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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일상이야기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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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c) michell zappa at commons.wikimedia.org>

 

 

일본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Kenzo Takada, 高田賢三, 1939.2.27~) 는 철옹성같은 파리의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최초의 동양인 디자이너이다. 서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국적인 취향이 아니라, 이방인 스스로가 발신하는 매력적인 에스닉 룩(Ethninc Look)의 아름다움은 1970년대 파리 패션계를 열광시켰다. 겐조는 여유로운 원단들의 평면재단, 다채로운 컬러의 사용, 전통과 새로움을 특징으로 하는 신선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며, 그의 의상들을 통해 삶의 환희(joie de vivre), 조화, 범세계성을 노래했다. 그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 “겐조(Kenzo)”는 1993년 럭셔리 브랜드 회사인 LVMH에 인수되어 파리 프레타 포르테의 중요한 패션 하우스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히메지 출신의 일본 소년, 패션을 꿈꾸다

다카다 겐조는 1939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찻집에서 태어났다. 겐조의 아버지는 5번째 아이이자, 3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현명한 셋째 아들’이라는 뜻의 ‘겐조(賢三)’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에 걸맞게 명석했던 겐조는 학과성적이 매우 우수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조용한 소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또래 소년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누나들의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을 즐겼다. 패션 잡지 속 외국 모델처럼 눈이 큰 예쁜 여자아이의 그림을 그리고, 잡지 부록으로 온 패턴으로 옷을 만들면서 어린 소년은 패션의 세계와 그것의 본고장인 유럽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

 

겐조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베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함께 간 기모노 매장에서 꽃, 새, 나무, 풀, 산, 강 등 아름다운 자연이 그려진 교 유젠( 京 友禅: 헤이안 시대에 교토를 중심을 발달한, 견직물에 있어 최고의 염색 방법) 실크 원단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패션이 자신의 길임을 직감한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도쿄로 건너가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에 진학하였다.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는 1958년부터 남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였는데, 겐조는 그곳의 첫번째 남자 신입생이 되었다. 생계를 위해 도장일을 하고 학교에서는 준코 코시노(Junko Koshino)와 같은 재능있는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그는 3년간 학업에 정진하였다. 1960년 겐조는 소엔(装苑) 잡지 패션 컨테스트에서 소엔상(装苑賞)을 수상하면서 일본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졸업과 함께 미쿠라(ミクラ: Mikura), 산아이(三愛: San-ai)와 같은 브랜드에서 기성복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기성복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은 젊은 고객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빠른 시간에 많은 디자인을 해내는 좋은 훈련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살던 도쿄의 아파트가 철거하게 되어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 행운이 찾아왔다. 이 보상금은 겐조가 항상 동경하던 유럽으로 향하는 여비가 되었다. 겐조는 편도 이등석 티켓을 구입하고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로 가는 배에 승선하였다.

정글 잽(Jungle Jap): 서구 패션에 기모노를 믹스하다

1965년 1월 겐조는 6주간의 바다 여행을 마치고 파리에 도착하였다. 불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26세의 왜소한 일본 청년은 파리의 문화, 파리지엔, 파리의 패션에 압도되어 생면부지의 도시 파리에 남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디자이너 부티크와 잡지사를 찾아가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계의 바닥부터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였다. 디자이너 루이 페로(Louis Féraud)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는 여러 백화점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후에 ‘Relation Textiles’에서 니트 디자인 테크닉을 익히게 되었다.

 

겐조에게 당시의 파리 패션은 아름답게 재단되어 흠잡을 데 없이 완성되고 몸의 곡선에 따라 꼭 맞는 “너무나 완벽한(too perfect)” 것이었다. 옷의 형태, 소재의 선택, 색의 조합 등 옷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착장하는 것에도 엄격한 규범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목격한 겐조는 파리의 오트 쿠튀르와 프레타 포르테가 더 이상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반체제 성향의 젊은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기존의 엘리트주의와 전통적인 것에 이의를 제시하는 저항적인 패션문화에 대한 요구를 간파한 겐조는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기로 하였다.

