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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hot-이슈

유치원에서 옷 벗는 아이들...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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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성교육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우리나라의 성교육이라고 하면 난자와 정자의 만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EBS

성폭력상담소에 한 유치원 교사가 심각한 목소리로 부모, 교사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뢰해 왔다. 담당교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 해당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짜리 아이들 사이에서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담당 교사에 따르면 남자아이 두 명, 여자아이 두 명이 빈 교실에 모여 옷을 벗고 서로 성기를 보여주고 만졌단다. 한 여자아이 엄마가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이 사실을 알았고, 유치원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유치원에 사건 처리 및 성교육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난감해진 유치원 교사들이 도움을 구하고자 상담소에 교육을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교육에서 나는 우선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어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 처리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아이들의 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성과 성적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문제의 사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적 행동, 폭력일까 놀이일까? 

 

최근 아동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에 대한 신고율도 증가하고 있다. 상담소에 적극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보호자와 교사들도 늘었다. 아동 성폭력 피해를 인식조차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덮어버린 과거에 비하면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연일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탓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과 관련한 모든 것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평소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보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아동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나 가까운 어른들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탓에 평소에 아이들의 일상에 귀 기울이고 대화 나누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성과 관련한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성폭력으로 걱정하고 고민에 빠질 필요는 없다. 서로 몸을 보여주거나 만지는 병원놀이, 소꿉놀이 등 아이들이 하는 성적 행동이나 놀이에는 대부분 큰 문제가 없다. 단지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보기에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다. 

 

앞서 언급한 네 명의 아이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도 상대방의 성과 인격을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성폭력 사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몸을 궁금해 하고 보여주기며 탐색하면서 논다. 어른들에게는 기겁할 일이지만 5, 6세 아이들의 발달과정에서 몸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궁금함이 재미있는 놀이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아이들에게 성은 재미있는 장난감
성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 가득한 어린이들에게 성은 재미있는 놀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어린이 인권감수성교실> 현장.
ⓒ 한국성폭력상담소


물론 놀이니까 무조건 괜찮다고 판단해 아이들 행동의 의미를 짚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아이들 놀이에서 성폭력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만약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아이들 중 누군가 몸을 보여주도록 강요하거나 강제로 몸을 만졌다면 이는 성폭력적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이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계속 하면 놀이가 아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이들과 정확하게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물론 이때에도 무작정 혼내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어 아이가 자신의 호기심과 감정을, 상대방을 존중하며 평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직 어리다고 내버려 두면 성폭력에 둔감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

 

 몸도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성(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하늘을 찌른다. 아이들에게 성(몸)은 재미있는 장난감이다. 상상력도 풍부해서 어른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할 몸과 성에 관한 놀이들을 만들고 즐긴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이라면 무조건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거나, 아니면 대수롭지 않은 장난으로 넘겨버린다.

 

아이들의 성, 어른들의 인식부터 점검해야 

 

이런 상반된 태도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예를 들어, 어른들이 과도하게 성적 행동을 금지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은 자기 몸의 느낌이나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게 된다. 또 어른들이 '아이스케키'나 '똥침'처럼 장난 같지만 다른 사람들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아이들은 폭력에 무딘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성과 몸, 행동을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대화 하는 것이다. 이때 대화 내용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에게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들이 여자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거나 남자아이니까 어느 정도 성적호기심은 당연하며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구별 지어 생각한다면, 아이들도 그런 차별적 성의식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 아이들과 나누는 성 이야기 어떻게 풀어갈까?
아이들의 성이 난감한 어른들이 모여 고민과 해결책을 나누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젠더감수성교육 현장.

ⓒ 한국성폭력상담소

유치원에서 의뢰받은 '사건 처리'는 아이들과 다시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때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묻고 기분이 어땠는지, 누가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이야기 하면서 당시 상황과 아이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누구의 강요나 강제 없이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궁금해서 서로 몸을 살펴봤을 뿐이라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도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어 유치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거나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보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었다.   

 

아이들과 성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성에 대해 모르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런 대화를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주저하기도 한다. 또 오랫동안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태도부터 성찰해야 하기에 더욱 어렵다.

 

그러나 어른들은 용기 내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야 한다. 마음을 열고 함께 나누는 성에 관한 이야기들은 아이들 안에 차곡차곡 쌓여,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될 수많은 성적인 문제의 현명한 대처법을 찾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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