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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관련/프로야구

LG 이성진이 잠실에서 유광 점퍼를 입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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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은 프로에 입단한 뒤 지금이 가장 야구가 재미있다고 한다. "내 생각대로 공이 들어가고,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게 재미있어요." 이성진에게 야구는 즐거움을 주는 원천이다. (사진=백수진)

김기태 감독이 LG트윈스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2군에 숨겨져 있던 씨앗들이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LG는 올해 초, 체력테스트에 탈락한 선수들은 주전급일지라도 과감하게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했다. 캠프 참가자 전체 39명 중 11명이 프로 1,2년 차 선수들이었고 그 중 세 명은 신고 선수였다. 김 감독이 2군 사령탑을 맡으며 지켜봤던 제자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세 명의 신고 선수들은 올 시즌을 앞두고 모두 정식 선수로 전환됐다. LG 우완투수 이성진도 그 중 한 명이다.

이성진이 처음부터 신고선수 신분은 아니었다. 선배 박민규(삼성)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경남고를 이끌었고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4라운드 지명을 받은 기대주였다. 신고선수로 전환되고 2군에서 뛴 경력까지 합치면 올해로 3년차지만 공식적으로는 1년차 신인이다. 신고선수에서 정식선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루키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성진은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처럼 의욕에 가득 차있었다.

지난해에 정말 죽기 살기로 야구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 흐트러지기가 쉽다. 성인이 되는 동시에 중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자유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성진도 지명을 받고나서 마음이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이제 프로 선수니까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운동에 소홀했고, 그 결과는 신고선수 전환이라는 청천벽력이었다. 정식선수와 마찬가지로 퓨처스리그에서 뛸 수 있긴 했지만 충격은 충격. 시간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가끔 1군에 불려 올라가도 배팅볼만 던지다가 내려와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성진이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29경기 71패 평균자책점 5.38이다. 751/3이닝 동안 삼진 33개를 잡아냈다. 시즌을 앞두고 새로 익힌 변화구가 주효했다. 경남고 시절의 이성진은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손이 두툼해서 슬라이더를 던져도 날카롭게 나가지 못해 직구와 체인지업 두 가지로 승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진주 캠프에서 새벽까지 혼자 공을 1000개씩 던지며 연습한 결과, 3개월 만에 투심 패스트볼을 익혔다. "태어나서 그렇게 공을 많이 던져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성진의 말이다.

반드시 프로에서 통할 만한 주무기를 만들겠다는,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10월에 참가했던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는 강상수 불펜코치와 함께 자신 없던 슬라이더도 날카롭게 다듬었다. 또 올해 들어서는 써클 체인지업을 개발했고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빠른 시간에 많은 무기를 장착한 셈이다. “고교 때는 직구와 변화구 하나만으로도 통했기 때문에, 구종을 늘려야 할 필요를 크게 못 느꼈던 것 같아요. 프로에 와서야 그 필요를 절감했죠. 저도 제 스스로가 변화구를 그렇게 빨리 습득할 수 있는 줄 몰랐어요. 절실함이 만든 결과인 것 같아요.”

올해 1월에 주어진 스프링캠프 사이판행 티켓은 지난해 '죽기 살기로야구한 이성진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상이었다. 비록 가벼운 어깨 통증으로 조기 귀국하기는 했지만 생애 첫 해외 스프링캠프는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올 시즌 개막을 앞둔 3, 드디어 정식선수 신분을 되찾았다. 그동안 갈고닦은 투심과 써클 체인지업을 1군 마운드에서 던질 수 있는 기본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성진은 요미우리 주전급 타자들을 상대로도 씩씩하게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강한 상대를 만나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공을 던지는 투수다. (사진=백수진)

칠 테면 쳐라배짱을 던진다

이성진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h대 초반이다. 대체로 130km/h 후반대를 던지지만 팔 스윙이 빠르고 공을 때리는 능력이 좋아서 공이 묵직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같은 140km/h를 던져도 타자들은 145km/h로 느낀다.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고교시절까지 이성진의 특징이었다. 프로에 와서 변화구를 많이 익히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자신 있는 공은 직구라고 했다. 타고난 승부 근성과 배짱이 마운드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칠 테면 쳐봐라는 표정을 하고 타자들을 요리한다.

