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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악마의 변화구' 커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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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뀔 때마다, 유행도 바뀐다. 2011년에는 볼드 컬러가 하나의 트렌드였다면, 2012년에는 네온 컬러가 새로운 패션 컬러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한다. 2010년을 전후하여 부상한 스플리터와 포크볼의 성공은 이후 팜볼, 서클 체인지업 등 '가라앉는 변화구'계열의 공의 유행을 불러왔다. [그 덕분에 타자들은 뚝 떨어지는 공에 대한 대처법을 길러야 했고, 투수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구종들의 구사법을 익혀야 했다.]

그리고 2011년 좌완 용병 주키치가 '커터'라는 무기를 통해 LG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또한 올 시즌 한화가 영입한 박찬호가 커터를 구사하고 있는데, 박찬호의 커터는 현재 '악마의 변화구'로 불리며 좌타자를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좋은 변화구로 평가받고 있다.



박찬호의 국내 복귀와 함께 커터가 투수들의 새로운 무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타자를 현혹시키는 박찬호의 커터, 과연 어떤 무기이기에 좌타자에게 그토록 효과적인 무기로 작용할 수 있었을까.

커터는 직구를 던지는 방식으로 공을 잡되, 릴리즈 직전 중지로 공을 꾹 눌러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릴리즈 직전 찰나의 순간이 공의 움직임을 바꾸기 때문에 제대로 된 커터를 던지기 위해서는 굉장히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즉, 던지는 타이밍과 매커니즘이 직구와 거의 같되 움직임이 좀더 동반되는 일종의 '변형된 직구'인 셈이다. 움직임이 동반되는 만큼 같은 투수가 던지는 직구에 비해 구속은 다소 줄어들게 되나, 그 움직임이 상당히 미세하기 때문에 실제 직구에 비해 2~5km/h정도의 속도 차이가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직구와 커터 그리고 슬라이더 간의 움직임을 표현하자면 이런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직구와 슬라이더 사이에는 횡적으로 약 20cm정도의 움직임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직구와 커터 사이에는 평균적으로 약 10cm정도의 움직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직구를 예상하고 스윙하는 좌타자에게 커터가 들어갈 경우를 생각해 보자. 프로야구 공식구의 지름이 7.3cm인 점을 감안할 때, 그 커터는 야구 방망이의 스윗 스팟(배트를 휘들러 공이 맞을 때 그 힘이 가장 잘 전달되는 지점, 통상 배트 끝에서 약 17cm되는 지점을 일컬음)을 거의 완전히 피해가는 셈이 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직구와 슬라이더, 그리고 커터의 횡적인 움직임만을 나타낸 궤적이다.(단위는 피트)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커터는 직구와 거의 비슷하게 들어오다가 홈 플레이트 앞 10피트(약 3.3미터) 근방에서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한다. 통상적으로 타자가 공을 치기 위해 행동을 시작하는 순간이 홈플레이트 앞 20~25피트 지점인데, 공이 10피트 앞에서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한다면 타자가 이를 대처할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공을 때려내는 능력이 좋은 타자의 경우 찰나의 순발력이나 테크닉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을 것이나,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커터와 직구 사이의 구속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커터와 직구 사이의 구속 차이를 3km내외라 가정할 경우, 두 구종이 홈플레이트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길어야 0.01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0.01초동안 자신의 스윙 궤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커터의 움직임은 인간의 반응 속도를 능가하는 영역인 것이다. 그렇기에 악마의 변화구라 불리며, 또한 제대로 연마한 선수들에게 '최고'라는 수식어를 선사해 주었다.

예를 들어 토론토 시절 대표적인 싱커볼러였던 로이 할러데이가 부상 이후 커터를 통해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고,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는 커터 하나만으로 600세이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실제 우완투수가 던지는 커터가 좌타자에게 어떠한 궤적으로 날라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투구 궤적을 타석에 서 있는 좌타자의 시점으로 변환해 보았다.


  

(커터의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 좀더 굵은 선으로 표시.)

만약 여러분이 좌타자라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배트를 휘두르려는 찰나에 갑자기 공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온다면, 타자는 그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에 당황하게 되고 결국 제대로 된 컨택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위의 그림은 직구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간다는 가정 하에 둘 사이의 차이를 묘사한 것이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걸쳐서 들어오는 커터라고 한다면 타자가 느끼는 위협의 정도는 또 달라질 것이다.

변화구는 말 그대로 변화가 클수록 좋은 경우가 많다. 폭포수 커브, 프리즈비 슬라이더 등은 모두 움직임이 큰 변화구를 일컫는 말들이 아닌가.

하지만 커터는 조금 다르다. 커터는 너무 많은 변화를 가질 필요는 없다. 타자를 속일 수 있는 투구 매커니즘으로, 던지는 찰나에 약간의 힘을 줌으로써 스윗 스팟을 혼란시키는 정도의 움직임만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악마의 변화구, 커터가 될 수 있다. 만약 커터가 너무 많은 움직임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커터라기 보다 슬라이더라 부르게 될 것이며, 또한 커터로써의 효용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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