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특수부대와 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한 용의자 모하메드 메라(23세)의 죽음으로 프랑스정부는 그가 어떻게 프랑스에서 지난 20년 간 유례가 없는 최악의 테러사건을 벌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직접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메라의 신원이 보다 정확하게 공개된 목요일 경찰은 그가 지난 11일 동안 툴루즈 시내와 근처에서 7명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각종 진술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메라는 프랑스군 입대를 2번 시도하는 등 어딘가 소속될 곳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메라는 자신이 알카에다에 가입하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수요일 툴루즈에 있는 자택을 특수부대가 포위하고 있을 때 그는 경찰 측 협상전문가에게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반군지역 와지리스탄에서 알카에다와 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 정보기관들은 주장의 사실여부를 입증할 수 없었다. 프랑스 정부는 메라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미국의 탑승거부 명단에 속해 있다고 발표했다.
수사관들은 그가 몸에 매달은 카메라로 촬영한 “적나라한” 살인동영상을 회수했다. 3월 11일 군인을 살해했을 때 찍은 동영상에서 그는 “우리 형제들을 죽였으니 너를 죽이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메라는 살인행각에서 알카에다의 살해대상인 “유대인과 십자군(적군)”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파견한 군단
소속 군인 3명을 총격살인하고 툴루즈의 유대인학교에서는 아동 3명을 포함해 4명을 살해했다.
수요일 경찰은 그가 협상전문가에게 자신이 “프랑스를 무릎 꿇렸으며”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자기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요소를 선택할 수 있는 평행세계로 빠져 들었던 것 같다”라고 파리정치대학의 중동전문교수 장 피에르 필리우는 말한다.
정부가 생포를 원했기에 메라가 은신해 있는 아파트건물을 하루 이상 포위했던 경찰은 투항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결국 투항하지 않아 특수부대는 포위 33시간째인 목요일 아침 아파트에 진입했다. 메라가 “매우 폭력적으로” 자동총기를 쏘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고 내부무장관 클로드 게앙은 전했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그는 떨어지면서도 총을 쏘았다. 경찰이 대응사격을 벌이면서 주변은 총성으로 가득 찼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로 그를 바닥에서 발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공범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수사를 계속 벌이고 있다. 목요일 당시 형인 압델카데와 어머니가 구류 중이었으나 경찰은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2007년 이슬람반군이 유럽에서 이라크로 불법 이동하게 도운 혐의로 프랑스 테러방지기관이 형 압델카데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기소 고발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형과 어머니 휴대전화는 연결이 끊겨 있었으며 법적 대리인과도 연락할 수 없었다.
툴루즈 지역 알제리계 가정에서 태어난 메라는 이혼한 어머니와 형제 4명과 살았다고 지난 몇 년 간 그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들은 밝혔다. 현지 학교를 다녔으며 자동차수리공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최초 공개 시 그가 24세라고 밝혔던 검찰은 이후 나이를 23세로 수정발표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메라는 버스에 돌을 던진 혐의로 16세에 처음 법정에 섰다. 법정 소환되었지만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기소되지 않았다. 그 후 몇 년 간 그는 15번에 거쳐 다양한 혐의로 법정 출두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스쿠터 절도, 도난이 신고된 오토바이 판매, 스케이트장에서 라이벌 범죄집단과 싸움, 교사 모욕 등의 혐의였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교도소행을 피할 수 있었다.
2008년 메라는 변호인에게 “프랑스 국기를 수호”하기 위해 프랑스군에 입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병모집센터를 찾았으나 범죄기록 때문에 평가에서 탈락했다고 프랑스육군 대변인은 밝혔다.
얼마 후 메라는 노인의 핸드백을 낚아챈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툴루즈 근처 생쉴피스 라프앙트 교도소에서 18개월을 복역한다.
감옥에서 그가 정치화되었을 수 있다고 경찰은 추측하고 있다.
프랑스 법무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102명을 수용하는 셍쉴피스 교도소는 경범죄자가 복역하는 장소이다. 이런 곳에서 그가 극단적인 사상을 배웠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변호인은 말한다. 생쉴피스 교도소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출소 이후 그는 프랑스정부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여행을 떠났다. 2010년에는 아프가니스탄, 2011년에는 파키스탄을 방문한 것이다.
서양국적 사람들의 아프가니스탄 입국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단체의 도움 없이 메라가 혼자서 아프가니스탄을 갔다고 프랑스정부 관계자는 전한다. 그러나 수요일 대치 중 그는 탈레반과 손잡고 싸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여행했다고 협상전문가에게 말했다.
2010년 후반 아프가니스탄 여행 중이던 메라가 칸다하 검문에서 체포되어 유럽으로 강제출국되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내부 관계자에 따른 당시 사건 이후 그가 미국의 테러용의자 탑승금지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정부 역시 그를 이슬람반군 용의자 감시명단에 올렸다.
탑승금지 명단을 주관하는 FBI 테러방지국은 최근 살인행각 이전부터 메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왔으며 2010년 아프가니스탄 강제출국 사건도 기록했다.
2010년 말 그는 육군입대를 다시 시도하면서 외인부대에 지원했다. “참석하기는 했지만 평가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버렸다”라고 외인부대
대변인은 전한다.
2011년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파키스탄을 여행한 그가 A형 간염에 걸려서 귀국했다고 검찰은 발표했다.
귀국 후에는 프랑스 테러방지기관 조사를 받았다.
“관광하러 파키스탄에 간 거라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라고 목요일 프랑소와 몰린 검사는 말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메라는 정부수당 475파운드를 받으면서 조용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메라의 어머니가 살던 건물 주민인 그리고르 하루튜냔(16세)는 그가 모모라고 불렸으며 2개월 전 툴루스 레슬링교실에 나타났다고 전한다. 턱수염을 기른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으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포위 중 메라가 총기를 마련하기 위해 강도행각을 벌였다고 말했다고 발표한 몰린 검사는 앞의 발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전했다.
수요일 메라를 “집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참수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한 그는 추가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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