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봄. 일본 도쿄. 교육당국은 갑자기 닥친 이상 현상에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 있었다. 정초부터 출산 휴가원을 내고 교단에서 물러서 있는 여선생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66년의 경우, 1월~3월 세 달 동안 휴가를 요청한 여선생은 146명이었다. 그러나 67년엔 같은 기간에 209명이나 출산휴가를 떠났다. 도쿄도 당국은 결원을 메우려고 임시직 선생을 모집해 봤지만 젊은 여자들의 지원 또한 예년보다 현저히 저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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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딸 피하려다 빚어진 日여선생 부족 현상
이유를 알아보니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 전 해, 즉 1966년은 병오(丙午)년이었다. 이른바 '백말 띠'의 해. 일본에선 "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세다"거나 "60년에 한번 돌아오는 백말 띠 해 출생한 여자는 남편을 잡아먹는 사나운 아내가 될 팔자"라는 속설이 있었다.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런 말 많은 해에 굳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는 여자들이 많았다. 결국 66년 늦게야 임신을 하고 67년에 들어 출산하는 붐이 일어난 것이었다. 좀 엉뚱한 얘기 같은가. 그러나 사실이다. 매 해를 12지 상징동물의 해로 삼아 거기 빗대 길흉화복을 점치는 현상이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21세기 과학문명이 발달해 미신 따위는 발붙일 데가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요즘도 이런 12지 점복(占卜)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의 띠 동물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또 그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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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한국에서도 말띠 딸 출산에 대한 걱정
말띠, 정말 팔자가 센가?…천만의 말씀 1966. 1. 1 [경향신문] 1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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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한국에서도 66년 백말 띠 해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신문들은 그해 1월1일 '말의 해' 특집을 내면서 "백말 띠 여성이 드세다는 건 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11면 전면을 털어 "말띠, 정말 팔자가 센가? … 천만의 말씀"이란 기사를 실었다. '말띠 소동'은 "현해탄 건너 섬나라에서 '밀입국'한 것"이며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일본인들이 '여자들 기를 꺾으려고' 만든 말"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못미더웠을까. 신문은 "조선시대 4명의 말띠 왕비가 있었는데 이들 모두 후일 왕으로 등극한 아들을 낳았다"거나 "노벨문학상 수상 여류작가, 세계적 발레리나 등이 말띠 생"이라고 소개하는 기사를 덧붙였다. 압권은 그해 환갑을 맞은 백말 띠 산부인과 여의사의 발언. "병원에 찾아와 말띠 걱정을 하며 임신중절 요구를 하는 여인들에게 '나를 봐라! 백말 띠지만 행복하게 사는데 무슨 소리냐?'고 타일러 보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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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보면 말띠 딸을 낳을까 두려워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인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그해 출생률이 급감했듯 한국서도 그런 조짐이 있었다는 해석을 할만하다. 그러나 한국 통계청이 내놓은 '연도별 출산율 및 출생인구 남녀 비'를 보면 66년에도 '특별한 이상'을 찾기가 어렵다. 즉 65년(뱀띠) 신생아가 92만5천, 67년(양띠) 98만6천명인데 그 사이에 낀 66년 신생아는 95만3천으로 '의미 있는' 수의 변화를 잡아내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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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용 범띠 피하라! 통계에서 드러나는 띠 선호도
그러나 그러던 것이 꼭 12년 후 말띠 해, 78년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69, 70, 71년 3년간 출생아가 100만을 넘었지만 72년 이후 산아제한 효과로 90만 명대, 75년부터 82년까지는 80만 명대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 사이, 76년과 78년은 각각 그 앞뒤의 해보다 8만~11만 명이 덜 태어나는 출생 급감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75년(토끼띠) 87만이던 신생아가 76년(용띠)엔 79만으로 뚝 떨어졌고 77년(뱀띠) 82만으로 조금 올랐다가 78년(말띠) 75만으로 다시 7만 명이나 감소했다. 말띠 해가 지나고 난 79년(양띠)엔 신생아가 86만으로 전해보다 무려 11만 명이 더 태어났다. 그러니까 용띠 해와 말띠 해만 신생아 숫자가 전해보다 급격히 떨어지고 이듬해 신생아는 불쑥 느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용띠 역시 "여자 용띠는 남자 어떤 띠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특히 돼지띠와는 상극"이라거나 "말, 용, 범띠 여자는 드세다"는 속설 탓에 여아 출생을 기피하는 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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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범띠 해…딸 낳지 않을래요" 1997. 7. 25 [동아일보]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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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때문에 출생 신고 미루기까지..