 

겐조는 1970년 파리에 입성한 지 5년 만에 문화복장학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티크 ‘정글 잽(Jungle Jap)’을 오픈하였다. 그는 앙리 루소(Henry Rousseau)의 이국적인 화풍을 연상케 하는 정글 그림을 내부에 가득 그려놓고, 동양적인 요소가 믹스된 새로온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자금이 충분치 않았던 겐조는 새로운 원단을 구입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일본에서 사온 유카타(浴衣: 목면으로 된 홋겹 기모노. 여름철의 평상복이나 목욕 후 착용하는 의복)용 프린트된 실크와 면 원단, 주변 벼룩 시장에서 구입한 값싼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상치도 않게 첫 컬렉션 작품 중 하나인, 마의 잎사귀 문양의 일본 직물로 만든 헐렁한 셔츠가 1970년 6월 [엘르(Elle)]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그는 파리 패션계에 새로운 스타로 등장하였다. 정글 잽은 곧바로 젊고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부상하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1970년대 초반 겐조의 스웨터 – 기모노의 직선적인 평면 재단과 앞여밈 형태가 특징적이다.)

 

그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게이샤들의 화려한 자수와 프린트의 기모노처럼 한 벌의 의상에 체크 무늬와 꽃무늬, 스트라이프 문양들을 섞어서 제작한 옷들은 동일한 원단으로 상·하의 한벌을 제작하는 엄격한 규칙의 파리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큰 활력을 가져왔다. 밝은 색의 사용, 꽃, 줄무늬, 체크 문양등의 자유로운 조합뿐만 아니라 겐조는 기모노의 직선적인 평면 구성을 도입한 디자인들을 선보여 실루엣 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1960년대에 주를 이루었던 좁은 어깨와 폭이 좁은 소매의 날씬한 실루엣에서 탈피, 진동 둘레가 넓은 소매와 다트 없이 헐렁하게 직선 라인으로 재단된 풍성한 옷들을 여러 겹 겹쳐입는 넉넉하고 풍성한 디자인을 발표하였다.

 

일본의 복식학자 후카이 아키코(深井晃子)는 겐조의 일본 전통의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기존의 서구 디자이너들이 기모노 스타일을 차용했던 것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것이라고 하였다. 폴 푸아레(Paul Poiret), 잔느 랑방(Jeanne Lanvin) 등과 같은 서구의 디자이너들은 기모노의 화려함과 같은 감각적인 측면에만 주목하였다. 그들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신비로운 동양의 관능미, 화조풍월(花鳥風月: 꽃과 새는 풍월(風月)과 함께 자연의 정취를 대표한다는 뜻에서 아취(雅趣) 또는 풍류(風流)를 비유하는 말)을 상류층을 위한 오페라 코트 등의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시켰다. 반면 겐조는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유카타와 기모노를 영감의 근원으로 삼아 젊고 편안한 서민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1970년대 패션의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다카다 겐조는 파리 거리에서 젊은이들과 그들의 패션을 관찰해 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일본 고유의 전통의상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너무 일본스럽지 않은, 캐주얼하면서도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갖는 옷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일본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인 겐조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시대 겐조의 활약은 ‘기모노 슬리브(kimono sleeve)’라는 단어를 패션 용어 사전에 올라가게 만들었고, 1980년대 일본계 디자이너들의 성공적인 파리 진출을 가능케 한 신호탄이 되었다.




겐조의 1976년 가을/겨울 컬렉션.
스트라이프 자켓, 헐렁하고 긴 셔츠와 바지, 꽃무늬 스커트에 숄 등 여러 겹을 겹쳐 입은 캐주얼한 레이어드 룩을 선보이고 있다.

 

 

문화의 혼합과 국경없는 패션: 빅 룩(Big Look), 에스닉 룩(Ethnic Look)

1970년대 중반 겐조는 이미 이브 생 로랑(Yves Saint-Laurent),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과 함께 파리 프레타 포르테(prêt-â-porter)의 주역이 되어 있었다. 그는 파리 기성복 조합(Chambre syndicale du prêt-â-porter des couturiers)의 멤버로 활약하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1976년에는 미국에 진출하면서 비속어를 포함한 ‘정글 잽(Jungle Jap)’이 아닌 ‘겐조(Kenzo)’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96년 겐조의 가을/겨울 컬렉션.
넉넉하고 여유있는 원단을 이용해 비구축적인 디자인의 ‘빅 룩’을 선보였다.


