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부위원장의 승계 이래 열린 첫 북미민간대화에서 북한은 대외관계 전환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시사했다. 이번 뉴욕시에서의 만남에서 양 측은 김정일 전 위원장 사망 이후의 한반도 지정학적 상황을 재고하기 위한 신뢰구축방안을 논의했다.
한 수석북한관계자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북한의) 새로운 지도층은 평화를 원하며 미국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 말했으며 다른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플루토늄 중단과 관련된 최근 베이징협의는 불가역적이며 북한은 이번 협의성공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북한이 플루토늄 프로그램의 97%를 사용 불가능하게 만든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다면 전체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양 측이 협정을 지키는 이상 (플루토늄) 생산중단은 불가역적이다.”
북한과 같은 정치체제에서 위의 발언은 최고위층의 명시적 승낙 없이 불가능하다.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는 발언은 김정일 전 위원장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미관계를 재시작하고자 하는 김정은 부위원장의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번 대화가 모두 가볍고 화목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북한측은 대화가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채택해야 하며 양자회담이 계속되는 협상에 파묻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석미국관계자는 북한측의 이와 같은 발언을 환영하며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한 조건을 개괄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또한 북한이 진정으로 북미관계의 근본적인 재시작을 원한다면 북한의 새로운 지도층이 비핵화 및 관련 안보사안에 대해 진전을 보이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북한이 이를 실행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추가 안보보장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해당 관계자는 “미국에 영원한 적이란 없으며” 양측의 핵심적인 조치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형성이 가능하다고 북한측에 말했다.
북한 대표들은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이며 차별적인 정책을 중단할 때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조인하고 제재를 푼다면 북한이 핵문제를 진전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측은 미국의 “적의”만 없었어도 “이를 억제하기 위한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미국측 대표가 비핵화 없이는 미국상원이 북미 평화협정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부위원장 치하의 북한은 어려운 정치경제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김 부위원장은 각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비핵화를 실행하는 근본적인 전략결정을 내려 유의미한 경제적 구조개혁을 시행하고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이 중국 및 베트남의 “개방”정책 채택 이후 행보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측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북한의 “새로운 목소리”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한미관계를 희생하면서 북미관계를 정상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언론이 한국에 피해를 주면서 북미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시아 4위이며 세계 14위인 1.2조 달러의 경제와 전례 없는 국제적 대외정책을 갖춘 한국 정치의 주동인은 더 이상 대북경쟁이 아니다. 이미 관계의 모든 면에서 확실히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대북억제와 국방에 집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미관계는 한반도의 문제를 초월한 견고한 협력자관계로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최근 메시지는 과연 진심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레이건 전 대통령이 소련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려 했을 때 세계에 밝혔듯이 신뢰는 언제나 확인 가능한 상호행동을 기반으로 한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및 덩샤오핑 전 주석처럼 역사적 진전을 이룩할 의지가 있는 지도자와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김정은 부위원장이 진심으로 고르바초프 또는 덩샤오핑의 전례를 본받고 싶다면 주요 장애물은 한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북한의 강경파 장군 및 당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핵심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자유화의 혜택을 거두는 “제3의 길”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필수과제이다.
관계정상화를 위해 북한은 군과 정권이 신성시하는 핵무기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 김 부위원장이 장군 등 핵심내부인사를 설득해 핵무기를 협상대가로 내놓게 할 수 있다면 이는 북한역사상 가장 중요한 방향선회이자 한반도 냉전 종식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 부위원장이 부친 및 조부의 정책과 혁신적으로 다른 이 길을 선택할 것인지 여부야말로 확인되어야 할 진정한 메시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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