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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축구

[풋볼리스트] 호날두에게 에이스의 자격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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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자 에이스로서의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호날두 (사진=연합뉴스)

[풋볼리스트=바르샤바(폴란드)] 서호정 기자= 조별리그 2라운드를 마쳤지만 죽음의 B조는 여전히 안개정국이다. 2승을 거둔 독일이나, 2패를 안은 네덜란드 모두 8강 진출과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FIFA 랭킹 3, 4위에 올라 있는 두 팀의 이름값에 가려진 덴마크와 포르투갈은 각각 1승씩을 챙기며 역시 8강을 꿈꾸고 있다. 13일(유럽 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르보프에서 격돌한 두 팀의 대결에선 포르투갈이 3-2 펠레스코어로 승리했다.

유로2012를 치르는 포르투갈 대표팀을 논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선수는 역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하지만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팀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선수는 호날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계속되는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며 역적이 될 뻔 했다. 덴마크전 뿐만이 아니었다.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호날두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 가짜 에이스로 전락한 호날두
2011/2012시즌 호날두의 득점 페이스는 경이로웠다.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가 기록한 골은 리그 46골, 챔피언스리그 10골 등을 포함 총 60골이었다. 경기당 1.1골에 육박하는 놀라운 기록이다. 해트트릭만 7회에 달했다. 2010/2011시즌에도 리그 40골을 포함 53골을 터트렸던 그와 경쟁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라이벌 리오넬 메시 뿐이었다.

이런 놀라운 득점 감각은 유로2012에 나서는 호날두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비록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지만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득점력의 에이스를 보유했다는 것만으로 포르투갈은 성공적인 탈출을 꿈꿀 수 있었다. 주장 완장까지 찬 호날두는 그 책임감이 더 커졌다.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유로2012에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대회 뚜껑을 연 지금 호날두의 활약은 기대 이하다. 그는 2경기를 치른 현재 대회 참가 선수 중 로빈 판 페르시(슈팅 12회) 다음으로 많은 10회의 슈팅을 기록했다. 그 중 유효 슈팅은 4회. 그러나 득점은 없다. 판 페르시는 독일과의 경기에서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골을 만들며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지만 호날두는 그런 골마저도 없다. 위기에서 팀을 구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에이스다운 모습이 아니다.

부진의 절정은 덴마크전이었다. 전반에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 후반에 포스티가가 나가고 난 뒤에는 사실상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호날두는 수 차례 득점 기회를 잡았다. 특히 덴마크 골키퍼 안데르센과의 1대1 찬스만 두 번이 나왔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 중 한 번은 골키퍼 선방에, 한 번은 골대 옆을 빗나가는 슛으로 허망하게 날아갔다.

다행히 호날두의 침묵 속에도 포르투갈은 8강 진출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덴마크전에서 페페와 포스티가가 연속골을 넣으며 앞서갔다. 덴마크의 벤트너가 헤딩으로 두 골을 만들며 따라 붙었지만 후반 42분 교체 투입된 바렐라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뒀다. 호날두가 자신이 맞은 찬스에서 한 골만 넣었더라도 쉽게 도망갈 수 있는 경기였지만 포르투갈이 절실히 원했던 골은 에이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골이 아니라면 헌신적인 플레이에도 기대를 걸어 볼만 했지만 그 역시 볼 수 없었다. 에이스의 조건과 주장의 자격 모두 찾기 힘들었다.

실제 과거를 돌아봐도 호날두는 소위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유럽선수권과 월드컵에서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총 다섯 번의 메이저대회에 참가 중인 호날두가 기록한 골은 총 5골이다. 첫 대회였던 유로2004에서 그리스, 네덜란드를 상대로 각 1골씩을 기록했고, 독일월드컵에선 이란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유로 2008에선 체코, 남아공월드컵에선 북한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활약과 골의 순도 면에서 호날두가 제대로 된 존재감을 보인 것은 첫 대회였던 유로 2004 정도다.

포르투갈의 8강 진출이 걸린 네덜란드전에서 호날두는 에이스로서의 자격을 시험받는다 (사진=연합뉴스)

▲ 에이스의 자격을 묻다
이런 호날두의 메이저대회 울렁증은 포르투갈 대표팀의 에이스라는 그의 위치와 자격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덴마크를 상대로 골도, 팀 플레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자신의 플레이에만 온 신경이 몰렸던 호날두의 플레이는 1시간 뒤 독일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의 활약과 확연히 대조됐다. 고메스는 호날두나 메시는 물론 루니, 드록바 등의 공격수와 비교해도 확실히 존재감이 떨어진다. 최근 두 시즌 동안 분데스리가에서 절정의 골 감각을 기록하고 있지만 큰 경기에서 늘 움츠러들어 ‘약팀 킬러’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 없이 침묵, 유로2012를 앞두고 자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번 대호를 앞두고 일각에서 고메즈가 아닌, 큰 대회에 강한 클로제를 주전으로 예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메스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이번 대회를 통해 확실하게 바꿔 나가고 있다. 포르투갈전에서 경기 내내 침묵했지만 결국 헤딩 결승골을 넣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전에서는 환상적인 두 골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확 바꿔놓았다. 첫 번째 골에서는 완벽한 퍼스트터치와 유연한 턴, 그리고 마무리. 두번째 골에서는 공격수로서의 과감성을 보여주며 스트라이커이자 공격의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비판과 의구심은 씻겨지지 않았지만 고메스의 이런 플레이는 마치 호날두에게 에이스의 자격을 묻는 듯 하다.

호날두가 이번 대회에서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많지 않다. 당장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 경기는 8강 진출과 직결되는 만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모두 생사를 걸었다.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승리를 위한 골을 터트리는 것이 에이스의 숙명이라면 네덜란드전은 호날두가 자신에게 거는 조국의 기대를 채울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과연 그는 자신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날릴 수 있는, 에이스의 자격을 보여줄 수 있을까? 유로2012는 호날두가 정점에 서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또 하나의 산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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