겐조를 1970년대 파리 패션을 대표하는 주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그가 선보인 넉넉한 오버사이즈의 의복, ‘빅 룩(Big Look)’이었다. ‘자유’를 평생 가장 중요한 테마로 생각한 겐조는 기교적이고 몸에 딱 맞추던 날씬한 실루엣 대신 넉넉한 원단으로 직선 재단한 옷들을 여러 겹 겹쳐 입어 부피감을 주는 빅 룩을 선보였다. “너무 큰 것이 곧 알맞은 사이즈다.(Much too big is the right size)”라고 주장한 겐조의 ‘빅 룩’은 르네상스, 로코코, 바로코 시대의 거대한 구조물에 의해 인위적으로 연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었다. 면 소재와 같은 자연 소재의 풍성한 긴 스목 셔츠(smock shirt: 작업용으로 주로 입었던 헐렁한 오버 셔츠), 꽃무늬 서큘러 스커트(circular skirt: 도련(botton hem; 블라우스, 코트, 스커트, 바지 따위의 단. 밑단)을 펼쳤을 때 원을 그리는 여유있는 스커트), 화려한 니트웨어가 누빔 재킷, 케이프 등과 함께 여러 겹 레이어드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피감을 형성했다. 긴 셔츠, 헐렁한 배기 팬츠, 텐트 드레스(tent dress: 어깨에서 아래쪽으로 향할수록 삼각형으로 퍼져내린 헐렁한 드레스) 등의 아이템을 추가하면서 그는 패션에 ‘빅 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가하였다. 특히 겐조의 ‘빅 룩’은 다채로운 컬러, 패턴, 소재가 혼합되고 어우러지면서 자유롭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겐조는 전통적인 일본 의상 외에 다른 문화권의 전통의상, 예술,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64년 파리로 오는 6주간의 바다 여행은 수많은 외국인들과 그들의 전통 문화, 외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었다. 미지의 것,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이국의 문화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에스닉 룩’을 겐조 디자인 하우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게 하였다. 그는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새롭게 창조된 디자인을 다른 디자인을 위한 출발점으로 사용하였다. 겐조는 전세계의 전통 의상으로부터 얻은 컬러, 패턴, 다양한 구성법 등을 혼합하여 패션계에 이국적인 취향의 미학의 시대를 열었다.

 

트위드 소재의 기모노, 바둑판 무늬의 사롱(sarong: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남녀가 허리에 두르는 민속의상), 꽃무늬의 페전트 스커트(peasant skirt: 농민들이 즐겨입던 소박하고 헐렁한 개더 스커트)등 이질적인 요소들의 예상치 못한 조합은 관습과 규칙들을 뒤흔들었다. 겐조는 기모노의 단순한 형태에 남미, 극동, 스칸디나비아의 자수와 디테일 장식을 혼합하기도 했다. 또한 스페인식 볼레로(bolero), 오스트리아의 로덴(loden: 두껍고 털이 있는 천)소재 재킷, 인도의 바지, 중국의 튜닉, 베두인족(Bedouin: 천막 생황을 하는 아랍 유목인)의 큰 숄, 브르타뉴 지방(Breton)의 앞치마, 심지어 디지니랜드의 미니마우스까지 겐조의 손을 거치면 현대적인 패션으로 재창조되었다. 그가 선보인 동아시아의 바틱(batiks)염색, 일본의 전통 염색, 페루의 화려한 니트웨어 문양, 브레이드(braid: 실로 엮거나 꼬아서 만든 끈), 아플리케 등과 같은 수공예 기법은 파리 패션계에 등장해 범세계적인 아름다움으로 인정받았다. 1970년대 유행하던 많은 스타일들 즉, 튜닉, 중국의 마오쩌둥식 칼라, 레이어드 룩, 숄, 길고 화려한 문양의 자카드 스카프, 페루 스타일의 다채로운 컬러의 니트, 털실 방울 디테일, 큰 사이즈의 사각형 모양의 점퍼, 기모노 슬리브, 헐렁한 조끼, 배기 팬츠, 프릴(frill)과 주름단 장식(flounce)의 타프타 드레스 등은 모두 겐조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다. 겐조는 당시 가장 많이 복제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였고, 후에 미국의 ‘리미티드 사(The Limited)’와 협업해 컬렉션을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1984년 겐조의 가을/겨울 컬렉션.
꽃무늬, 체크 무늬, 기하학적 패턴의 숄 등 여러 민속풍의 요소가 결합된 ‘에스닉 룩’으로 이국적 취향의 결합을 선보였다.

