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면 10] '가장 위대한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18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 올해가 마지막임을 예고했던 리베라였기에, 자연스럽게 이 번 부상은 은퇴로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리베라는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I will be ok. I will be back"
리베라를 돌아보는 10개의 명장면을 뽑아봤다.
1995년 6월5일 : 트리플A 선발 7경기에서 2승2패 2.10을 기록하고 있었던 스물다섯 살의 리베라는, 베테랑 좌완 지미 키의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다. 5월24일 데뷔전에서의 성적은 3.1이닝 8피안타 5실점 패전. 하지만 리베라는 다음 경기에서 5.1이닝 1실점 승리를 따냈고, 6월5일 화이트삭스 원정경기에서는 8이닝 11K(2안타 4볼넷) 무실점(129구)이라는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냈다. 리베라는 선발 10경기(3승3패 5.94)에서 .304, 불펜 9경기(2승 4.24)에서 .121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듬해 양키스 불펜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1996년 5월26일 : 5월6일 화이트삭스전에서 7회 마운드에 오른 리베라는, 8회 2번째 타자 토니 필립스에게 안타를 맞음으로써 14이닝 연속 무피안타가 중단됐다. 리베라가 피안타 없이 막아낸 5경기에서 던진 이닝은 3이닝 3이닝 3이닝 2이닝 2이닝이었다. 리베라는 5월26일 시애틀전에서 댄 윌슨에게 적시타를 맞음으로써, 한 달 넘게 이어오던 26이닝 연속 무실점이 중단됐다. 1996년 한 해 동안 양키스 불펜에서 가장 바빴던 리베라의 성적은 61경기 107.2이닝 8승3패 26홀드/5세이브/3블론 2.09. 그 해 리베라는 130개의 삼진을 잡아냈는데, 이 후 리베라의 삼진수를 넘어선 아메리칸리그 불펜투수는 없다(NL에서는 2003년 가니에, 2004년 릿지, 2010년 마몰이 넘어섰다). 시즌 후 발표된 사이영상 투표에서, 리베라는 20승의 팻 헹겐과 21승의 앤디 페티트에 이어 3위에 올랐다.
1997년 4월16일 : 양키스는 1996년 월드시리즈 MVP 존 웨틀랜드와의 재계약을 포기하는 대신 리베라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하지만 리베라가 첫 6번의 세이브 등판에서 거둔 성적은 3세이브/3블론 4.00이었다. 극성스런 뉴욕 언론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3번째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날, 조 토레 감독은 크게 낙담하고 있는 리베라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 팀에 있는 한, 우리 팀의 마무리는 너뿐이다." 그 다음 경기에서, 리베라는 팀이 3-2로 앞선 8회말 1사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리베라는 첫 타자 프랭크 토마스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다음 타자 앨버트 벨을 병살타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9회를 깔끔하게 끝냈다. 토레와의 대화 이후, 리베라는 40세이브/6블론 1.58로 시즌을 마감했고, 누구나 인정하는 양키스의 새로운 수문장이 됐다.
환호의 순간엔 리베라가 있었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1999년 10월27일 : 올랜도 에르난데스와 데이빗 콘의 호투로 월드시리즈 1,2차전을 쉽게 승리한 양키스는, 3차전에서는 페티트가 무너지며 4회까지 1-5로 뒤졌다. 하지만 양키스는 이후 5회 채드 커티스와 7회 티노 마르티네스의 솔로홈런으로 2점 차를 만들었고, 8회 조 지라디의 선두타자 안타에 이은 척 노블락의 투런홈런으로 극적인 5-5 동점에 성공했다(글래빈 7이닝 5실점). 9회초 마운드에 오른 리베라는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10회말 다시 커티스의 끝내기홈런이 터졌다. 다음날에도 마운드에 등장한 리베라는 8회 2사 1,3루 상황에서 올라와 1.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거둠으로써 팀의 4연승 우승을 완성했다. 양키스가 1998-1999년 2년 연속 4연승 우승을 거두는 동안 리베라가 포스트시즌에서 기록한 성적은 18경기 12세이브/0블론에 평균자책점 제로. 한편 1998년 월드시리즈에서 트레버 호프먼이 'Hells Bells'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양키스타디움 음향 담당자는 이듬해부터 리베라가 등장할 때마다 같은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그가 고른 곡은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이었다.
