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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hot-이슈

'고위직 철밥통’ 만들기? 대선까지 100억 들여 55명 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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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딱히 할일도 없는데…55인의 재외선거관은 新 해외 철밥통?
재외국민 총선 2.5% 투표율에 효율성 논란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선거관으로 파견됐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모 서기관이 지난해 말 음주운전으로 미국 경찰에 적발돼 귀국 조치된 사실이 최근 뒤늦게 밝혀졌다. 이 사건은 선거관의 해외 주재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8일 중앙선관위와 주요 해외공관 등에 따르면 선관위는 재외동포 선거 관리를 위해 해외 28개국, 55개 공관에 55명의 선거관을 22개월씩 주재시키고 있다. 선거관 상주를 위해 드는 예산은 지난해 약 50억 원에 이어 올해 52억 원이다.

선거관 해외 파견은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의 재외국민 투표를 진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공직선거법에 근거한 파견이다. 하지만 과연 간부급 공무원 55명이 22개월씩이나 현지에 주재하는 게 예산 집행과 조직관리의 효율성 차원에서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선관위가 선거관들이 해외 파견 전에 이미 숙지했어야 할 내용 등을 교육하거나 토론한다는 명목으로 해외에서 모든 재외 선거관이 모이는 워크숍을 여는 등 방만하게 운용한 면도 지적되고 있다. 한 고위급 외교관은 “고위직 철밥통만 50개 넘게 늘어난 셈”이라고 비판했다. 선거관 파견이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선거일에 임박해 업무가 집중되는 선거관리 업무의 특성을 감안할 때 현행 파견제도는 과도한 예산 낭비라는 것이다.

그런 지적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등 재외동포 선거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투표율도 2, 3%대로 비슷하다는 것. 하지만 현 정부 출범 당시 작은 정부를 외치며 상징적으로 해외 주재관 자리를 하나라도 더 줄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 비교하면 55명의 장기 해외 파견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 “출장으로 될걸 1년전 파견… 선거관 1명당 年1억 들어” ▼

논란 ① 파견 기간과 규모 적절한가?

선관위는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1년 전인 작년 4월부터 선거관을 파견했다. 첫 재외국민 선거를 앞두고 각종 준비 및 홍보작업이 필요하고 모의선거까지 치러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한 선거관은 “해외에서 한국의 정치행위를 하는 것이어서 현지 정부와 사전에 협조할 사항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외공관의 한 다른 부처 주재관은 “선거관 1명이 상주하는 데 연간 1억 원가량의 비용이 든다”며 “선거를 앞두고 단기 파견이나 출장 형태도 가능할 텐데 굳이 선거관이라는 이름으로 장기 체재할 필요가 있는지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관리의 복잡성과 전문성을 인정하지만 22개월씩이나 장기 체재할 성격은 아니며 중요한 업무는 투표일 직전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외교관은 “선거관들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교민 홍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이고 대사관의 기존 인력을 활용해 진행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타 부처 주재관의 경우 여러 명이 행정요원 1명을 공동으로 두는 데 비해 선관위는 재외 선거관 1명당 1명씩의 현지 행정요원을 채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선관위가 해외에 55개의 포스트를 마련해 간부급 직원을 대거 파견하는 ‘대박’을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4·11총선의 재외동포 투표율은 2.5%에 그쳤다. 전체 재외선거 대상자 223만3193명 가운데 12만3571명이 선거인 등록을 했고 이 가운데 5만6456명만 투표를 한 것이다. 특히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 일시 체류자를 제외하고 영주권자로서 선거인 등록을 한 재외국민은 2만1052명에 그쳐 해외 영주권자의 참정권 확대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선관위가 28개국에 55명씩이나 파견한 결과치고는 실망스럽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낮은 투표율을 선거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선관위 측은 “전체 재외국민 230만 명 가운데 95% 정도가 투표권을 가진 대상자인데 55명이 나가서 선거업무를 한다면 산술적으로 엄청난 수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재외 선거관은 “효율성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외국에서 처음 실시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공정성이 중시됐고 선거 참여자가 적다고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논란 ② 재충전 기간까지 필요?