이성진의 배짱이 가장 빛을 발한 경기가 바로 지난해 10월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열렸던 요미우리전이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연습경기가 필요했던 요미우리는 아베, 오가사와라, 라미레스 등 1군 주전 선수들을 모두 내보냈다. LG의 선발로 나선 이성진은 요미우리 타선을 7이닝 1실점으로 제압하고 깜짝 승리투수가 됐다. “TV에서만 보던 선수들이 타석에 있으니까 신기하긴 한데 그냥 치려면 쳐보라고 던졌어요.” 경기 전 요미우리의 라인업을 보고 감탄했던 이성진이지만 마운드에서만은 상대의 명성에 주눅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 승리를 통해 이성진은 자신의 공이 1군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날 김기태 감독이 미야자키를 찾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1군에서 뛰기 위해 가장 보완해야할 점은 구속이다. 직구 구속이 오르면 새로 익힌 변화구들의 위력도 더 커지게 된다. “1km/h 올리는 게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지금 컨트롤은 좋은 편이고 구종도 많이 늘었으니까 구속만 조금 올리면 될 것 같아요.” 지난해까지 선발로 뛰었던 이성진은 올해엔 불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오랜 시간 여유 있게 몸을 풀었던 선발 투수와 달리 빠른 시간에 몸을 풀어야하는 부담이 생겼다. 몸이 덜 풀린 상태로 마운드에 올라가면 평소보다 구속이 더 나오지 않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몸 푸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1군 불펜에서 활용하기 위한 연습과정일지도 모른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

LG트윈스 홈페이지에서 트윈스선수단메뉴로 들어가면 선수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 많은 선수들 중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서 이를 보이고 웃는 선수는 많지 않다. 사진 속 이성진은 유독 이를 다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긍정적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도 말했던 단어가 바로 재미있다였다. 혼자서 그물에 공을 1000개씩 던질 때도 손끝에 감각이 조금씩 올 때 재밌었고, 그렇게 익힌 변화구로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낼 때도 재밌다. 어린 시절 그저 그런 평범한 실력으로 뛰어난 친구들에게 밀릴 때에도 운동은 그저 다 재밌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파트 옆 동에 리틀 야구단 감독님이 사셨어요. 아버지의 권유로 리틀 야구를 시작했는데 재미로 하다보니까 점점 야구의 매력에 빠졌죠.”

물론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리틀 야구단은 대체로 학교 야구부보다 강압성이 덜 하다. 기합을 받는 일도 드물었다. 리틀 야구로 야구를 시작한 이성진은 경남고에 입학하고 한동안 적응이 안됐다고 했다. “경남고가 만만한 학교가 아니거든요. 선후배 관계도 그렇고.” 프로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은 더 힘들었고 선배들에게 여전히 혼도 많이 났다. “근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 정도도 못 견디는 정신력으로 뭘 하겠나 싶어서 참고 견뎠어요.”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는 퓨처스리그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선수들에겐 꼭 필요한 덕목이다. 배팅볼 투수로 1군에 올라갔을 때도 이성진은 이것도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배팅볼 던지러 올라간다고 말 해줘요. 그럼 기운이 빠지긴 하는데 그래도 올라가면 감독님 눈에 한 번 더 띌 수 있잖아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언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는 퓨처스리그 선수들이 1년 내내 의욕을 갖고 운동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 구리 챔피언스파크 더그아웃에 붙어있는 이 문구는 이성진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성진의 올해 1차 목표는 LG의 유광점퍼를 입고 1군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2군에도 같은 점퍼가 주어지긴 하지만, 꼭 잠실 야간 경기의 쌀쌀한 날씨에서 꼭 입어보고 싶단다. 물론 그 다음 목표는 1군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것이다. “항상 배팅볼만 던지고 바로 2군으로 내려왔잖아요. 그렇게 다시 구리로 내려올 때마다 다짐했죠. 다음에는 배팅볼 투수로 올라오지 말자고. 정식 경기에서 공을 던지는 1군 투수로 돌아오겠다구요.” 그 다음의 더 큰 목표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일단 제게 주어진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가려구요.” 이성진의 말이다.

이성진의 올 시즌 현재(13) 퓨처스 기록은 8경기 13이닝 121홀드 2.77의 평균자책. 몸 상태도 좋지만, 무엇보다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과 의욕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매일마다 나와서 던지고 싶을 정도에요. 야구가 너무 좋아요. 지금 이 마음, 이 상태 그대로만 쭉 갔으면 싶을 정도에요.” 유광점퍼를 입은 그의 모습을 잠실에서 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그때가 되면,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투수가 되고 싶다는 이성진의 바람도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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