2000년 10월14일 :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이었던 이 날, 리베라는 1.2이닝 세이브를 거둠으로써 화이티 포드가 가지고 있던 포스트시즌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33.1이닝으로 경신했다. 1997년 10월6일 디비전시리즈 4차전(클리블랜드전) 이후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23번이나 오르는 동안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던 리베라는, 2000년 10월18일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시애틀전)에서 점수 차가 넉넉한 상황에서 올라왔다가 3년하고도 11일을 더 이어온 무실점 기록이 중단됐다. 리베라가 포스트시즌 96경기에서 141이닝을 던지는 동안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0.70(42세이브/5블론). 이는 3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역대 최고 기록이다. 또한 리베라를 제외하면 20세이브을 넘은 투수조차 없다.
2001년 11월5일 : 리베라는 18개의 골드글러브를 따낸 그렉 매덕스 만큼이나 완벽한 수비력을 자랑한 선수. 그가 통산 1051경기에서 범한 실책은 단 6개로, 마지막 실책은 2004년에 있었다.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 양키스가 8회초에 터진 알폰소 소리아노의 솔로홈런에 2-1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는 당연히 리베라가 등장했다. 그러나 리베라는 선두타자 마크 그레이스에게 안타를 맞은 이후 댄 밀러의 보내기번트 타구를 잡아 2루에 악송구를 던졌다. 그리고 토니 워맥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음으로써, 1998년부터 이어온 포스트시즌에서의 23연속 세이브 성공이 중단됐다. 뒤이어 루이스 곤살레스가 때려낸 먹힌 타구가 끝내기 중전안타가 됨으로써,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경기 후 리베라는 담담하게 말했다.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2003년 10월17일 : 그래디 리틀 감독과 페드로 마르티네스, 팀 웨이크필드와 애런 분이 주연을 맡았던 이 날,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또 한 명은 바로 리베라였다. 8회말 호르헤 포사다의 2루타로 동점이 된 후 9회초에 등장한 리베라는, 무려 3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다. 마무리 투수가 된 1996년 이후 리베라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쳐 3이닝을 던진 것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리베라가 길게 끌고 가주는 동안 불펜이 바닥난 보스턴은, 1차전에서 6이닝 2실점 승리, 4차전에서 7이닝 1실점 승리를 따냈지만 이틀밖에 쉬지 못한 팀 웨이크필드를 10회말 마운드에 올렸다. 그리고 웨이크필드가 4번째 타자 애런 분에게 던진 공은 담장을 넘고 말았다.
2008년 9월22일 : 양키스가 7-3으로 앞선 9회초, 리베라는 세이브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리는 6581번째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이었다. 리베라는 브라이언 로버츠를 1루 땅볼로 잡아내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1923년 베이브 루스의 개장 첫 홈런과 함께 문을 열었던 양키스타디움은, 85년 동안 26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만들어낸 후, 리베라에 의해 문이 닫혔다(앤디 페티트는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승을 따냈다. 그리고 8회말 양키스의 마지막 타자는 데릭 지터였다).
2009년 6월29일 : 시티필드에서 열린 메츠와의 인터리그 경기. 3-2로 맞선 8회말 2사 1,2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리베라는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호프먼에 이어 통산 500세이브에 성공한 2번째 투수가 됐다. 하지만 그날 경기에서 만들어진 정말 놀라운 장면은 9회초에 있었다. 메츠 마무리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2사 1,2루가 되자 1번타자 지터를 고의사구로 걸렀다. 양키스의 2번타자가 더블 스위치를 통해 들어온 리베라였기 때문. 하지만 리베라는 7구 풀카운트 접전 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냈다. 리베라는 세이브와 함께 타점까지 챙긴 것. 원래 유격수였던 리베라가 메이저리그 18년 동안 타석에 들어선 것은 단 4번뿐으로, 나머지 세 타석에서는 3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했다.
2013년의 어느 날 : 모두가 손꼽아 기다린 이 날, 양키스타디움에 'Enter Sandman'이 울려퍼졌다. 불펜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는,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