4·11총선이 끝나고 대선 투표를 위한 재외국민 신고등록이 시작되는 7월 22일까지 재외 선거관들은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기를 맞고 있다. 선거관들도 이 점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연휴를 이용해 가족여행을 떠나는 선거관도 있다. 반면 한국 학생이 많은 대학가를 돌며 선거 관련 강의를 하는 등 나름대로 할 일을 찾으려 노력하는 선거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선거관은 “앞으로 두 달 동안 대선 준비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과 개인적 준비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들을 총선 후 철수시켰다가 다시 파견하면 귀국과 재파견에 따른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밝혔다. 한 외교관은 “선거관 업무 자체가 일이 있다가도 없다. 비효율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정도의 비효율을 감수하겠다는 국가적 공감대가 있어서 선거관 직책을 도입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뉴욕 한인유권자센터 관계자는 “교민들의 눈이 많은 주요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에서 선거관의 음주운전 사고가 벌어졌을 정도면 교민이 적은 다른 지역은 어떻겠나”라며 선거관의 기강 해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선거관은 현장을 찾아 발로 뛰는 모습을 보였지만 일부 재외 선거관은 해이한 근무태도로 현지에서 눈총을 사기도 했다.

논란 ③ 도시 바꿔가며 해외 워크숍까지

재외 선거관들은 지난해와 올해 해외 3개 지역으로 나눠 2박 3일 일정의 워크숍을 열었다.

지난해엔 8월 말∼9월 초 2박 3일 일정으로 보스턴(미국) 도쿄(일본) 마드리드(스페인) 등 세 곳에 총 55명이 모였다. 선관위가 홈페이지에 올린 ‘재외 선거관 선거관리 실무연수회 개요’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워크숍 때는 간부 훈시, 재외선거 관리방향 시달, 개정 공직선거법 안내, 공보 홍보분야 지침 시달 등 파견 전 당연히 숙지하고 교육받으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세 시간에 걸친 재외선거 관리상 문제점을 토론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제3국에 모여야 할 프로그램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올해는 5월 중순 뉴욕(미국) 시드니(호주) 베를린(독일) 등에서 워크숍을 했다. 4·11총선 선거관리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평가하고 개선 보완책을 논의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한 재외선거관은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과거 사례에 대한 평가와 개선책 마련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중앙선관위가 각 선거관의 보고를 받아 종합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논란 ④주요국 재외선거관 상설화 추진 조짐

한번 생긴 자리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하는 게 공무원 조직의 생리다. 선관위는 일단 대선이 끝나는 내년 1월에는 선거관이 모두 철수하며 상주계획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속적인 선거 홍보, 현지 교민단체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대륙별로 하나씩 둘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이 제기된 적이 있지만 이것도 검토되거나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외선거관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미국 중국 일본 등은 평소에도 선거 및 정치제도를 연구하고 자료를 축적하기 위해 선거관을 상시 주재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미 기획재정부와 비공식 협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재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한 외교관은 “해외 선거제도 연구는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그때그때 단기 파견이나 출장을 가면 된다”고 말했다.

논란 ⑤ 재외선거관 파견보다 절실한 제도 개선

재외국민 선거제도의 효율을 높이고 선거관 파견에 따른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재외선거인 등록을 우편으로 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투표를 하기 위해 현지 공관을 직접 방문해 선거인 등록절차를 마친 뒤 투표기간에 다시 공관을 찾아야 하는 까다로운 투표절차를 바꾸면 선거관의 파견기간을 줄일 수 있다. 한 외교관은 “제도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금처럼 선거관을 파견해 홍보에 나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지난해 4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당 간 이해득실 때문에 처리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한 외교관은 “선거관의 파견기간을 최소화하고 일상적인 업무나 홍보활동은 현지 영사관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매뉴얼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 낭비를 줄이고 공공부문 효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던 이 정부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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