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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hot-이슈

스포츠 스타는 운동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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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생 실습과 관련해 논란의 중심에 선 김연아(사진=연합뉴스)

아이스 포인트, 순수한 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는 온도. 김연아가 광고 중인 한 맥주 브랜드의 이름은 최근 몇몇 매체가 그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 혹은 시선들에 대한 은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5월 22일 CBS 라디오 [김미화의 우리들]에 출연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김연아의 교생 실습에 대해 쇼라고 말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김연아가 교생 실습을 한 진선여고의 학생, 그리고 교사는 김연아의 교생 실습이 성실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고, 대학이 자기 학교 출신 스타를 이용해 마케팅을 한다는 황 교수의 지적은 그 유의미성과는 별개로 팩트가 틀렸다는 점에서 일종의 난센스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그의 성급함을 비난하는 건 쉽다. 문제는 그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느냐다. 그것도 그렇게 싸늘한 시선으로.

왜곡된 팩트 속에 일그러진 김연아의 모습

학교 수업을 받는 것까지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된다(사진=연합뉴스)

황 교수가 어떤 루트를 통해 잘못된 팩트를 전달받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제의 방송 하루 전,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가 한 매체에 연재하는 칼럼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한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이미 그 전에 기고했던 글에서 교생 신분인 김연아가 교육적이지 못한 맥주 광고를 찍는 것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던 그는 5월 21일자 칼럼에서 ‘김연아는 자신의 강의 시간을 채우고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상은 상업적 활동 때문 아닌가’라고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진선여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연아는 다른 교생보다 10분 정도 일찍 퇴근하고, 그것도 학생들과 함께 하교를 할 때 발생할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한 학교 측의 배려로 받아들일만한 일이다.

또한 교생 실습 첫날 공개 강의를 한 것에 대해 ‘진선여고에 처음 나갔는데 그가 무슨 실습을 했으며 또 무엇을 배웠다고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교생 실습을 장난으로 아는가’라고 강하게 비난했지만 이 역시 매체들의 공개 강의 요청 속에서 그나마 학생들의 수업권을 지키기엔 첫날 강의가 낫겠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몇 가지 팩트들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 팩트들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기 위한 맥락은 제거한 셈이다.

냉정한 비판과 차가운 비난은 다르다

최근 모 스포츠 브랜드 광고모델이 된 김연아. 그런데, 그게 뭐(사진=연합뉴스)

앞서 아이스 포인트라는 표현을 썼지만, 어떤 대상이든 냉정하게 분석하는 태도 자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맞다. 대상이 김연아건 누구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공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그건 결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근거 없이 공격적인 말과 글은 폭력이 된다. 냉정한 시선과 단순히 차가운 시선은 그래서 다르다. 황 교수와 정 교수 건에서 김연아에 대한 비판은 명백한 허수아비의 오류다. 대학의 학벌 장사와 스타 특혜에 대한 그들의 문제 제기는 박수를 칠만큼 온당하지만, 정작 김연아는 이 비판에 썩 어울리는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두 사람의 말과 글이 이 분야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환기라도 시킬 수 있다면, ‘경쟁사 제품들을 휙휙 갈아타는 행태’라며 그의 CF 활동을 우회적으로 비난한 매체의 기사는 악의적인 인신공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실 허수아비의 오류라고 말했지만 지금 상황은 잘못된 이유로 대상을 비난한다기보다는, 비난하고 싶은 대상에게 이유를 가져다 붙이느라 엉뚱한 실수를 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는 수많은 연예인이 맥주 광고를 찍는 상황에서 김연아에게만 공인으로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정 교수의 이상한 잣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스포츠 셀러브리티에 대한 매체의 이상한 잣대
이번 김연아 건이 매체의 폭력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흥미롭다면, 이처럼 스포츠 셀러브리티에 대한 조금은 특이한 잣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정 교수도, 앞서 말한 한 매체의 기사도, 공통적으로 김연아에 대해 학생 혹은 선수로서 자기 할 일은 하고 상업적 활동을 해도 하면 좋겠다는 논지를 공유한다. 한동안 빙상에서 보지 못한 여제가 CF에선 쉬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보기 싫은 것을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말할 때 오류가 생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적어도 공적 매체에선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다. 매체의 몫은 팩트에 대해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불특정 다수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니까 운동만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역시 국민영웅이었던 박찬호와 박세리. 하지만 지금의 김연아, 박태환과는 전혀 다른 위치였다(사진=연합뉴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김연아, 박태환으로 대표되는 젊은 스포츠 셀러브리티들의 대두와 함께 본격화되었다. 과거에도 스포츠 스타들은 많았다. 멀리는 4전5기의 홍수환과 육상의 임춘애 등이 있었고, 전성기 박찬호의 인기는 단언컨대 지금의 김연아 이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CF 활동을 하고 공항에서의 옷차림이 ‘공항 패션’으로 화제가 되는 등 엔터테이너로서 소비되는 건 지금의 세대에서 확연히 두드러진다. 얼마 전 SBS [런닝맨]에 출연한 박지성 역시 다른 것보다 예능 센스로 화제에 올랐다.

문제는 이처럼 스포츠 스타가 소비되는 방식은 달라진 반면, 그들에게 요구하는 잣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스포츠 스타의 엔터테이너적인 활동은 여전히 가욋일 취급을 받는다. 만약 연기 못하는 연기자가 CF를 많이 찍는다면 CF용 스타라는 비아냥에 그치지만, 성적이 떨어진 운동선수가 CF를 찍으면 자기 본분을 잊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로마 쇼크 이후의 박태환이 그랬고, 과거 K-1에서 연패를 당한 최홍만과 최근 UFC에서 연패 중인 추성훈이 그러했으며, 손연재와 김연아는 늘 그런 비난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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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의 공항 패션이 화제가 되는 게 과연 큰 문제일까(사진=연합뉴스)

사실 현재 김연아가 운동에 대한 모티베이션을 많이 잃은 것, 그리고 박태환이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부진했던 것은 운동 외적인 활동 때문이라기보다는 올림픽 금메달로 정점을 찍은 이후의 공황에 가까웠다. 하지만 만약 CF나 방송 활동 혹은 패션에 대한 관심 같은 것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 한들 그것은 아쉬움의 이유는 될지언정 비난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스포츠 스타의 활약을 통해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얻는 것은 분명 고귀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 있어 해당 종목에서 뛰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본인의 꿈과 명예, 부를 위한 것이며 부진에 따른 불이익 역시 그냥 그들이 감수해야 할 것들이다.


빙상의 김연아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강요할 수 있는가(사진=연합뉴스)

지금의 상업적 활동은 운동선수로서의 활약 덕분이니 본분에 충실하라는 매체의 논리대로라면, 어차피 성적이 떨어지면 CF 역시 끊길 테니 자업자득인 셈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CF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운동 성적과는 별개로 그에게 상업적 효과가 있는 것이니 그걸 누리는 게 잘못은 아니다. 정 못마땅하면 CF용 운동선수, 방송용 운동선수라고 하면 될 일이지 해야 할 걸 안 한다고 하는 건 지나친 월권이다. 앞서 인용한 칼럼이나 기사들은 모두 김연아가 국가적 영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누리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국가 영웅이라는 철지난 담론으로 한 개인의 다양한 활동을 재단하는 것은 그들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김연아를 빙상에서, 박태환을 수영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그들이 운동하지 않는 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운동 외의 다른 활동에 집중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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