20대 신랑 '희한한 결혼 각서' 1997. 9. 1 [경향신문] 2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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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 말띠 역시 통계상으로 보면 수난을 겪었다. 64만9천명이 출생해 그 전해들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곧바로 이듬해 70만9천명이 출생신고를 해 무려 6만 명이 늘었다. 이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말띠 여아 기피현상이 출산통계에 나타난 것"이라며 "실제 출산을 91년으로 미룬 경우도 있겠지만 낳기는 90년에 낳았어도 출생신고를 미루다 91년에 신고해 '양띠'로 만들어준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생신고는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안에 하되 이를 어기더라도 최고 5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별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니까 여아의 경우 시집갈 때 "00띠라 팔자가 드셀 것"이란 말을 듣느니 아예 출생신고를 늦춰 띠를 바꿔주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12지 띠가 뭐기에 평생을 따라다니는 운수 고리가 되는지, 아무튼 부모 입장에서는 그저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심정에서 출생일 허위신고도 서슴지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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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막힌 사연도 있었다. 1998년은 범띠 해. 역시 여자의 띠로는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는 해였다. 한 신문은 97년 10월 결혼하는 한 신랑이 신부 댁에 "98년 5월까지는 절대로 아기를 갖지 않겠다. 만약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써주고 결혼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결혼하자마자 임신해 애를 낳으면 범띠, 아들이면 괜찮지만 딸이면 팔자가 셀 테니 무조건 98년 출산을 하지 말라"는 장모의 다그침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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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의 해' 1999년, 신생아 출생률 급감
이즈음엔 또 묘한, 띠 풀이 숫자풀이 출생 조절 이야기가 나왔다. 1999년은 토끼띠 해로 꼭 기피할 띠는 아니지만 9자가 세 개나 든, 이른바 '세 곱 아홉수의 해'. 거기다 토끼띠는 "도화 살이 있다"는 말도 있으니만큼 출생을 피하는 게 좋다는 얘기가 나온 것. 거기 덧붙여 "2000년이 새천년의 시작이며 힘차게 기상하는 용띠 해니 가급적 99년 출생을 삼가고 2000년 출생을 도모하는 게 좋다"는 얘기가 민간에서 빠르게 퍼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먹혔는지 모르나 실제 1999년 신생아는 61만4천명이던 것이 2000년에는 63만4천5백 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2001년 신생아가 55만으로 뚝 떨어졌으니 역시 '2000년 출생'엔 뭔가 조절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사실 1999년엔 언론도 "1999년 태어나 1000년대의 맨 막내로 사는 것보다 2000년 태어나 밀레니엄의 문을 연 신세대로 사는 게 나을 것"이라며 공공연히 출생조절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환영 못 받는 세기말 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신생아 숫자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드러난 것은 2007년이다. 이른바 '황금 돼지의 해'. "이 해 태어나는 아이는 재물 운을 타고 난다"고 해 출산 붐이 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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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생 환영 못받는 '세기말 아이' 1999. 2. 22 [경향신문] 27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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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06년 신생아는 44만8천, 08년이 46만5천인데 반해 그 사이에 낀 07년엔 49만3천 명이 태어났다. 앞뒤 해보다 각각 2만~3만 명이 더 태어난 것. 그렇게 태어난 모두가 다 재물 복을 누릴 것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얘기, 운수가 대통한다는 풀이에는 일단 편승하는 게 낫다"는 부모의 심리를 탓할 길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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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흑룡의 해,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지..
돼지띠 여자·개띠 남자 운전 조심 1999. 4. 23 [매일경제] 39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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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별 운세에 대해 사람들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니 보험사들조차 묘한 띠별 통계를 내기도 했다. 1999년 S보험은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띠별 사고발생률과 손해율을 발표했다. 96년부터 2년간 개인용 자동차보험가입자 380만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돼지띠 여자와 개띠 남자의 사고발생률이 다른 띠의 남녀보다 높다"는 것. 돼지띠 여자는 100명당 9.6명, 개띠 남자는 100명당 7.8명이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라는 것이 100명당 78명에서 71명 사이, 96명에서 86명 사이에 분포해 별 의미가 없는데도 마치 띠별 성격이 드러난 듯 호들갑을 떤 것이었다. 이 역시 사람들이 띠별 성격과 운세, 궁합 등에 유별난 관심을 쏟는 걸 알기 때문에 읽을거리 겸 회사 PR용으로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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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용의 해다. 벌써 용의 해가 온 듯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설날인 23일부터가 진짜 용의 해다. 76년 대만에서는 "용의 해 태어난 아이들이 일생 부귀와 명성을 누린다."는 속설 탓에 다산풍조가 번질 것을 우려해 믿을 게 못 된다는 갖가지 통계를 대며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듬해 조사해보니 42만3천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70년 이후 최고의 출생률을 기록했다. 88년, 용의 해 베트남에서도 신생아 러시가 기록됐다. 60년만의 흑룡의 해라는 올 임진년 또 어떤 출생통계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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