쌓아 빅 리그로 진출하는 게 성공 확률을 끌어올리는 현명한 방법이다. 2002월드컵이 한국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이끈 건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과 선택은 점검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박) 재능이 있다면 유럽 빅 리그로 곧장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시아 리그에서 빅 리그로 곧장 이적했던 선수들이나 네덜란드 등 중간 레벨의 리그에서 경험을 보다 쌓지 못하고 조금은 급하게 빅 리그로 진출했던 선수들이 고전하는 건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 구조가 그들이 적응을 하는데 짬조차 허용치 않는 숨 막히는 환경을 만들고 이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의 고리다.

준비돼 있느냐가 관건이다. 숨 막히는 경쟁 구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기량 못지않게 경험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로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박지성만 하더라도 네덜란드에 처음 진출해서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부상과 부진으로 홈팬들에게조차 야유를 받은 가혹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긴 호흡으로 준비하고 기다리며 싸워 이겨낸 끝에 아인트호벤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고 맨유라고 하는 세계적인 클럽에 입단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조급하게 빅 리그로 진출해 실패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름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아무리 빅 리그, 빅 팀이라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곳이 어디건 중요한 건 기회를 잡고 싸워 이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박) 분위기를 살짝 바꿔 혹 지휘봉을 잡고 있는 러시아 안지 클럽에 한국선수를 데려갈 생각이 있나.

아,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오늘 질문 중 가장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 

"뛰지 못하면 빅 리그, 빅 팀이라도 소용없다"

"스페인 축구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인가"

박)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편으론 한국선수들의 유럽진출이 확대된 것은 좋지만 스타급 선수들이 빠져나가면서 K리그의 경쟁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자 고민이다.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스텝, 스텝, 스텝을 밟고 올라야 하듯 축구가 본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토대를 다지는데 주력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국대표팀은 얼마 전 세계 최강 스페인과 평가전을 치렀다. 결과는 크게 패했다. 한국이 스페인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는 대표팀 몇 명의 선수를 키우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한국 유망주들을 관찰하고 지도한 히딩크 감독. 이미 마음속으로 '제 2의 박지성'을 점찍은 건 아닐까?

 

대표팀의 토대인 프로축구의 문화와 경쟁력 또 그 토양인 유소년 시스템을 점검하고 강화하는 KFA(대한축구협회)의 중장기적인 전략이 따라야 극복 가능한 일이다. 이 역시 조급해서는 안 된다. 스페인축구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오래 걸리거나 돌아가는 게 문제이지 않다. 얼마만큼 문제의 본질에 다가 서 있느냐가 중요한데 K리그가 바로 그 열쇠다.

박) K리그가 중요한 걸 알면서도 이게 또 쉽지 않다.

중요하다는 강조나 말이 아닌 제도와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아인트호벤 감독 시절을 예로 들어보면, 구단의 유소년 선수 육성과 지역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걸 누구다 다 알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서로가 다르기도 했고 실행으로 옮기는데 주저하기도 했다.

 난 감독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아예 1군 선수 계약할 때 1주일에 1회는 지역 유소년 클럽에 찾아가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고 시범을 보여야 한다는 걸 계약서에 포함시켜 유소년 선수 육성과 지역 마케팅의 해법을 찾는 일에 구체적으로 참여했다. K리그가 어떻게 가야하는지는 다들 잘 알고 있다. 필요한 건 구체적인 제도와 시스템이다.

박) 리그의 경쟁력 못지않게 선수의 경쟁력 확보가 중요한데 히딩크 감독이 생각하는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좋은 선수의 자질은 무엇인가.

공을 얼마나 몸의 일부분처럼 친숙하게 다루느냐를 보는데 공을 친구처럼 다루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적하고처럼 싸우는 선수가 있다. 이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얼마만큼 반복해 훈련했느냐가 좌우하는 일이다. 공을 다루는 걸 보면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또 현대축구는 시간과 공간의 싸움이다. 기술적 경쟁력 못지않게 영리해야 시간과 공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판단의 경쟁력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체력 뒷받침 없이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90분을 뛸 수 없는 선수에게는 제 아무리 빼어난 기술이라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농담으로 내가 지금부터라도 몸을 만들어 현역 선수로 뛰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그냥 지금처럼 해설하라며 단칼에 자른다. 역시 짤 없다. 사실 앞선 질문들을 따로 떼어내 하나씩 파고들어 듣고 싶을 만큼 히딩크 감독에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인터뷰 시간이 제한적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워낙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터라 오랜 시간 붙잡아 두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이어진 질문에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몸짓을 섞어 힘주어 말하는 히딩크 감독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카리스마 넘쳤다.

아쉬움을 삼키며 끝으로 히딩크 감독에게 어떠한 사람으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은지를 물었다.

"한국 사람, 만약 허락해준다면 그냥 한국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2002월드컵이 마무리되고 한국을 떠나면서 조만간 또 보자는 의미에서 소 롱(So long)이라고 인사 했는데 이후에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꼭 한국에 온 것 같다. 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맙다. 적지 않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은 내 인생에서도 매우 특별한 경험이자 추억이다. 그렇게 추억을 공유한 하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한국 축구의 지형을 바꿔놓은 히딩크 감독. '뜨거움으로 가득했던' 2002년 월드컵도 어느새 10주년을 맞았다.

조만간 히딩크 감독을 국내에서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7월5일 K리그 올스타전에서다. 이번 K리그 올스타전은 2002월드컵 10주년을 맞아 2002월드컵 4강 멤버 팀과 2012시즌 K리그 올스타팀이 맞붙는 빅 이벤트로 치러질 계획이다.

히딩크 감독이 빠질 수 없는 이벤트인데 문제는 일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이 소속팀 안지가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에 출전, 관련 일정이 7월5일 K리그 올스타전 전후로 잡히면서 일정 조정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세기를 띄워서라도 K리그 올스타전에 참여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역시 그다운 추진력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월드컵 당시 했던 말 중 또 하나 잊지 못하는 코멘트는 "네덜란드 없는 월드컵은 있을 수 있지만 팬 없는 월드컵과 축구는 있을 수 없다"이다. 히딩크 감독이 7월5일 올스타전에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팬들이 10년 전을 추억하고 또 2012시즌 K리그 스타플레이어들을 지켜보면서 그 힘이 온전히 K리그로 향했으면 한다. 그게 아마도 히딩크 감독이 말한 토양과 토대를 바꾸는, 오래 돌아가더라도 바른 곳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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