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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일상이야기

테디베어 곰돌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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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클래식 테디베어 레플리카. 저자 소장품.

곰 인형은 오랫동안 유년기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장난감이다. 부드러운 천과 털뭉치로 만들어진 곰인형은 아이들의 잠자리 친구, 꿈나라의 동반자였다. 우리나라에서 곰 인형은 "곰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별 다른 곰 인형 상표도 없는 상황에서, 곰 인형은 "곰돌이"라는 이름으로 대표적인 유년기 장난감 대열에 자리잡았다. 그러던 90년대 초반 곰 인형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테디베어(Teddy Bear)다. 소규모 제작 동호회에서 시작해, 이제는 곳곳에 테마 박물관까지 생길 정도로 대한민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진 이름, ‘테디베어’에 대해 알아보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미담과 테디베어의 탄생

사실 테디베어는 우리말의 “곰돌이”에 해당하는, 곰 인형을 두루 지칭하는 단어다. 테디베어를 곰 인형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어떤 모습의 곰 인형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테디베어는 특정한 디자인도, 이름에 대한 상표권도 없는 보통 명사다.

테디베어의 역사는 10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미시시피에서 사냥을 하던 중 새끼 곰을 살려준 적이 있다. 이러한 살생유택의 미담은, 유명한 신문 만화가 클리포드 K 베리먼(Clifford K. Berryman)이 이것을 소재로 한 만화를 발표할 정도로 미국 내에서 이슈가 되었다.

테디베어라는 이름은 1901년 시어도어 루즈벨트(애칭 테디) 대통령이 미시시피에서 사냥을 하던 중 새끼 곰을 살려준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뉴욕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모리스 미첨(Morris Michtom)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직접 곰 인형을 만들어 자신의 상점에 전시한다. 그는 곰 인형에 “테디의 곰(Teddy's Bear)"(테디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애칭)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바로 이때부터 ‘테디스베어’, ‘테디베어’는 곰 인형을 대신하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그는 직접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 이름 사용 허락을 받았다고 전한다.) “테디의 곰”이 인기를 얻자, 그는 이후 영국인 버틀러 형제(Butler Brothers)와 함께 ‘Ideal Novelty & Toy' 라는 회사를 만들고 본격적인 테디베어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슈타이프 사의 PB 55 레플리카. <출처: (CC)Rotatebot at wikipedia.org>

같은 시기, 독일의 슈타이프사(Steiff)는 인형 속에 내용물을 채워넣고 몸체와 손과 발을 실로 연결한 ‘조인트베어(jointed bear)’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립자 마르가레테 슈타이프(Margarete Steiff) 여사가 제작한 이 곰 인형은 1903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장난감 박람회장에서 ‘Bar PB 55’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이 인형은 독일 시장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나, 루스벨트 미 대통령에게 선물로 전해지며 미국에서 점차 유명세를 탄다. 이후 바이어 조지 보그펠트(George Borgfeldt)를 통해 3,000개 넘게 미국에서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이처럼 ‘테디베어’라는 명칭의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누가 봉제 곰 인형을 처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확실한 사실은, 최초의 근대적 곰 인형이 20세기 초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리스 미첨과 슈타이프의 테디베어가 나오기 전에는 곰 인형이 없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실, 그 전에도 곰 인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테디베어가 큰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테디베어와 기존 곰 인형의 차이점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리스 미첨과 슈타이프의 곰은 봉제로 만들어진 관절이 움직이는 곰 인형이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곰 인형은 실제 곰의 모습을 복원한 형태였다고 전해지는데,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서 있고, 팔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며, 심지어 실제 곰의 털로 만들어진 인형도 있었다고 하니, 테디베어의 귀여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모리스 미첨과 슈타이프를 통해 테디베어가 알려진 후, 여기에 다른 제조업체들이 하나 둘 테디베어 만들기에 가세하기 시작했고, 1906년 [Playthings]란 장난감 잡지에 소개되면서 테디베어는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09년 클래식 테디베어 레플리카. 저자 소장품.

손바느질로 제작된 봉제 인형, 아이와 어른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

독일과 미국 여러 곳에 테디베어 전문 제작 회사가 설립되면서, 1910년대부터는 테디베어의 디자인도 다양해진다. 목각으로 만들어진 곰, 턱시도를 입은 곰, 항해사 곰, 병정 곰, 오르골과 결합된 곰인형 등 새로운 형태의 테디베어가 제작 수출된다. 또한, 테디베어 장난감 산업은 베디베어의 의상과 악세서리, 돌하우스(Doll House), 동화책으로 분화되면서 남녀 아이들이 모두 사랑하는 장난감이 된다. 이어 1920년대부터는 실용적인 재료의 사용으로 세탁도 가능해졌으며 가격도 초창기때 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진다.