 

이국적 정취를 적극 반영한 겐조만의 독특한 디자인 정체성은 그 스스로가 동양과 서양, 양극적인 두 문화를 모두 체험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전통적인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프랑스를 새로운 고향으로 받아들였으며, 정글을 주제로 한 부티크를 오픈하고, 그의 향수에 ‘킹콩’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가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세계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완전한 일본인도 아니고 완전한 프랑스인도 아닌 다카다 겐조는 동·서의 두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거기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전 세계의 모든 문화를 겐조의 패션 세계로 초대하였다.

 

 

자유인 겐조와 패션 하우스 겐조(Kenzo)의 새로운 행로



2000년에 런칭한 향수 ‘flower by Kenzo’ 30ml. 이 시리즈는 꽃과 도시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100ml는 활짝 핀 꽃, 50ml은 활짝 피기 직전의 꽃, 30ml는 꽃봉오리 모양이 들어가 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상이함, 이국적인 것을 찬양하는 히피들의 시대인 1970년대는 겐조에게 ‘히피의 황제’, ‘1970년대 불후의 디자이너’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그러나 1980년대의 불황은 겐조에게 시련을 가져왔다. ‘성공을 위한 옷차림(Dress for Success)’이 강조되면서 전문직 여성들의 수트 착용이 증가했고, 낭만적이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겐조의 스타일은 가장 무도회 드레스, 옛 시대의 향수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의 원가 상승은 다양한 원단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그에게 사업적으로도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겐조는 부드러운 면 저지 꽃무늬 프린트를 개발하는 등, 적절한 비용으로 그의 디자인 철학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1983년 남성복 라인을 런칭을 시작으로, 겐조 진, 겐조 주니어, 겐조 베베, 겐조 메종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1988년부터는 향수 라인을 런칭하기도 했다. 겐조는 특유의 이국적 취향에 실용성과 활동성을 가미한 스타일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겐조의 디자인 하우스는 1993년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인 LVMH(Louis Vuitton Moet Hennessy)에 인수되었다. 대기업의 후원으로 안정적인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던 겐조는 1999년 60세의 나이에 “30년동안 일을 한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하며 돌연 은퇴를 선언하여 패션계를 놀라게 하였다. 겐조는 2005년 이후 ‘Gokan Kobo(오감의 작업실: workshop of the five senses)’라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에서 가구, 인테리어, 식기 등을 디자인해오고 있다. 2009년 70세가 된 겐조는 새로운 인생의 장에 들어섰다며 20년간 살아온 집과 함께 중국의 조각상, 아프리카 마스크 등 그가 평생에 걸쳐 수집해왔던 예술품을 모두 경매에 넘겨 처분하였다. 2010년 6월에는 파리의 작은 갤러리에서 꽃무늬 기모노를 입은 자화상 8점을 전시하는 등 은퇴 후에도 젊음의 정신과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일삼으며 지내고 있다.

 

겐조는 패션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파리로 건너가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혼합한 패션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계를 풍성한 색채의 꽃으로 물들였다. 젊음의 정신과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진정한 자유인 겐조는 프랑스인이 아닌 동양인이 파리에 패션 하우스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해보였다. 겐조는 파리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것이 그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회상하였다. 그의 새로운 꿈과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패션 하우스 겐조는 2003년부터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까지 이탈리아의 출신의 안토니오 마라스(Antomion Marras)가 바통을 이어받아 아트 디렉터로 활약했다. 안토니오 마라스는 겐조가 그랬던 것처럼 전통과 수공예를 기반으로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으나, 지나치게 예술적인 요소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7월 LVMH는 미국 출신의 캐롤 림 (Carol Lim)과 움베르토 레온 (Humberto Leon)을 새로운 아트 디렉터로 영입하는 인사를 단행하였다. 파리의 전통있는 겐조 디자인 하우스와 뉴욕 소호의 셀렉트 숍인 ‘오프닝 세레모니(Opening Ceremony)’의 공동 대표들의 이질적인 조합은 ‘부조화스러운 것들의 아름다운 하모니’라는 겐조의 디자인 정체성과 상통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겐조 디자인 하우스가 위트 넘치는 젊은 브랜드로 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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