1912년 테디베어 오델로 타이타닉 레플리카. 타이타닉의 재난을 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디베어. 저자 소장품.

초창기의 테디베어는 장인들에 의한 꼼꼼한 수작업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테디베어가 서구인들의 맹목적 사랑을 받게 된 계기는 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일 것이다. 산업화가 한창일 무렵, 유럽에서 시작된 이 세계 전쟁의 포화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는데, 모든 소비재 공장은 군수품 공장으로 전환되었고, 장난감 공장도 예외 일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기계 설비 없이도 생산 가능한 물건이 테디베어였다. 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손바느질로 만든 전통적인 형태의 봉제 인형인 테디베어는 어린이 뿐 아니라 전쟁에 상처입은 성인들까지도 치유해주는 장난감으로 자리잡게 된다.

대량생산의 트랜드, 수집품으로

[테디 베어]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은 엘비스 프레슬리

초창기의 테디베어가 장인들에 의한 꼼꼼한 수작업에서 완성된 유럽과 미국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면, 1950년대 이후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테디베어는 모든 계층이 가질 수 있는 대중적 장난감이 된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테디베어]라는 곡을 발표할 정도였다. 잠깐, 바비인형(Barbie Doll), 지아이조(G.I.Joe) 등의 액션피규어가 미국 아이들의 관심을 사면서 상대적으로 테디베어의 인기가 시들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텔레비전에 디즈니사의 [곰돌이 푸(Winnie the pooh)]와 영국엑센트로 말을 하며 더플코트를 입고 다니는 곰 인형, 패딩턴(Paddington)이 등장해 인기를 끌며 테디베어는 다시 주목을 받는다.

테디베어에 대한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은 시대별로, 나라별로 테디베어가 체계적으로 분류되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형태, 재료, 기능, 인형에 숨겨진 일화들까지 더해져 테디베어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넘어 성인들의 수집품으로 성장하게 된다. 1910년대 초창기 테디베어 인형들은 한정판 복각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낡은 테디베어 들은 전문 감정사에 의해 고가의 예술품으로 경매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독일 슈타이프사의 오리지널 테디베어는 상태에 따라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장에서 30만 달러까지도 호가한다고 한다.

테디베어의 역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테디베어 아티스트(Teddy Bear Artist)다. 테디베어 아티스트의 등장은 19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테디베어 수집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테디베어 콜렉터들은 대량 생산된 테디베어를 넘어 점차 전통적인 디자인의 초창기 오리지널 테디베어를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버려졌던 낡은 인형들의 복원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럽게 테디베어를 복원하는 테디베어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게 된다. 테디베어 아티스트들은 초창기 테디베어의 바느질 방법, 재료, 형태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사실 오늘날 테디베어가 전성기를 누리게 된 것은, 이러한 테디베어 아티스트들의 공이 크다. 그들은 테디베어 관련한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형성하며, 테디베어의 역사를 다듬고 문화를 전파했다. 아티스트들의 정기적 모임이 열리고, 테디베어 잡지의 창간과 테디베어 전시회, 퍼레이드등의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국가를 너머 교류하며 테디베어의 영향력을 넓혀갔다. 현재 전 세계 테디베어 아티스트들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테디베어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매년 발간되는 테디베어 가이드.

영국 테디베어 지역행사.

새로운 곰 인형의 전성기를 열다

모리스 미첨이 만든 테디베어는 이제 만날 수 없지만, 슈타이프사의 테디베어는 여전히 고가의 고급 브랜드 테디베어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에게 이 인형을 선물할 만큼 슈타이프 테디베어는 이제 독일이란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슈타이프사는 초창기 테디베어의 복각판을 클래식 아이템으로 재생산하며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테디베어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특히 슈타이프사의 한정판 테디베어는 앙골라 산양의 양모를 사용하여 귀중한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한정생산품인 빅토리아 테디베어. 저자 소장품. 왼쪽 귀에 한정생산품을 뜻하는 흰색 태그를 달고 있다.

슈타이프사의 고전인 조티 테디베어. 한정생산품. 저자 소장품.

오늘날 테디베어는 그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양한 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러 가지 마케팅 캠페인이 대표적인데, 특히 유명 의류 브랜드에서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칼 라거펠트, 폴 스미스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독창적인 디자인의 테디베어를 선보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TV, 영화 등의 채널에도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등장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 중반 ‘테디베어 만들기’ 문화 강좌가 시작된 이래, 한국테디베어협회의 출범과 연이은 테디베어 뮤지엄의 개관으로 테디베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테디베어 아카데미는 수많은 테디베어 전문 아티스트들을 배출했으며, 현재 이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 무대에서 열심히 테디베어를 만들고, 또 알리고 있다.

소박한 봉제 인형에서 시작된 테디베어의 역사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씌여지고 있다. 곰 인형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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